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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Jun 28. 2023

암스테르담의 박물관, 로테르담의 현대건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돌아보기

나에게 네덜란드의 기억을 남긴 첫 번째는 영화 <안녕 헤이즐>이었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암스테르담에 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어린애였다. 후에 네덜란드, 그중에서도 특히 암스테르담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2020년이었다. 런던에 이어 독일 뮌헨에서 고흐의 하늘색 배경의 해바라기 작품을 본 후, 해바라기가 연작임을 알게 됐다. 전 세계에 있는 해바라기를 전부 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튤립도 없고, 날도 흐린 겨울의 초입에 암스테르담에 왔다. 릴에서 가깝던 터라 자꾸 미뤘던 게 그 이유였다. 네덜란드의 겨울은 듣던 대로 정말 추웠다.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체감상 온도가 훨씬 더 낮게 느껴진다. 피부로는 추위를 느꼈고 눈으로는 형형색색의 비니와 운하와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진짜 암스테르담이었다.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는 로망을 느낄 새가 없었다. 바람과 닿지 않고자 손을 소매에 숨긴 채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Back to Black이라는 카페에 도착했다. 2020년에 일하던 회사 근처 독립서점에서 산 <아담 이브닝>이라는 책에 나온 카페였다. 암스테르담 광고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작가가 추천한 곳이라 저장해 뒀던 곳이다. 현지인들이 많아서 좋았고 추운 밖과 달리 안은 훈훈한 분위기였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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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20유로에 예매해 둔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에 갔다. 학생은 무료이거나 저렴히 방문할 수 있는 다른 박물관과 달리 처음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그 생각을 접었다. 이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면서도 시설이 깨끗했고 전시 규모도 컸다.


작품 설명도 정말 잘 돼있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자화상은 색, 붓놀림, 표정 등을 연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신기했다. 연습을 위해서 그린 자화상이 이렇게 인기 있어질 줄 알았을까?


그리고 인생 세 번째의 고흐 해바라기를 봤다. 첫 번째는 2018년에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두 번째는 2020년에 독일 뮌헨에서, 세 번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에 있는 건 다 봤고, 도쿄랑 미국만 남았다. 역시 해바라기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렇지만 암스테르담 여행의 목적이었던 해바라기 작품을 본 것보다 해바라기 스케치를 본 게 더 좋았다. 아무래도 다른 미술관에선 이런 거까진 볼 수 없으니까! 반 고흐만을 위한 미술관답게 스케치 노트, 크레용, 연필 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19년과 2020년에 연남동과 한남동에서 민경희 작가님의 전시를 본 것도 생각났다. 그때도 작가님의 작업실이 재현되어 있어 작품만큼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규모가 커서 천천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곧 기념품샵의 영업이 끝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랑 후다닥 내려가서 기념품샵을 구경했다. 엽서의 종류도 정말 다양했지만 나는 오른쪽에 있는 와펜을 샀다. 이게 가장 내 취향이었다.

 

그리고 Boekie Woekie라는 작은 서점에 갔다. 가장 왼쪽 사진에 숨어있는데 검은색 고양이가 있는 곳이었다. Boekie Woekie처럼 현지의 느낌이 가득 담긴 서점이나 문구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암스테르담에서도 여러 문구점을 다녔는데 내가 갔던 암스테르담의 문구점은 특색 있지는 않았다. 어느 문구점이든 일본 제품이 많은데 아무래도 그건 내가 직접 일본에 가거나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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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하우스

그리고 저녁 늦게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갔다. 이곳은 막 기대했다기보단 암스테르담에 왔으니 한 번은 가봐야 할 곳 같아서 간 거였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오디오 가이드가 영어였지만 집중해서 들으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해설은 없지만 안네의 방을 직접 본 것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안네가 숨어 살았던 방, 그 방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사는 곳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기념품샵에서 안네의 방 엽서를 하나 샀다.


