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로 시를 쓴 엄마, 그의 딸이 다시 만난 시
밥솥 위에 작은 장이 있었는데, 엄마는 가끔 거기에 무언가를 넣었다가 빼곤 했다. 거기 있는 아이템 중 하나는 검은색 양장 노트였다. 안에는 이미 납부한 고지서도 끼어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언젠가 엄마는 그 노트를 꺼내 내 앞에서 본인이 쓴 시를 보여줬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나를 주로 '아기'라고 칭했다. 우리 아기 꿈에서 무얼 보고 있니, 무엇을 먹고 있길래 입을 오물오물 거리니. 그때의 나는 괜히 쑥스러워서 다 읽지 않았다. 그 뒤로 엄마는 육아 일기를 대신한 시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엄마의 시를 읽어볼껄.
태교를 시로 한 나는, 시를 꽤나 싫어하는 학생으로 자랐다. 국어시간에 가장 싫었던 게 현대 시 해제 수업이었다. 그냥 다 외웠다. 어차피 내 생각을 말해도 틀린 것으로 재단당하기 일쑤였다. 속 편하게 외웠고, 오히려 간단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문학행사로 정호승 시인을 초청한 북토크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 또한 시인의 시를 잘 해석한 몇 편의 분석글을 읽고 독후감을 냈다. 내 안에서 움트는 이야기들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시는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2n년간 되고 싶었던 직업이 있었고, 결국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접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출근 전날 남들은 아쉬움 반 행복 반으로 보내는 일요일 오후 4시 카페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박연준 시인의 <모월모일>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사연 있는 사람 마냥 엉엉 울어버렸다. 그때 내 마음에 닿은 문장을 소개하자면,
태어나려나 봐, 저 사람, 태어나려는 것 같아. 어쩌지, 태어나면 저 사람 빛날 텐데, 빛나다 어두워지기도 할 텐데, 괴로울 텐데, 행복에 겨울 텐데, 도망치고도 싶을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모월모일> 중에서
몇 년이 지나 옮겨 적는데도 울컥한다. 시인은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한 학생을 보고 쓴 문장이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봐주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박연준 시인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 읽었고, 시인들이 쓴 에세이를 탐독해나갔고, 멀게만 느껴졌던 시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커지는 감정을 손에 쥔 채로 이걸 어찌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쏟아내고야 마는 것이 시 아닐까.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읽고 싶은 밤이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알게 된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를 읽으며, 누군가를 마음껏 떠올리고 싶은 날이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