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했었잖아. 사실 엄마는 일을 하니까 그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몰라. 반장 엄마는 학교에 자주 가야 되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하니까. 아 맞다. 네가 딱 한번 반장을 못 한 적이 있었어. 그때 집에 오자마자 얼마나 울었는지. 네가 굉장히 샘내 하던 애가 있었는데... 걔가 반장이 되고 네가 부반장이 됐었나? 그랬지?
"내가 누굴 샘내. 난 평생 누굴 샘낸 적이 없어."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30년이 다 되는 세월 동안 잊어먹고 있었지만 엄마랑 담소를 나누며 우연히 엄마가 꺼내 든 내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의 나는 밀물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듯 또렷이 기억이 났다.
지금 나는 미즈 자존감으로서 누구에게나 자존감 있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30대 중반 여자다. 그 누구와 나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이 세상에 부러운 사람도 없고 닮고 싶은 사람도 없는 그냥 나는 나로서 만족하고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누군가를 지극히도 부러워하면서도 그녀가 될 수 없음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10살의 아이가 있다.
미연이는 정말 예쁜 아이였다.
10년을 사는 동안 처음으로 본 예쁜 아이였다. (어른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얀 얼굴, 오똑한 코, 옅은 갈색 눈동자, 갈색 긴 머리. 혼혈인가 생각될 정도로 이국적인 얼굴이었다.
공주님 같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는 왜 이렇게 키만 멀대같이 클까. 난 왜 얼굴이 이렇게 까맣지? 난 왜 납작한 코를 가졌을까?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미연이와 비교하며 컴플렉스라는 실을 돌돌 말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실타래를 더 이상 풀 수 없을 정도로 엉키게 만든 건 반장선거였다. 1학년, 2학년 동안 나는 반장을 했었고 3학년 때도 당연히 반장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미연이를 공주님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어린아이들의 반장선거는 인기투표였던 시절, 너무나도 자명했던 결과는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에 불을 지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난 그날 집에 와서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고 엄마는 너 반장이 안돼서 엄마는 아주 마음이 편하다고. 더 이상 학교에 반장 엄마로 가서 뭘 하지 않아도 돼서 아주 좋다는 위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로 나를 달래주었다.
반장, 부반장으로 나름 친하게 지냈을 텐데 그 아이와 어떤 얘기를 하거나 즐겁게 웃었거나 어디를 놀러 간 기억이 하나도 없다. 분명 집에 남아있는 10살 내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에서 미연이는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도 지금 나는 미연이라는 이름과 또렷이 생각나는 그 얼굴의 잔상 이외에 살아 움직이는 그 아이의 어떤 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 이후에도 그 아이와는 같은 중학교를 갔고, 같은 반도 했었고, 심지어 같은 고등학교를 갔지만 중고등학교 때 우린 그냥 같은 학교에 다닐 뿐 어떤 친분도 갖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갑자기 그 아이의 성적은 떨어졌고 저 멀리 수도권 외곽 어딘가로 전학을 갔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인지 아빠인지 따라가느라 전학을 가게 됐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스무 살이 넘어서 들은 소식으로는 어느 전문대 물리치료과를 나와서 물리치료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대체 10살의 나는 그때 무슨 감정이었을까? 단순히 철 모르는 아이의 자격지심이라거나, 엄마 말마따나 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미연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성별만 달랐다면 첫사랑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 아이를 동경했고 숭배했으며 그 아이가 아닌 나를 미워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