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에서 유학하던 때 독일인 룸메이트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자벨,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금발의 머리,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녀에게선 항상 왠지 모를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었다. 게다가 그녀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던 내 친구들은 그녀가 또라이라며 나에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한 번은 교수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그녀가 주변 반응은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따지고 들어 강의실 전체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전적도 있다고 했다. 독한 감기에 걸려 멈출 수 없이 기침을 하는 나에게 "밤새 기침을 하는 건 나에게 실례되는 행동이니 참도록 해."라고 일침을 했던 걸 보면 과연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런 그녀와 함께 산다는 일은 기침을 참느라 눈물 젖은 축축한 베개를 베고 억지로 잠에 드는 일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와 함께 사는 일이 고난만 가득했다면 나도 진작 학교에 룸메이트를 바꿔달라는 신청을 했을 텐데, 화끈한 성격의 그녀와 함께 살아서 좋은 일도 종종 있었다. 일례로 그녀는 강박적인 청소광이었는데, 툭하면 화장실이고 방바닥이고 락스까지 뿌려가며 광이 날 정도로 박박 닦는 게 습관이었다. 그녀는 청소에 소홀한 나에겐 어떠한 볼멘소리도 없이 우리가 같이 쓰는 변기와 내 침대부근까지도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곤 했었다.
또 가끔은 든든한 정신적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한인학생회 회장으로서 학교 행사에 관련된 준비들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그런 바쁜 와중에 대인관계에 대한 문제까지 겹쳐버려서 아주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다. 방에 들어와 표정이 좋지 못한 나를 발견한 그녀가 내게 무슨 일이 있냐 물었고, 나는 너무 벅찬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가 누군가 나눠 들어주는 듯한 기분에 그만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녀는 말없이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두 팔을 벌려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의 키가 나보다 훨씬 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큰 사람이 든든하게 안아주는 느낌에 나는 그녀의 품 안에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지냈던 때가 이미 5년 전 일이 되어버린 지금 그녀를 다시 이렇게 회상하는 이유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그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평소같이 방에서 시시콜콜한 스몰토크를 나누던 어느 날, 우리는 여행에 대한 주제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신이 난 듯이 본인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그때 20대 초반의 나이로 스스로 과외, 아르바이트, 베이비시터 등의 일로 돈을 벌어서 전 세계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가 본 나라가 이미 100개국이 넘는다던 그녀가 그때 나에게 이런 얘길 했었다.
"송이야. 세상엔 최소 200개가 넘는 나라들이 있대. 그럼 적어도 그 절반만이라도 가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그녀의 이 말 하나에 나는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해외라곤 중국과 태국밖에 가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외의 나라는 가 볼 생각도, 관심도 딱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합이 최소 200개나 된다니. 이 작은 깨달음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을 하고, 코로나19를 겪고, 직업을 두 번이나 바꿀 동안 나는 현실의 삶을 버텨내는 데에 치여 그때의 그 울림과 깨달음은 완전히 잊은 채 살았다. 장기전이 되어버린 코로나19 사태에 항공산업은 회복 불가 수준의 파산사태에 이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현실 때문에 내 가슴속 '세계일주'라는 꿈은 서서히 그 빛을 잃고 마음속 깊은 곳에 방치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기회는 예상치 못했을 때 찾아오곤 한다. 서울에서 약 3년간 혼자 살면서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일을 했던 탓에 번아웃이 온 나는 내가 하던 일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갖게 되었고, 그제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나는 천천히 다시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 마음속 작은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봐야 했는데 바로 그때 예전부터 꿈꿔왔던, 먼지에 뒤덮여 저 먼 구석에 방치되어 잘 알아보지 못했던, 사실은 너무나도 빛나고 아름다웠던 그 꿈이, 그 목표가 비로소 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한 몸 불살라 열심히 일했던 덕에 통장엔 3천만 원 정도의 현금이 모여있었고, 일을 그만뒀으니 시간도 많았고, 항공권의 가격도 예상보단 많이 내려가 있었다. 나는 아직 젊었고, 튼튼한 신체와 체력도 겸비했고, 모험심도 충만했고, 자신감도 빵빵했다. 더 이상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검색했던 비행기 편을 바로 결제했다. 한 달 뒤에 떠나는 베트남 하노이행 항공권이었다.
나의 1년간의 여행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수려한 장관과 멋진 풍경들, 친절했던 사람들과 아름다운 도시에 대한 비유와 감탄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여행기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미리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나의 여행기는 구차하고, 찌질하고, 궁상맞고, 비루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아주 솔직하고, 담대하고, 객기 있고, 게으를 것이다. 애초에 내가 좋은 말만 하면서 자랑처럼 꾸며내는 일들을 잘하지 못하기에 나는 앞으로 이곳에 내가 어떤 것들을 봤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 아주 솔직하게 적을 심산이다. 그러니 부디 불편한 부분이 나와도 이해해 주기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분명히 모두에게 경고했다. 이곳에 아주 솔직한 이야기들을 적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