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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힘행 Oct 09. 2021

조각조각이 모여 행복을 만드는 조각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자랑스러운 수많은 한국 문화 가운데서 나는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조각보를 꼽고 싶다. 내가 나름 해석하는 조각보의 의미가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이렇다. 조각보를 펼쳐 보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가 들어 있다. 조각들은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이 모여 있다. 한 조각만 놓고 보면 쓸모없는 자투리 천이다. 천 조각들은 시간이 흘러 흘러, 따로따로, 차곡차곡 모아졌다가 살뜰한 누군가의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연결되어 이내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조각보를 통해서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배울 수 있다. 조각보는 조각 보자기의 줄임말이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손수 옷을 지어 입던 그 시절에 남은 천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아끼느라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서민 문화다. 아끼고 필요한 대로 다시 고쳐서 사용했던 조각 보자기의 의미는 바로 한국 사람들의 지혜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할머니는 한시도 쉬시는 법이 없었다. 허투루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으셨다. 두 손을 놀리지 않으시고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늘 하셨다. 어린 나는 작은 조각 천들이 점점 커져서 이불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모와 네모가 번갈아가면서 이어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바람개비도 보이고 기와집도 보였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에게도 보고 배운 것이 있어 검소함이 배어있다. 헤진 아이들 옷의 멀쩡한 부분을 오려서 조각이불을 만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입었던 옷이 이불로 변하자 재밌어했다. 엄마 손으로 만든 물건을 통해서 사랑도 느끼는 것 같았다. 물건이 낡으면 버리지 않고 적어도 한번은 고쳐서 사용할 때 나도 한국 사람들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조각보는 마치 복잡한 사회를 추상화로 그려 놓은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되어 흔히 모자이크 사회라고 일컫어진다. 다민족이 각각 문화의 색깔을 지키도록 정책적으로 독려한다.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가 한국말만 할 줄 알아서 걱정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걱정 말고 집에서는 계속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문화를 가르치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조각보는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만든다. 완성되면 하나의 그럴듯한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각각의 다른 색깔 조각들이 모여서 어우러진 전체를 이룰 때는 너무나 아름답다. 조각 모양은 제각각인데 크게 한 덩어리가 되면 조화로움 그 자체가 된다. 조각 하나가 혼자서 빛을 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 조각이 모이면, 그 모양이 다양할수록, 그 색깔이 다채로울수록 모자이크는 가치가 높아진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면서도 어울려 상생하는 사회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소수 집단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습은 마치 작은 조각들이 자기 빛깔로 반짝이는 것 같다. 인종과 문화가 복잡하게 섞여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추상화로 보이는 것이 바로 조각보가 아닌가 한다. 


조각보는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요즘엔 조각보를 작품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거나 집안을 꾸미거나 하는데, 원래 조각보는 밥상을 덮어 놓는 상보였다. 예전에 어머니들은 밥때를 놓쳐서 못 먹은 식구를 위해 밥을 차려놓으면서 상보로 덮어 놓았었다. 그때 밥상보가 바로 조각보였다. 조각상보는 어느 집에나 있었던 듯하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였던가. 게다가 예쁜 상보를 걷어 올릴 때면 가족의 정을 느꼈고,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혼자 먹어도 같이 먹는 기분이 들었었다. 나는 복을 불러다 준다고 하여 '복 보자기'라는 별명이 붙은 조각보를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조각보로 덮어진 상이 차려져 있는 집의 그림은 나에게 행복한 가정의 풍경이다.


작은 조각보가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행복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주니 사랑스럽지 않은가. 자투리지만 버려지지 않고 그럴듯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조각보는 작지 않은 행복을 만들어낸다. 낡은 물건을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한번 고쳐서 쓸 때 한 조각만큼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절약하는 마음은 소비를 줄이게 되고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습관을 만들 수 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동작은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할 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차분하게 만든다. 차분해진 마음가짐은 큰 욕심을 바라기보다는 작은 소유에도 만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 아닐까. 큰 행복은 자주 오지 않지만 작은 행복은 매일 느낄 수 있다. 작은 감사함은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조각이 모여 행복을 만드는 조각보를 하나 정성스럽게 지어야겠다. 그 조각보를 한쪽 벽에 걸어두고 되새김질을 할 수 있으리라. 조각조각이 모이고 이어지면 작은 행복을 만들 수 있음을.


아름다운 조각보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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