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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wnangle Dec 09. 2023

EP.1 "낭만은 좀 불안하지 않아?"

주말에 꼭 영화 1편씩 보려고 하는 이유

 대학 때 디자인론 수업을 들으며 배운 것 하나. 권력자를 묘사하는 그림을 보면 대부분 옷이 치렁치렁하다는 것. 표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것 외에 하나의 의미가 더 있는데, 바로 과시였다. 나는 이만큼의 옷감을 낭비해도 괜찮은 존재야! 이를 암시한다고 배웠다. 필요 그 이상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나에게 소설과 영화를 필두로 한 '낭만'은 그런 사치의 일환이었다. 


소설을 싫어한 건 아니다. 단지 독서토론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교외 독후감 대회에서 수상하는 게 더 좋았을 뿐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낯선 세계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된 기분이랄까. 그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꺼내고, 이를 논리로 입증하는 비문학을 더 선호했다. 인문교양서를 좋아했고(심지어 출판사에 취직을 했을 만큼),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도 틈틈이 챙겨 봤다. 그런데 올 해 들어 낭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일과도 관련이 있다. 직장을 옮기면서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했는데, 그때 생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남들이 보는 5분 남짓한 영상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몇 날 며칠을 고생한다는 것. 그래서 2시간의 영화를 1만 5천 원에 볼 수 있다는 건 꽤 가성비 넘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영화와 가까이 살고 있었다. 


'땅에 발이 닿지 않은 느낌'을 종종 받았다. 생각의 범위가 더 넓다고 해야 할까. 나와 지금 여기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생각은 저 멀리 가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실 나도 그런 존재로 비치고 싶어서 한 편씩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로맨틱한 존재들이 삶을 멋지게 사는 것 같아서. 물론 쓸모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떠오른다. 이런 거 볼 시간에 일이라도 조금 더 할까 싶고. 그런데 어쩌면 이 한 조각의 영화가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나의 본질은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내가 모르고 살았던 세계를 한 발 알게 됨으로써 내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건 분명하다. 물론 불안하다. 낭만적인 것들은 대체로 무용하고, 흔들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그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단단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괜히 넷플릭스를 뒤적인다. 


이번주 주말에는 <하츠코이>를 다시 시도해볼 참이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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