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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힘행 Oct 09. 2021

공짜집

내가 가장 사랑한 장소

1년 동안 미치도록 사랑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가까운 캘거리 외곽에 위치한 한 주택이다. 

가본 적도 없는 집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 집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속의 메시지를 통해서 집을 갖게 되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집에 대한 생각과 고민 속에서 집이란 무엇인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집에서 사는 상상 놀이를 하면서 행복하였다 . 


2019년, 집을 공짜로 준다는 믿기 어려운 뉴스를 보게 되었다. 

밀러 빌이라는 마을, 작은 호숫가, 언덕 위의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에 사는 부인이 자신의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아 팔지 않고 스스로 다음 주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녀가 내건 조건은 이 집에 살 게 되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편지 한 장에 쓰고, 25달러 참가비를 보내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마음에 드는 사연의 주인공에게 그녀의 집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이 집은 시가로 1.7 million, 한국 돈으로 셈하면 15억에 달하는 고가의 저택이었고, 부인은 곧 각종 방송국과 인터뷰를 해서 캐나다 전국에 알렸다.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반신반의하였지만 공짜 집을 꿈꾸면 꿀수록 어린 나에게 집이 되어 주지 못했던 아버지가 네 명의 손주들과 나에게 집을 지어주려고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내가 일곱 살 때 엄마와 헤어져 따로 살았기에 어린 시절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짓는 건축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집을 지어주면서 정작 당신의 집은 짓지 못한 사람. 

아버지라는 존재는 바로 집의 지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눈이 오면 눈을 막아주고,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는 지붕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나는 바로 지붕이 없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맑은 날에는 그 존재의 필요성을 잊었다가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집에서 나는 살아왔음을.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어린아이 네 명을 아등바등 키우면서 힘들었던 집 없는 설움이 복받쳐 밀려왔다. 


'분명 아버지가 생전에 못 한 선물을 이번에 해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종종 온 식구가 다 함께 영화 하나를 투표하고 골라 무비 나잇을 하곤 한다. 

한 번은 인크레더블 2를 보았는데,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슈퍼히어로인 엄마 덕분에 엄청나게 멋진 사택을 받는 장면은 계시처럼 다가왔다. 

능력 있는 엄마 덕분에 꿈의 집으로 들어가는 식구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집인 낙수장(落水莊·Falling water)을 오마쥬 한 듯.

        

내가 쓴 편지가 뽑혀서 이 큰 집으로 이사 들어가게 되는 장면이 눈에 선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 지인으로부터 6인용 고급 식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식탁의 우아함은 바로 밀러빌 집 분위기에 어울렸기 때문에, 나는 이사할 때 식탁은 꼭 가져갈 것이라 마음먹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러빌 집을 들락거렸다. 

일층에는 반원형의 피아노 방이 있는데 승주에게 줄까, 승빈이에게 줄까 고민하였다. 

문이 없으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문을 달아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넓은 주방 카운터 위로 온갖 주방 도구를 늘어놓고 빵을 굽고, 쿠키를 구워서 이웃집에 배달을 하러 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긴치마를 나풀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차고 위에 위치한 작은 방은 당연히 승우와 승연이가 써야겠지. 

이층침대를 어느 쪽 벽에 붙여 놓을까. 큰방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주욱 걸었다. 

1층 거실은 손님들이 오면 함께 차를 마시고, 2층 거실에는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관으로 만들자. 

일주일에 한 번씩 승빈이와 거품 목욕을 하고, 종종 아침 해가 뜨기 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를 맨발로 나가 자갈돌을 밟을 것이다. 

해가 뉘엿거릴 때 승연이는 진흙을 가지고 놀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둘 것이다. 

친구들과 친인척이 방문하여 휘둥그런 눈들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제일 먼저 지하 포도주 창고부터 보여준다. 눈을 뜨면 그 집 안방이었고, 발코니에서 낮잠을 잤고, 애들은 실컷 떠들게 놔두었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에서 아니, 잘 쓴 편지 한 장으로 이렇게 근사한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와 착각의 늪을 원 없이 헤매며 일 년이라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대망의 결과를 발표했다. 

뜻밖에도 공짜 집 이벤트는 참가자 수의 부족으로 두 차례의 기한 연장을 하고 결국은 무산되었다. 

황당무계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내 심연의 이성은 나지막이 인정하고 있었다. 

잘 놀았다고. 

후회 없이 행복했노라고.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토록 열망하던 집이라는 대상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깨달은 바는 집은 건물이 아니고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이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머물고 있으면 비참해진다. 

세상 사람들을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집을 건물이 아닌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집은 낭만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집이 아닌 무용학원에서 자란 나에게 무용실과 엄마의 사무실이 집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집은 아름다운 시간과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명품 냉장고와 식기세척기가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가본 적도 없는 집에서 일 년 동안 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 속 원망뿐이었던 아버지도 만나 회포를 풀었고, 온갖 지인들과 친척들이 방문해 잔치를 벌이고 놀았기에 이제 집 없는 설움은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한 그 곳을 당신도 가볼 수 있다, 언제든지.  


 https://www.writealetterwinahome.ca



내가 응모한 영상 에세이

https://studio.youtube.com/video/G31fkJqA5tQ/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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