에메랄드 빛으로 가득했던 인터라켄을 떠나 스위스 수도인 베른으로 떠난다. 주디언니와 각자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나는 거기에 백팩까지 메고 가는 길이다.
이제 기차 타는 건 일도 아니다. 적당한 시간에 맞춰 나가 플랫폼도 자연스럽게 찾아 기차에 탑승한다. 여전히 캐리어는 보관함에 자물쇠로 단단히 엮어놓는다. 여행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순 없다. 이제 이 유럽 기차도 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뜻은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이다.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향수병을 느끼는 것 같다는 말에 주디언니도 첫 유럽여행 때 그랬다며 공감해 주었다.
몇 시간 안 돼서 도착한 베른. 짐을 어렵게 맡기고 스타벅스에 왔다. 유럽에 오면 로컬 카페만 갈 줄 알았는데, 얼음이 잔뜩 들어있고 맛이 일정한 곳은 역시 스타벅스뿐이 없었다. 우리는 간만에 아이스 라테에 초코 머핀을 먹으며 당 충전을 했다. 인터라켄에서부터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오늘은 공원 몇 개를 둘러보고 내일 다시 떠날 일정을 준비하는 게 전부였다.
가볍게 배를 채우고 곰 공원으로 향했다. 베른의 이름은 곰을 뜻하는 독일어 ‘Bärn’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산에서 만나면 기절초풍했을 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재밌었다. 곰들은 각각 이름이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다.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장미공원을 구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여름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미들이 색깔별로 펴있었다. 한적하니 좋았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루 종일 걸었던 우리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주디언니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도, 직업도 같았기에 일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자 인생의 고민도 종종 나누었다. 서로 무거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면 같이 심각해지기보다는 서로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때론 시답잖은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의 반 정도 지나오자 괜히 이 시간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제 와서 보면, 돌아갈 수 없을 시간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그걸 알았으면 그 시간에 더 집중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베른에는 아인슈타인 하우스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2년 정도 살았다는 집에 박물관이 있었다. 그가 살았던 곳을 둘러보며 발명품도 보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살았던 곳을 보는 건 늘 새롭다.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작품이 나왔는지 구경하는 게 꽤 재밌다. 이외에도 구시가지를 쭉 돌며 기념품도 보고 쇼핑할 것도 있는지 둘러봤다. 쇼핑에 별로 관심 없는 나와 주디언니는 눈으로만 구경한 후 이제 숙소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사 먹을까 하다가 대충 밀키트를 사서 해 먹기로 했다. 프랑스 이후로 요리는 내 담당이 된 것 같다. 사실 그래봤자 두세 번 한 게 전부긴 하다.
정말 간단하게 파스타를 데우고, 치킨너겟을 구웠다. 맛은 그저 그랬다.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니 알딸딸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숙소에 있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한국 유튜브를 연결해 놓고 한참을 보다가 샤워를 했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내일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은 정리할 것도 없었다. 오늘 처음 들어온 숙소였기에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이제 내일이면 스위스를 떠난다. 다음 국가는 어디였더라? 이제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분히 즐거운 일들이 쌓여가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