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무릅쓰고 살아가던 날들
세 번째 영화는 워크숍 때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공모전에 낼 목적으로 만들었다. 29초 영화였는데 짧은 시간에 강한 영감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영화라기보다 광고에 가까웠지만 최대한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취직을 할 때 이 영화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른 영화 워크숍에 가서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제작을 했다. 저마다 그들의 꿈은 원대했고 비상했다. 그렇지만 나오는 영화는 그에 비해 초라했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원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변수를 막을 방법을 고안해야 했고, 사람들과의 소통과정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고, 예산을 맞추는데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그림대로 영화가 나올 확률은 아주 낮았다. 점점 영화를 제작하는 한계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전히 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돈이 문제였고 사람이 문제였다.
경찰인 친구의 부탁으로 경찰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경찰분들은 정말 열심히 참여해 주었고 나도 정말 열심히 작업을 했다. 게다가 내 영화를 한 편 더 찍을 수 있어서 값진 기회이기도 했다. 비록 영화는 상을 못 탔지만 찍는 재미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그러던 와중에 춘천에 강원미디어센터가 생기면서 내가 거기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나름 괜찮은 보수를 받으며 1년 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보통 다른 지역의 학교로 가서 아이들에게 미디어체험을 시켜주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영상 제작을 함께 하는 게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 만져 보는 장비들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폴리텍 대학에서 1년간 직업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미디어콘텐츠학과로 지원을 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지원금도 조금 나오고 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과대와 급속하게 친해지게 되었다. 들뜬 기분이 확 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신나서 그녀와 자주 만나 놀았다.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은 때였다. 무언가 하나둘씩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돈도 꽤 벌면서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또 경찰영화제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 그러면서 폴리텍 교수님에게 나름 괜찮은 카메라를 빌려서 작업을 하게 됐다. 그때 과대가 많이 도움을 주었다. 한 여름이었는데 카메라를 잡고 있는 나의 땀까지 닦아 줄 정도로 정성이었다.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차였다. 아무래도 나는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올 무렵이었고 또 무기력에 휩싸여 버렸다. 몇 달 동안 집에서 나가지를 않았다. 못 나갔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저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씩은 생각해 본 것 같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누워 있는 자신만 있을 뿐이었다. 겨우 겨울에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었던 나는 자격증을 두 개 땄고 취직 준비를 했다.
교수님의 소개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원주에 있던 격투기 대회 회사였다. 영상보조로 호방하게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상사에게 거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기술이 크게 영향을 못 끼쳤고 회사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크게 주눅이 든 나는 게임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우울한 나의 기분 때문이었을까 햄버거를 만들고 포장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일그러져 포장된 햄버거가 내 마음과 같아 보였다. 그래도 계속해나가면서 자신감을 찾으려고 했다. 일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실추된 자신감을 채울 길이 없어 몇 달 안 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