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4일. 그날은 내가 출국하기 하루 전 날이었다. 당장 내일이 출국인데도 나는 한창 방정리에 매진 중이었다. 다음 세입자를 위해 3년 동안 살았던 흑석동 자취방을 정리해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생각했던 방정리는 그다음 날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날 수 있었다. 할 일을 미리미리 해두지 않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내 고질병이었다.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려면 넉넉하게 8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잠깐 눈을 붙이자니 깨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결국 나는 하루 종일 움직이고 힘쓰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그 새벽에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티켓을 발권하고 짐까지 다 부쳤는데도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비행기에 타서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버텼는데 하필이면 내 뒷자리에 앉은 꼬마 녀석들이 말썽쟁이들이었다. 일행처럼 보이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앞 좌석을 발로 차기까지 하는데도 강한 소리로 혼내는 법이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결국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경고를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보통체구의 성인 여성이 화내는 걸로는 겁먹는 시늉도 안 할 만큼 배짱이 넘쳤다. 결국 나는 피곤함과 스트레스에 절어 걸어 다니는 파김치 상태로 하노이 공항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출국심사도 마치고 짐도 다 찾고 나니 문득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이곳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오늘 묵을 숙소는 아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예약해 두었는데 그 외에 어디를 갈 건지, 어떻게 갈 건지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던 거였다. 나는 일단 공항 안 ATM기기에서 현금을 먼저 인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니 갑자기 0이 엄청 많이 붙은 금액들이 화면에 떠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 나는 베트남 환율이 어느 정도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대충 두 번째로 적은 금액을 선택하고 돈을 뽑은 다음에 옆에 위치한 부스에서 유심칩을 샀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현금과 데이터가 터지는 핸드폰만 있다면 잘 모르는 나라라도 크게 겁이 나진 않았다.
다음 미션은 [호스텔까지 이동하기]였다. 나는 구글맵과 네이버에서 호스텔이 위치한 구시가지로 가는 법을 검색했다. 역시 가장 편한 건 택시인데, 궁색한 배낭여행자에게 택시란 사치에 불과했다. 그다음 방법으로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공항 밖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직원에게 물어서 찾아간 곳인데 이상하게 그곳엔 아무런 표지판도, 앉아서 쉴만한 의자도 없었다. 어리둥절해서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나처럼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저씨의 착장을 보니 한국인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나는 잠깐 망설이다 그분께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아, 네. 한국인이세요?"
"네. 한국인 맞으시구나. 혹시 여기서 버스 기다리고 계세요?"
"네, 맞아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저씨는 이번 베트남 방문이 76번째 방문이라고 하실 만큼 베트남 전문가 수준의 여행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베트남과의 시차와 환율도 모를 만큼 베트남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던 나는 그를 만난 게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아저씨를 따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저씨께 귀동냥한 지식들로 추후의 여행 일정을 대략적으로 계획해 볼 수가 있었다.
버스는 나를 구시가지 입구 쪽에서 내려주었다. 거기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지도를 보면서 호스텔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봄날씨였던 한국과는 달리 하노이의 오후는 너무 습하고 더워서 앞뒤로 배낭을 메고 조금만 걷자 바로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나를 스쳐가는 오토바이 떼들과 이방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들, 이따금씩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툭툭 기사들. 그래 이게 바로 베트남이지. 생경한 그 느낌을 즐기며 나는 계속 호스텔을 향해 씩씩하게 걸었다.
내가 당일날 인천공항에서 예약한 그 호스텔은 1박 가격이 5000원대인 하노이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별생각 없이 가격 낮은 순으로 검색을 했다가 후기 평점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길래 속는 셈 치고 예약을 해봤는데 직원이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닭장같이 빽빽하게 2층침대를 욱여넣은 방은 제대로 짐을 펼쳐놓을 공간은커녕 발 디딜 틈도 찾기가 어려웠다. 베란다 쪽에선 까무잡잡한 피부에 퀭한 눈을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뿔싸. 이곳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한 방에서 지내는 혼성 도미토리였던 것이었다.
잠자리는 그저 이불과 베개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성격인지라 남녀혼숙인 방을 사용하는 건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진짜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방청소를 하느라 온몸에 땀을 흥건하게 흘렸었는데 하노이에 도착해 호스텔에 오는 그때까지도 나는 샤워를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그냥 침대에 드러눕기엔 너무 찝찝할 것 같아서 나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찾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벗기 전에 화장실 문을 잠그려는데 아무리 문고리를 돌리고 밀고 당기고 이리저리 수를 써봐도 문이 도저히 잠기지가 않는 거였다. 진지하게 샤워를 하길 포기하려다가 잠시 후에 있을 대학교 동창과의 약속이 떠올라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옷을 벗었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가늠도 안 될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샤워기 옆엔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찌든 때가 덕지덕지한 변기가 있었다. 아침마다 원활한 배변활동을 하는 나지만 내일은 변비에 걸리는 한이 있어도 저 변기에서는 일처리를 도저히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샤워를 하는 내내 등 뒤에서 문이 갑자기 왈칵하고 열릴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벗어난 지 7시간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과 땅처럼 달라져버린 삶의 질에 현실감각을 되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해본 샤워 중 가장 빠른 샤워를 했던 것 같다.
저녁엔 베트남인인 대학교 동창을 만나 묵은 이야기들로 회포를 풀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호스텔로 돌아오니 아깐 안 보였던 룸메들이 몇 명 더 늘어나 있었다. 베란다에서 벌어진 술파티에 잠깐 꼈다가 몰려오는 피곤함에 나는 일찍이 다시 내 침대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잠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깰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도 없는 그 방엔 커버도 없이 먼지가 시커멓게 껴있는 선풍기 한 대가 이 무더위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습하고 미지근한 바람을 뿜어대는 그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나는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한 번 더 뼈저리게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