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은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춘천에서 그래픽 수업을 배우고 싶어서 학원에 가게 됐다. 그 학원은 원래는 만화 학원이었는데 원장이 게임 제작을 해봤어서 그래픽을 다룰 줄 안다는 이유로 다니게 됐다. 거기서 나는 수업보다는 게임을 더 많이 했다. 학원 원장은 나에게 학원비의 반을 나에게 따로 줄 테니 아이들의 그림을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래픽 수업은 나도 그도 딱히 중요하게 생각지 않게 됐다. 나는 원생들의 그림을 봐주면서 잘 어울리며 보냈다. 아이들과 코스프레 대회도 열고 음식도 만들어 먹고 게임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지냈다. 그때 지훈이는 닭갈비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아르바이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도 잘 살고 대학을 다니고 무엇보다 서툴러서 오래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됐다. 주말 야간에 나가서 일을 했다. 손님은 거의 오지 않아서 거의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생각보다 편하게 했지만 편해서였을까 얼마 안 가 쉽게 그만두었다. 의욕이 안나는 게 제일 문제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울에서 영화 워크숍을 들었다.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알게 모르게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해오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서 꽤 오래 알고 지내게 되는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와 서로 영화를 하며 많이 의지가 되었다. 워크숍을 또 잘 마치고 한 편의 작품이 생겼다. 그 영화는 형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학벌이 쌘 대학을 간 형과 그렇지 못 한 동생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찍은 영화는 꽤 만족스러웠다. 자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 생활을 더욱 동경하게 되었다. 서울은 역시 서울이었다. 춘천보다 기회도 일도 여자도 더 많았다.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 반오십의 나이에 접어들 때였던 것 같다. 상징적인 나이였지만 특출 난 업적을 이루지는 못 한 나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 사이 친구들은 저마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는 어디에 취직했고 누구는 돈을 많이 벌었으며 누구는 결혼을 했다. 나는 역시나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 떠들 뿐이었다.
지훈이는 어느 날부터 재즈에 빠졌고 건반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건 잘 알았지만 그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진짜 진심을 다해 건반에 빠져 살았다. 어느 날 공연장에서 그의 연주를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그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영화에 진심을 다하지는 못 했다. 영화를 당장 나 혼자 할 수는 없었고 할 수 있다 해도 아무도 봐줄 것 같지 않았다. 혼자서 영화를 분석하거나 카메라 작동법을 익히고 구도와 편집점을 공부하고는 했지만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사실 영화에 대한 공부는 영화를 제작하는 순간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었다. 공부와 실전은 다른 문제였고 그래서 내가 공부를 못 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도 무턱대고 열심히 해야 해라는 말을 들으면 좀 경기가 난다. 열심히 보다는 재미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가 있어야 열심히 하게 되고 그래야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은가. 글을 쓰는 이유도 단지 재미있어서다. 쓸만하니까 쓰게 되고 잘하는 방법을 저절로 익히게 된다. 예전과는 다른 사회적 감각은 나의 생각과 비슷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 충동적인 인생을 살아도 아무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삶에 대한 부담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