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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구 Mar 08. 2022

나의 첫 경험

내일이면 늦을지도 몰라 오늘 올립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위해 (정확히는 소집. ㅎ) 휴학 후 기다리던 그때... 1992년 3월.

지금 20대들처럼 정치의 '정'자도, 그때가 선거철 인지도 모르던 돈 없는 휴학생의 지루한 여유만 가득한 봄날이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평소 너무 세상 물정 빠삭해 좀 멀리하던 동네 친구 놈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세상 물정 빠삭의 기억'이란 어릴 때 팔에 걸고 뛰면 좋은 운동기구라며 그 녀석이 내 로봇 장난감과 바꾸자는 설득에 넘어간 기억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운동기구란 물건, 군인들이 바지와 양말 사이에 넣어 걸을 때 소리 내고 멋도 내던 쇠구슬 들어간 원형 모양의 군용 스프링... 중고거래에서 '벽돌'을 택배로 받은 셈이었다.


암튼 이번엔 이 녀석이 제안한 아르바이트란 것은 며칠 후 모교인 초량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국회의원 선거유세에 피켓 들고 앉아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일. 그것도 1번 후보 연설 때만 피켓 들고 있다가 바로 나오면 된다는 것.


돈 없고 지루한 내 20대의 여유엔 더없이 달콤한 유혹이었다.


며칠 후 난 내가 전교회장을 하며 마이크를 많이도 잡아 친숙한 그 국민학교 단상에 선 1번 후보의 연설을 들으며 따가운 햇살을 손에 든 피켓으로 가리고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 전두환 대통령과의 끈끈한 연... 등등의 맥락 없는 말로만 기억되는 그 1번 후보의 지루한 연설이 끝나고 막 자리를 뜰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그 얍삽한 친구가 나와 같이 동원되어 온 친구들을 데리고 의기양양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훅 들어왔다.

'에이 씨...' 갑자기 그 녀석을 따라간다는데 똘마니 같은 반감이 들기도 했고, 3번까지 꼭 자리 지키고 오라는 어머니 당부가 있어서 난 그 사람들 떠난 자리를 지키고 눌러앉았다.


그런데 곧 심상치 않은 젊은 사람이 그 단상에 올라섰다. '어.. 저런 젊은 사람이 이런 선거판에 나왔네...' 하며 달리 할 것도 없던 난 그저 시큰둥하게 그의 연설을 흘려듣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 오래전이라 그 내용은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의 연설이 1번 후보와는 180도 다른 엄청난 인상을 내게 남겼다는 것.

자세히 들었어도 그가 무엇에 대해 웅변하고 있었는지 당연히 몰랐겠으나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건...

그의 연설이 더없이 간결했고. 목소리는 뜨겁고 강렬했으며, 모든 주장은 사실과 데이터로 뒷받침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는 기억.


'어... 이건 어른들의 말 잔치라 일도 관심도 없던 그저 그런 선거판의 연설이 아닌데??'

지금도 그 느낌만은 선명한 그의 연설은 1번 후보처럼 정에 호소하지 않았고, 뭔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선은 치열했지만, 그 내용은 분명히 내 삶의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분명 당시 모든 사람의 삶을 향해 그 삶이 어떤 불합리와 힘에 의해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왜 그 문제를 본인이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정적이지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당시 연설문이나 기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읽어보고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그 의문을 풀고 싶다. 왜냐하면 난 그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신신당부한 3번 후보 사수의 사명도 잊어버리고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들고 있던 피켓 운동장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 버리곤 바로 집으로 달려왔고, 얼마 후 선거에서는 주저 없이 그 후보를 찍었던 기억...


'내 생애 첫 투표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결국 당선된 내가 동원된 그 후보는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적통 후계자였으며 노태우 이후 차기 대통령 지명자(?)라고 이미 소문이 파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낙마한 2번 후보... 맞다. 우리가 이제 다 아는 바로 그 바보.... 날 정치가 무엇인지 선거가 무엇인지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웅변으로 설득한 사람.


지금 정치가 무엇인지... 2번을 뽑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당시 내 나이 즈음의 20대들이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에, 20대 남녀 갈등 조장에, 게임과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 살아가며 정신없는 그들에겐, 그나마 당시 검열은 되었어도 그 TV 하나가 유일한 볼거리라 나도 모르게 거기서 흘러나오는 정치와 선거 이야기에 막연히 귀동냥하게 되는 분위기조차 없으니 말이다.


지금 2번에 60대 이상과 20대가 기울어 있다는 것이.. 그 세대가 풍요를 누리기 전의 마지막 시대이자, 풍요가 끝나는 첫 세대라는 변곡점 앞뒤라는 묘한 공통점을 본다. 내 나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삶엔 고된 노동의 피로와 경쟁 사회의 팍팍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암울함이 공통점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그분들께 이재명의 연설을 꼭 한 번은 선거 전에 들려주셨으면 한다. 토론 영상이 너무 지루하다면 지난 마지막 토론에서의 마지막 1분여간의  발언이라도 꼭 들려줬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이재명 후보의 서사는 그 철없던 20대에 내게 그 강렬한 바보 후보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 평생 한국의 민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1. 그 운명적 첫 만남이었던 모교 초량 국민학교. 그 모교의 졸업생 선배에는 대충... 나훈아, 김수미, 박칼린 그리고 저 유명한 이경규 그리고 노회찬 님이 계시다. 나훈아 선생의 아버님은 밑에 소개할 큰 외삼촌이 운영한 부산역 앞 큰 일식집의 주방장을 했다는 말을 들었고, 이경규와 노회찬 이 두 분은 다 각각 내 외삼촌들의 절친이었다. 날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갱규, 갱규하며 이경규 씨를 기억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고, 지금은 생사도 모르는 그 기억 속 삼촌을 이경규 씨가 TV는 사랑을 싣고... 에서 그렇게 간절히 찾았었다고 한다..


2. 바보 후보에게 정신이 팔려 아르바이트비를 받는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후문에 따르면 그 의기양양하게 나간, 현 2번 야당 대표와 똑같은 인상의 그 친구는 같이 동원된 친구들에게 약속한 아르바이트비를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당시에 금권정치 풍토가 만였했기에 그건 배달사고임이 확실하다.)


3. 어머니가 그렇게 유세장에 남아 지지를 부탁했던 3번 김대중 전대통령의 평민당 후보는 바로...

어머니의 오라버니이자, 큰 일식집을 경영하던 내 큰외삼촌이셨다. (후보자 사진 맨 우측, 가운데 3번 포스터... 나도 이 글을 쓰면서 30년 만에 돌아가신 삼촌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나온 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오늘 발견하고 타임머신을 탄 듯 많이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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