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연은 예측할 수 없어서 가치 있는 것

by 최예또


라오스의 마지막 도시 루앙프라방에서 나는 다시 프랑스 커플을 만났다. 내가 타케크로 향하는 동안 방비엥으로 향했던 그들을 야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 것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라오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꽝시폭포를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우리는 근처의 몇몇 툭툭 기사들에게 흥정을 하다가 값을 제일 잘 쳐준 한 기사의 툭툭에 올라탔다.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그곳엔 의외로 폭포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닌 보호 관찰 중인 곰들도 볼 수 있었고 숲 속 트래킹처럼 산책길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꽤 한참을 걸어 들어가 마주한 꽝시폭포는 정말 말 그대로 에메랄드빛을 가득 품은 절경이었다. 타케크에서 멋 모르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다가 오른쪽 발목 안쪽에 화상을 입었던 나는 환부에 생긴 수포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애초에 수영도 못하는지라 폭포로 형성된 호수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아쉬운 마음에 한쪽 구석에 앉아 발장구를 쳤다. 저 멀리 물개처럼 자유롭게 유영을 하는 프랑스 커플은 아름다운 폭포 배경과 어우러져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런 풍경을 혼자서 감상하고 있자니 나는 여행 중 처음으로 부모님과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다음 국경도 함께 넘기로 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태국이었는데, 문제는 우리가 왔던 방향 따라 북쪽으로 가게 되면 나오는 훼이싸이 국경이 지금은 열려있는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봐도 모두 코로나19 이전의 내용들 뿐이어서 우리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북쪽으로 가든가, 아니면 다시 남쪽에 위치한 비엔티안으로 내려가서 농카이 국경을 넘어야 했다. 한 번 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안 가봤던 곳을 개척하는 것을 선호하는 나이지만, 프랑스 커플의 만류에 나는 결국 비엔티안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곧장 고속열차를 예매하러 여행사 사무실에 들렀다. 한참 줄을 기다려서 물어본 결과 내일 오전 중에 출발하는 기차는 단 두 자리 밖에 남지 않았고, 세 자리를 예약하려면 저녁 6시에 출발하는 기차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오전에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할까 봐 살짝 긴장하는 맘으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정이 있었는지 그들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 같이 저녁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각자 숙소로 일찍 돌아가서 다음 날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날 저녁에 나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루앙프라방을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태까지 숱하게 많은 차를 타고 많은 곳을 떠나왔지만 이상하게 그곳을 떠나는 것만큼은 그전처럼 쉽지가 않아서 나는 창밖으로부터 줄곧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루앙프라방에 올 때 함께였던 랏다와 땜의 자리가 돌아갈 땐 프랑스 커플로 바뀐 것처럼, 인연도 시간처럼 흘러가고 또 새롭게 채워진다는 걸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아쉬움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기차는 달리고 또 달려서 이윽고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나는 울고불고 힘들게 랏다를 떠나보내고서 다시 그녀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비엔티안에 도착하더라도 그녀의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렇기에 오늘 비엔티안에서 1박을 더 머무르지 않고 바로 태국으로 향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프랑스 커플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린 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말꼬를 트게 된 태국인 부부를 따라갔다. 아까 기차에서 얘길 나눠보니 그들도 오늘 저녁에 바로 태국으로 넘어간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8시도 넘은 시각에 국경을 넘는 일을 반신반의하고 있던 우리는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따라나섰다.


태국인 부부는 수월하게 우리를 농카이 국경으로 향하는 미니밴에 태워주었다. 국경에 위치한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9시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이 캄캄하고 인적도 드문 밤에 국경을 잘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나도 확신에 찬 부부의 태도에 우린 왠지 모르게 안도하며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 부부가 우리에게 통역을 해주는 척 더 많은 돈을 받아 수수료로 챙기려고 하는 게 아닐까 잠깐이라도 의심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들은 우리가 우정의 다리를 건너 태국 국경을 무사히 넘고 나서도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우돈타니까지 그들의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소정의 기름값이라도 보태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한사코 만류했다. 그 부부의 목적 없는 호의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우리는 잠깐 쉬려고 들른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간식들을 잔뜩 사서 그들에게 건넸다.


이렇게 메콩강을 경계로 나뉜 두 나라는 거리는 가깝지만 인프라는 극과 극이었다. 경제가 불안전해 환율이 치솟고 있었던 라오스에서는 은행에서 고지하는 환율보다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환율이 훨씬 값을 많이 쳐줘서 항상 가지고 있던 외환을 그때그때 환전해 가며 아슬아슬하게 사용을 했는데, 국경을 넘자마자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24시 편의점에서 마음껏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니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오밤중에 걸어서 국경 넘기] 미션도 우연히 만난 귀인 덕에 이렇게 무사히 클리어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우돈타니로 향한 이유는 치앙마이로 가기 위한 기착지라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싸고 예쁜 옷도 많고 야시장에 야식거리도 잘 구비되어 있는 곳이라서 추후에 태국 여행을 다시 계획하게 된다면 더 많은 일정을 할애해서 머물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곳이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에어컨이 없는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땀이 계속 흘러서 찬 물 샤워를 세 번이나 하고서야 겨우 잠들었던 개고생의 추억도 있었지만,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열대야에도 어렵지 않게 잠들 수 있는 곳에서 머무르는 걸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났으니. 이 경험 또한 좋은 교훈으로 남기기로 했다.


우리는 우돈타니에서 이틀을 머무르고 치앙마이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우리가 굳이 버스를 선택했던 이유 첫 번째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렇게 오래 버스를 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태국의 야간버스는 베트남이나 라오스처럼 누워서 갈 수 있는 버스가 아니었다. 좌석을 뒤로 젖힐 수는 있었지만, 내 바로 뒷자리에서 프랑스 커플이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기에 이기적으로 좌석을 최대로 젖힐 수가 없었다. 결국 거의 꼿꼿이 앉은 상태로 화장실 한 번 들르지 못한 채 열세 시간을 내리 달렸던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니 신발이 맞지 않을 정도로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다.


우리는 숙소의 방향이 반대였어서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에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치앙마이에서부터의 계획이 많이 달랐던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가 없었다. 당차고 똑 부러지던 엘사,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지만 항상 해맑던 로메인과 나는 짧은 포옹을 마지막으로 간단한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가 인연이 된다면 지구 어딘가에서 또 만나자는 농담 같은 인사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