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들이 4교시가 아닌 5교시 후 하교를 하는 날은 마음이 좀 여유롭다.
고작 한 시간 차이지만 어찌나 크게 다가오는지 오늘은 그 여유로운 목요일이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커피 향도 좀 느끼며 다 마시고 나서 생각해도 될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머릿속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넣었다 뺐다 바쁘다.
오늘은 모처럼 책도 읽고 글도 좀 많이 써볼까, 아니면 지인한테 연락해서 티타임이라도 가져볼까 불어오는 가을바람 탓인지 자꾸 감성이 먼저 나댄다. 선약도 아닌데 무슨 갑작스러운 약속이야 잠시나마 나댔던 감성을 누르며 일단 어제처럼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집 돌보기부터 하자 마음먹는다.
그래도 가을바람 탓인지 생각나는 지인들에게 모처럼 아침부터 안부 카톡을 전송했다.
얼마 전 드디어 나도 MBTI 검사라는 것을 해봤다. 딸이 MBTI 관련 책을 여러 권 사달라고 하고 여러 매체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다들 그(MBTI)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그게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었다. 사람 성격이야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뭐 그리 짜 맞추어진 검사지에 하나하나 체크를 해가며 굳이 ‘나는 이거다’ 하는 정답을 얻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그걸 묻고 공유까지 해야 할 일인지 싶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검사를 해본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이 물었을 때 대답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득 ‘이제 와서’ 나 스스로가 나의 그것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MBTI 검사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자마자 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방에서 달려 나와 내게 체크할 검사항목을 보여줬다. 이 녀석이 이리도 잽싸고 친절했던가. 친절한(?) 딸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나도 내 MBTI 결과를 알게 되었다.
“역시 엄마는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딸은 검사결과에 백 퍼센트 공감했다.
두구두구두구... 나는 ISTJ였다. 딸이 내민 책을 읽어보니 신기하게도 내 이야기가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이 아이는 정석대로 사는 아이다. 이 아이는 질서가 있는 간결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담담하게, 일상을, 성실하게 누가 보든 안보든, 자기 원칙대로 실행한다. 준비의 제왕이자, A부터 Z까지 플랜을 짜는 아이이며, 계획만 하는 게 아니라 실행까지 잘하는 아이다.
오늘도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할 미션들을 모두 클리어했다. 몸은 고되지만 역시 마음은 편안하다.
매일 뭐 그리 쓸고 닦냐며 주변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하루쯤 빼먹으면 어떠냐고, 무슨 매일이 대청소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태 날 잡아서 대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사실은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매일 묵묵히 하는 것, 그게 내가 나와 내 가정을 돌보는 삶의 방식이다.
대신 오늘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맘껏 느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ISTJ, 내 마음의 소리도 들여다보며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어 다시 시작한 글도 써본다.
하교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떡집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콩떡, 딸이 좋아하는 인절미, 아들이 좋아하는 무지개떡을 사고 오늘은 예정에 없던 빵집에도 들를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금빵도 하나 사고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