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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에서 여유 즐기기

by 이 은

지난 화에서 다짐한 걸 지키기 위해 오늘 하루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사실 자전거를 타거나 액티비티를 할까도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우리는 동네 구경을 택했다. 한 손에는 마트에서 산 피자를 챙기고, 다른 한 손에는 돗자리를 들고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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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말 한 마리를 만났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백마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스위스에서 만나니 괜히 반가웠다. 숙소 뒤 들판에 소 무리가 다니는 건 봤어도 말이 혼자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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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넓디넓은 공원 벤치에 앉아 어제 미리 사둔 피자를 먹었다. 숙소에서 피자를 데우고 나왔기 때문에 금방 식기 전에 얼른 먹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과 초록으로 가득한 자연 속에서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 옆에는 한 노부부가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 모습마저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 장면은 나중에 내가 발간한 에세이집 <우리는 사랑하고 위로하고>와 함께 엽서로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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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한국에서부터 들고 와서 한 번은 썼나 싶을 정도로 짐이었던 돗자리를 드디어 사용하는 날이 온 것이다. 나와 주디언니는 유럽여행 내내 일기를 쓰곤 했다. 2023년 10월 1일, 벌써 2년이 지난날이다. 양쪽에 에어팟을 끼고 제일 좋아하는 곡인 적재의 '알아'를 틀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여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우리지만 이 시간만큼은 각자 시간을 보냈다. 엎드려서 일기를 쓰다가 다시 누워서 선글라스를 끼고 낮잠을 자고, 잠에서 깨면 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구경했다. 햇빛이 너무 세면 돗자리를 나무 아래로 옮겨 그늘에 숨기도 했다. 충분한 쉼을 취한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인터라켄을 떠나기 이전에 기념품 가게를 들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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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여운 키링을 발견했다. 스위스 국기 종을 달고 있는 젖소였다. 숙소에서 자려고 누우면 "음메에"하는 소들의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그들의 목에 달려 있는 종소리도 들렸는데, 아마 이 키링을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오를 것 같아서 큰 고민 끝에 샀다. 스위스답게 키링 한 개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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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유독 더 날씨가 좋았다. 스위스 여행 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여행하는 게 두 배는 더 불편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있는 동안은 최고의 날씨였다. 심지어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덥지도 않았다. 에메랄드 빛의 물과도 이제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아쉽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스위스에 도착한 첫날처럼 빨간 벤치에 앉아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여행지가 제일 좋았는지 묻곤 한다. 그리고 스위스가 제일 좋았을 거로 예상하는 사람도 꽤 있다. 나는 늘 영국, 프랑스가 좋았다고 말하지만, 스위스 풍경을 다시 되돌아보니 '스위스도 참 좋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알려준 이곳. 빙하 물이 녹아 흘러내려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만들어져 있는 이곳.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가서 더 많이 만끽하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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