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쉬운 건 그때일까 그때의 우리일까

by 최예또


랏다와 나는 비엔티안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영상편집을 해야 할 것들이 많이 밀려있었고, 랏다는 회사에 신청한 휴가날이 될 때까지 며칠 더 출근을 해야 해서 나는 그녀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방을 셰어 하면서 좁고 삐그덕 거리는 2층침대에서 잠을 청하던 신세였다가 갑자기 아늑하고 안전한 잠자리를 갖게 되니 푹 잘 수가 있어서 그동안 묵었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곳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말씀을 드려서 그분이 차려주시는 밥을 먹었다.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다가 저녁이 되면 랏다가 퇴근길에 사 오는 음식을 먹거나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함께 디저트 같은 걸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짧았지만 재충전의 시간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며칠 뒤, 랏다와 랏다의 여동생인 땜까지 우리 세 명은 다 같이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얼마 전에 새로 개통했다는 라오스 최초의 고속열차는 수도인 비엔티안을 중심으로 북부 쪽에만 건설이 된 상태였는데, 버스를 이용하면 1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고속열차로는 고작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서 시간을 6배나 아낄 수가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온라인 예매 서비스까지는 아직 지원이 되지 않아서 꼭 현장에서 긴 대기줄을 거쳐야만 티켓을 구할 수가 있다는 점 정도였다.


이미 루앙프라방을 숱하게 자주 왔었다는 랏다는 모든 스케줄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루앙프라방의 여행자거리는 식당과 야시장 등이 다 모여 있어서 도보로 움직이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는데, SNS에서 유명한 맛집이나 카페들은 이 더운 날씨에 직접 걸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2박 3일간 우리의 발이 되어줄 오토바이를 두 대 빌리기로 했다.


나는 여행자의 신분인지라 최대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행동을 삼가고 싶어서 얌전히 랏다의 뒤에 타겠다고 했는데, 바퀴가 두껍고 더 멋있게 생긴 오토바이를 빌린 랏다의 동생이 선뜻 나보고 한 번 운전을 해보라고 하는 거였다. 괜한 객기에 운전대를 잡은 나는 머지않아 이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딱 바퀴 두 배 정도의 간격으로만 널빤지를 깔아놓은 다리를 건널 때가 되자 나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나의 앞뒤로 다리를 건너는 오토바이들이 빽빽해서 나는 거기서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다. 잠깐의 실수로 바퀴가 널빤지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우당탕 넘어지거나 최악의 경우엔 다리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상상이 들어서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 다리를 건넜는지 모르겠다.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랏다가 우리에게 여기에 살고 있는 자기 친구를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그들을 보고서야 나는 그녀가 말한 친구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세명과 짝수도 맞춘 세 명의 남자들이 온 거였다. 그때부터 그곳의 분위기는 갑자기 헌팅포차와 비스무리한 느낌이 되었다. 우리는 루앙프라방 비어를 마시면서 술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젊음과 이성, 그리고 밤과 맥주가 존재하는 한 언어장벽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다음 날 우리는 모두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랏다를 따라나서서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맛있는 쌀국숫집이라는 곳에서 까오쏘이를 시켰다. 진한 된장맛이 나는 달달한 쌀국수 느낌의 그 요리는 별도로 매운맛을 첨가해서 먹으면 땀이 쭉 나는 게 숙취해소에 제격이었다. 우리는 라오스 전통 복장을 입고 같이 사진도 찍고, 훠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중국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훠궈집에서 만찬도 즐겼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는 사이 우리가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2박 3일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렸고, 그만큼 우리의 이별도 성큼 다가와 있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말없이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출발시간까지 기다리다가 카페 앞으로 도착한 택시를 탔다. 그녀는 나를 먼저 오늘부터 혼자 묵게 될 새 숙소 앞에 내려다 주었는데, 택시에 타자마자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계속 눈물이 흐르는 바람에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인데도 나는 그녀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나를 알아온 시간 동안 한 번도 내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랏다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자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울다가 웃으면서 이별을 했다.


나는 그녀가 떠나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서도 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울고,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또 울었다. 여태껏 남자친구랑 사귀다 헤어졌을 때에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처음이라 나는 내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이성적으로 바라봤던 것도 아니고, 그녀가 불치병에 걸려 다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사이가 나빠져서 연락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자꾸 눈물이 흐르다 못해 오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때부턴 참지 않고 속 시원하게 펑펑 울어버렸다.


방 안에만 있으니 더 우울하고 슬퍼지는 것 같아서 나는 결국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에 열린 야시장으로 인해 바깥의 분위기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나는 반짝거리는 야시장을 따라 걷다가 이내 한쪽에 위치한 사찰로 들어섰다.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도무지 내 감정이 내 마음처럼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거기서도 한바탕 눈물을 흘렸다. 랏다가 떠난 후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게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울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몇 시간째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슬프고 아쉬운 이유는 고작 그녀가 떠나서였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왜 그럴까. 나는 나의 내면과 진심에 귀를 기울여봤다. 생각해 보니 랏다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마치 우리가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그립고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은 그런 표면적인 이유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가 나는 그렇게 가슴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것이었다. 졸업 후 한국에 와서 이리저리 치이며 사느라 회상 한 번 해보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이, 막상 당시에는 행복한 줄도 몰랐던 그때 그 순간들이 그녀와 함께 나한테서 멀리 떠나가버린 것 같이 느껴져서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처럼 언제나처럼 뒤에서 앞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흐를 뿐이다. 그래서 가끔 어른은 아이가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으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어서. 그때의 내 모습과 사람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힘들었지만 행복했었던 그때가 너무도 소중해서. 우리는 평생 과거를 후회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기억할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펑펑 우는 방법으로, 또 가끔은 따뜻한 미소를 짓는 방법으로. 나는 그날, 돌아가고 싶은 지난 과거를 울면서 보내주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른도 가끔은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해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