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칠로 싹 다 덮겠다는 나의 결정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초보자에겐 벽지를 새로 바르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값도 더 저렴했으니. 그런데 다 칠하고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창틀과 문들이 옥에 티처럼 더 눈에 띄어버리게 되고야 말았다는 게 흠이었다. 마음 같아선 문짝을 통째로 바꿔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문짝 바르자고 페인트를 더 사자니 남은 페인트가 아깝게 느껴졌다. 그때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다행히 집 근처엔 없는 게 없이 다 있다는 다이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찾던 게 있었다. 바로 '조색제'. 언젠가 다이소 인테리어 코너에서 이런 걸 봤던 기억이 스치듯이 지나갔던 거다. 벽을 칠하고 남은 흰색 페인트에 검은색 조색제를 넣고 섞으면 농도 조절이 가능한 회색 페인트가 탄생했다. 나는 검은색 조색제를 조금씩 섞어가며 내가 원하는 색을 만들고 바로 문짝에다 바르기 시작했다.
색깔이 있는 페인트는 마르고 나면 원래의 색보다 더 연한 색이 나오기 때문에 한 톤 정도 원하는 색보다 더 어둡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그저 너무 어둡지만 않은 회색톤을 바랐던 것이어서 아주 만족스럽게 결과물이 나왔다. 다 칠하고 나니 덩그러니 남은 옥색 문손잡이가 너무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는 예산의 한계로 문손잡이에겐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얼룩덜룩 곰팡이가 펴서 보기가 좋지 않은 주방과 화장실의 실리콘들은 아버지가 나서서 칼로 긁어내고 새로 마감해 주셨다. 나는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꼼꼼한 아버지께서 짚어주셨다. 아버지와 내가 꼼꼼한 분야가 서로 달라 조금 더 빈틈없는 셀프 인테리어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존의 주방 찬장 손잡이는 모조리 떼어버리고 새로 사서 색을 입혔다. (이것 역시 꼼꼼한 아버지께서 치수를 재서 직접 사 오셨다). 이 정도까지 맞추고 나니 방 안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깔끔하게 정돈된 것 같았다. 단 하나만 빼고, 바로 조명! 깐깐한 내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한 구식 형광등 조명은 본인의 운명을 예감한 듯 덜덜 떨고 있었다.
아직은 분위기에 살고 분위기에 죽는다고 말하고 싶은 낭만을 간직하고 있던 나는 무드 없이 길쭉하게만 생긴 구식 형광등 조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도 답을 구할 곳은 중고마켓이었다. 열심히 매물을 찾은 결과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상태와 가격으로 올라온 매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4만 원을 추가 지불하고 엄마께는 운전을, 아버지께는 설치를 부탁하여 설치된 조명을 마지막으로 내 방의 셀프 인테리어는 일단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위 사진들은 막 셀프 인테리어를 마쳤을 때의 Before & After.
입주 전 셀프 인테리어 총결산.
총 소요비용: 넉넉잡아 30만 원. (블라인드는 본가에서 남는 것 떼어옴.)
총 소요기간: 열흘.
총 소요은혜: 산정 및 측정 불가.
혼자 살기엔 넉넉한 투룸이었던지라 종종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이런 집을 어떻게 그 가격에 구했냐며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집의 환골탈태 과정을 모두 집도한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구한 건 월세 20만 원짜리 방이었지만,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월세 50만 원짜리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시킨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