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방향을 이리저리 몇 번씩이나 바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역시나 차량 뒤에 ‘초보운전’이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있다. 고층에 살 때는 몰랐던 게 저층으로 오니 많이 보인다. 아니면 내가 요즘 관심을 ‘크게’
두고 있는 부분이어서 더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하긴 고층에 살 때도 평소 사람 잘 알아보는 능력 덕분에 같은 동 주민들의 차량은 대충 한두 번 보면 매치할 수준이었다.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어, 몇 호 누구 차다.” 이러는 모습에 남편과 아이들은 농담으로 “엄마한테 잘 못 걸리면 안 되겠다.” “뭐든 다 기억해.” 하며 놀리곤 했다. 고층 살 때도 그랬는데 저층에 오니 더 잘 보이는 덕분인지 앞동 주민과 차량 매치도 도전해 볼 만하겠다 싶다.
오래전부터 생각했지만 주차장으로 들고나가는 차량들을 보면서 참 우리나라 사람들 운전 잘한다 싶다. 그 좁은 곳을 요리조리 휙휙 돌려가며 야무지게 탁 대고 차문을 열고 빠져나오는 모습이란 여간 멋있는 게 아니다. 아직 자차도 없고 장롱면허인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아침에 본 초보운전 아주머니도 그랬고, 1층에 사시는 손녀들 외할머니도 그렇고 20년이 넘는 운전경력을 자랑하는 지인들도 그렇고 내겐 다 무척이나 부럽고 멋있는 존재들이다. 그중에 으뜸은 단연 부드러운 운전실력을 자랑하는 우리 남편이지만.
20년 운전경력을 자랑하는 지인들은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아 운전하기 귀찮다.”
그럼 그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아 나도 운전하기 귀찮아봤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들 ‘빵’ 터진다.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난 진심이다.
20년 장롱면허를 자랑하는(?) 내게 운전경력을 쌓을 기회가 조만간 주어질 것 같다.
늘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면 같이 걷는 아이엄마들이 왜 이리 걸음이 빠르냐고 놀란다. 그럼 난 또 아무렇지 않게 “매일 차만 타고 다니니 그렇게 늦지, 열심히 걸어 다니다 보면 이렇게 돼.” 대답한다. 그러고 나면 다들 또 ‘빵’ 터진다. 이번에도 난 진심인데.
그나저나 무슨 차를 사야 할지 연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다. 이러면서 지난 글에서 밝힌 대로 ISTJ인 나는 벌써 주차는 어느 쪽에 해둘지까지 고민해 뒀다.
완벽함을 보여주지 못할 바에(완벽함이 아니라 수십 번 바퀴를 돌려대다 비틀게 주차하고 올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르는 쪽으로 가자 싶어서 우리 동에서 보이지 않는 대각선 동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실천하려는 나지만 정작 내 안에 꿈틀대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컨트롤이 안 되는 중이라 사실 무섭다.
그래도 ‘엄마’라는 책임감으로 아마도 시작해내지 않을까 싶다. 내후년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좀 거리가 있다. 물론 스쿨버스가 운행되지만 늦잠꾸러기 소녀님께서 한 달 내내 스쿨버스 타는 미션을 완벽하게 클리어할 거라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니까 안다 내 딸을. 사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야, 타!” 하며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싶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지난 여름내 많이도 내리는 비가 얼마나 야속하던지, 여름에 오는 폭우는 봄꽃 복숭아에 맛에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슬프다.
폭우를 뚫고 걸어가는 딸이 안쓰러워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차가 있으면 이런 날 데려다주고 좋을 텐데, 미안해.’라고 문자를 보내면 늘 괜찮다던 아이다. 나름 또 속이 깊다.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있다는 칭찬을 꽤 들었었다. 발야구 선수, 계주선수 이런 것들은 도맡아 했으니 나쁘지 않았나 보다. 요즘 아이들과 볼링, 탁구, 축구 등을 하면서도 처음인데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렇다. 그러니 ‘나 운전도 잘할 수 있겠지?’ 스스로 주문을 거는 중이다.
다시 또 베란다 창을 넘어 주차하는 모습들을 봐야겠다.
요리조리 바퀴 굴려가며 주차선에 꼭 맞게 대고 야무지게 문 탁 닫고 내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좋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 내 나이 마흔에 이렇게 또 하나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