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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구 Oct 31. 2021

현실보다 못한 소설

잃어버린 노인들의 나라

5년 전 2016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출장길 호텔방에서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후다닥 적었던 소설의 시놉시스...

미래를 배경으로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 방송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시즌 2'의 1회를 보고 마치 1980년대 내가 살았던 부산... 그것도 내가 태어난 바로 그 부산역에서 나와 동갑인... 어쩌면 동네에서 같이 어울려 놀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을 그냥 배경만 미래로 옮겨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이 엄청난 사건을 더 자세히 알지 못해 현실만도 못한 소설을 적은 게 부끄럽기까지 하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보다,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그리고 이 잔혹사는 아직도 진실과화해위원회에서 조사가 진행 형이다.

지금 그 잔혹한 인간들의 정치적 사상적 철학을 계승한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말에... 그분들께 꼭 해당 방송을 정주행 하길 권한다.

글 마지막 문장을 이 믿기지 않는 실화를 투영해 수정해 다시 올린다.

#형제복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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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버린 노인들의 나라」

2048년 그리 멀지 않지만 지금과 그리 달라진 것도 없이 여전히 지친 하루, 사회적 불신과 분열에 따른 폭동, 세계적 불황의 씨앗이란 오명을 안고 대공황의 불경기 속에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한국.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고령화로 급속히 줄어드는 인구는 추락한 경제와 붕괴된 사회의 신뢰 시스템과 맞물려 희망이 보이지 않은 채 더 이상 새로 태어나지 않는 아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가정당 해외로부터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입양하는 정책까지 이어지고, 덕분에 결혼이란 시스템마저 무너지며 젊은 부부들은 대부분 동거 형태로만 살아간다.

고갈되어버린 연금의 작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며 거리의 노숙자와 무법자로 전락하는 노인들을 위해 급기야 국회와 정부는 안락사 법을 제정, 통과시켜 누구나 원하면 허가시설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연금은 명목상이나마 유지되었다.

살아남은 노인들은 부를 축적했거나 극히 드물지만 부양해 주는 자식들이 있는 노인들이었다. 그나마 정부의 안락사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일정 금액 나라에 환원할 재산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금이나 재산 둘 중 아무것도 없는 노인들은 거리에서 구걸, 노숙을 하거나 부랑인이 되며 질긴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나 연고지나 보호자가 없이 거리로 내몰린 노인들은 이제 누구도 그 존재에 관심조차 없는 도시의 유령들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짙고 우울한 안개 낀 아침...

하룻밤 사이 또 여기저기 보이는 거리의 노인들 시체를 수습하는 모습을 일상인 듯 무심히 흘려보며 학교에 가는 아이...

지름길인 골목길로 접어든 순간, 아이 눈에 누더기 차림의 노인이 앞을 가로막는다.
거칠게 아이 가방을 빼앗아 점심 도시락을 빼앗으려던 노인,
순간 '팍' 하는 파열음과 함께 노인의 관자놀이에 피가 흐르며 눈의 초점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휘청이다 울며 땅에 쓰러진 아이 위를 덮친다. 놀라고 노인의 몸에 눌리며 머리를 땅에 부딪힌 아이도 함께 정신을 잃는다.

잠시 후 숨을 쉬는지 자기 코와 목을 만지며 주고받는 사내들의 대화가 멀리 터널 안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몽롱하게 울린다.

남자 1> 아 씨... 애가 있었어.
남자 2> 뭐? 못 본 거야?
남자 1> 에이 씨...이.. 노인네 등짝만 보였지. 아무도 없는 길이었잖아.. 그냥 쐈다고...하... 오늘 할당도 꽉 찼는데 마수부터 재수 옴 붙었네.
남자 2> 얘가 우릴 봤을까...
남자 1> 그 뭐냐... 3호.. 어... 맞아... 3호 상황인 거 같은데 어쩌지...
남자 2> 일단 둘 다 차에 옮기고 본부에 보고부터 하자고! 빨리!

희미한 정신과 숨을 틀어막는 두려움에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이는 갑자기 몸이 하늘로 붕 뜨는 걸 느꼈다.

자기와 쓰러진 노인을 옮기는 사내들의 옷이 순간 아이의 눈에 들어왔다. 같은 색.... 같은 모양... 검은 옷. 경찰복 같았지만 그건 아이가 아는 경찰 아저씨들의 옷은 아니었다.

짙은 선팅의 검은 벤 뒷좌석에 옮겨져 힘없이 늘어져 있는 아이의 눈에 앞 운전석 의자 밑에 누군가 실수로 흘린 듯 삐져나온 서류철이 들어온다.

의미도 모르는 그 서류의 글자들을 쳐다보며 아이는 다시 의식을 잃는다.

'2047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훈령 제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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