암스테르담은 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반 고흐 미술관과 안네 프랑크의 집 두 곳 모두 저렴하지 않았으나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관리하고 보존하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능력이라고 느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플릭스 버스를 타고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5시에 도착했음에도 겨울이라 어둑어둑했다. 로테르담은 한국에 있을 땐 몰랐던 곳인데 어쩌다 알게 되어 네덜란드 일정에 추가하게 되었다. 건축물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현대 건축의 도시라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로테르담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마켓홀'이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건축가 사무소 MVRDV가 설계했으며, 재래시장과 200채가 넘는 주택의 복합건물이라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12월 초였기 때문에 유리에 트리 모양으로 불이 들어와 있었다. 지역의 랜드마크를 자국의 건축가들이 지은 점도 인상 깊은 점이다.


현대식 재래시장이라 깔끔하고,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었다. 공공 복합 빌딩에 걸맞게 추운 날씨를 피해 친구와 주전부리를 사 먹기도 하고, 한 끼는 이 안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도 했다.


그리고 마켓홀 바로 앞에는 연필 모양의 빌딩이 있다. 정식 명칭은 Blaaktoren이라고 한다. (나도 지금 브런치를 쓰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 건물은 큐브하우스를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피에트 블롬이 설계했다. 연필 빌딩은 마켓홀에서도 보이고, 큐브하우스에서도 보인다.


이렇게 여러 가지 특이한 건축물 중에 큐브하우스는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큐브하우스는 앞서 언급한 피에트 블롬이 설계했는데 도시 안에 나무 같은 집, 숲 같은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큐브하우스에 입장했다. 생긴 것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내부의 구조가 특이했고 계단이 많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주방으로 꾸며진 곳에서 비스듬히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을 정리한 표도 벽에 붙어 있었는데 큐브하우스의 가격은 한화로 약 7억 원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창문을 닦냐는 질문에는 'wait for a rainstorm ;-)'이라는 유쾌한 답변이 적혀있었다.


로테르담에 이렇게 특이한 건물이 많은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을 받아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할 때 펼친 적극적인 건축 정책이 지금의 로테르담을 만들어냈다.


또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에 방문했다. 친구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 해서 들른 건데 들어가자마자 홀린 듯이 시선을 빼앗겼다.


화장실 앞의 바닥 체스판에서 할아버지들이 체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체스의 룰은 모르지만 이 앞에 앉아 할아버지들의 체스를 지켜봤다. 다음에 로테르담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나도 할아버지들과 체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우리나라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구글맵 후기에서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은 어수선하다는 후기를 볼 수 있었다. 1층은 카페가 있어 시끌벅적하고, 체스를 하기도 했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면 비교적 조용해지긴 했으나 책장 앞에서 친구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떠들던 친구들이 있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그 어수선한 분위기가 더 익숙한 듯했다.


지금껏 한국에서 여러 도서관을 다녔고, 지금도 도서관에 가는 취미를 가지고 있지만, 가끔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분위기에 압도될 때가 있다. 서울도서관이 그랬고, 성동구립도서관이 그랬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자 들어왔는데 그런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의정부 미술도서관, 음악도서관처럼 조금 넓으면 조용해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사람들과의 거리가 가까울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책의 종류가 덜해도 뛰어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작은 도서관을 선호한다. 그런 나에게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바닥에 털썩 앉아 건축 책을 뒤적거리고, 한국인 주인공의 프랑스어 소설을 찾기도 했다. 로테르담에선 단연 이 도서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건축물로는 렘 쿨하스의 드 로테르담을 보러 갔다. 해가 없었던 게 통탄스러웠다. 이때 이 다리를 건너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그곳에도 훨씬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는 걸 지금 브런치를 쓰면서 알았다. 아무래도 건축 비전공자이다 보니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가장 유명한 곳들만 다녀오게 된 게 뒤늦게 아쉽다.


해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흐린 매력이 강렬히 남는 곳들이 있다. 어둡고, 축축하고, 짙을 때 자신만의 빛을 더욱 뿜어내는 곳들. 네덜란드는 흐린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건축물은 해와 함께 봐야 더 멋있기 때문에 나는 이곳의 건축물을 절반 밖에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 네덜란드의 겨울은 너무 춥기 때문에 춥지 않을 때, 최소한 해가 떠있을 때 가보길 추천한다. 두 도시 중에서 나는 여느 유럽의 도시와는 확실히 다른 로테르담이 더 좋았다. 로테르담의 개성을 확실히 느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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