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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05. 2022

[중년이라 방방곡곡] #5

# 시간을 멈추고, 텅 비어라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꿈의 목적지 우유니(Uyuni)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유일한 공항은 한 칸짜리 1층 건물. 게이트도 없고 탑승교도 없어서 비행기가 마당 한가운데 동그마니 선다. 일꾼 한 명이 우리의 수하물을 일일이 현관문 안까지 손으로 밀어 넣는 고전적인 아날로그식 대응.


게이트도 탑승교도 없는 우유니 공항 (사진: 박승숙)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없어 사람이 직접 짐을 옮기는 우유니 공항 (사진: 박승숙)
우유니 시내의 비포장 도로와 자동차 매연 (사진: 박승숙)


라파스처럼 차가 많지도 않은데 우유니에도 매연이 심각하다. 길이 비포장 도로라서 먼지도 엄청 날린다. 박스 형태로 저렴하게 지은 건물들이 들쭉날쭉 들어차 있어서 시내는 통일감도 없고 딱히 특색도 없다. 관광객으로만 먹고사는 지역이라 그런지 식당과 호텔을 제외하고는 다른 비즈니스는 돌아가는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노점상들과 작은 시장이 밋밋한 도시에 약간의 생동감을 덧칠해주고 있다.


한국인 ‘번개’ 모임?  


우유니에서 가장 번화하고 깨끗한 곳은 여행사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아베니다 아르쎄(Av. Arce)다. 그 길과 T자 형으로 만나는 아베니다 페로비아리아(Av. Ferroviaria) 길에도 여행사들이 줄을 이어 서 있다.  


길에 들어서면 갑자기 한국어가 곳곳에서 들린다. 어린 학생부터 중년까지 '한국 여행객들 모여라' 번개팅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순식간에 많은 정보가 오가고 걱정 어린 안부도 오간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내느라 하루 종일 인상 찌푸리고 무뚝뚝한 볼리비아 사람들 틈에서 건강하고, 여유 있고, 사는 게 즐거워 보이는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니 다림질이라도 한 양 내 마음도 단정하게 펴진다.   


우유니에 도착하면 한국 사람들은 가방도 풀지 않고 여행사부터 들린다. 동일 블로그를 읽고 온 탓인지 다들 똑같은 업체를 찾아가서 똑같은 가이드 이름을 대며 투어 신청부터 하는데, 당시만 해도 유명한 블로그 글 하나가 모두에게 회자되고 있어서, 모두가 원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다. 여행사 직원들은 이런 한국인의 전형적인 반응에 곤란해하며 귀찮아했다. 며칠 여행사들을 다니면서 지켜보니 한국 사람들을 다룰 때 그들은 다음의 방식 중 하나를 취하는 듯 보였다.


우선, 정직하게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설득을 시도한다.


우리 가이드들 다 훌륭해요. 눈이 있으면 보세요!


그들이 가리키는 사무실 벽에는 친필로 써 붙인 각 나라 언어의 투어 후기가 붙어 있다. 가이드를 진심으로 칭찬하며 만족해하는 한국인의 후기들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마음을 접고 그냥 계약하면 서로 편한데, 그래도 고집스러운 손님들은 있기 마련. 여행사는 다음 단계로 접근한다.


당신이 찾는 가이드 일정을 한 번 알아볼게요.


전화를 돌려서 통화하는 여행사 사장.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그건 시늉임에 분명하다. 전화를 끊고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그 가이드가 손님이 원하는 아무 날 아무 시간의 팀을 이끌지 않는다면서 똑같은 말투로 아쉬워하기 때문이다. 그쯤에서 맘을 고쳐먹는 게 상책.


하지만 끝까지 버티는 불굴의 한국인들이 있다. 그러면 여행사 측은 제일 비겁한 전략을 쓴다.  


알겠어요. 그 가이드 팀에 넣어줄게요.


안심한 한국인이 결제를 마치면 이제 여행사 직원들은 입을 씻는다. 흔해빠진 가이드 이름만 알 뿐 얼굴도 모르는데, 누가 진실을 알랴? 아무개랑 같이 간다고 좋아하며 일행에게 자신의 성과를 자랑한 한 사람은 나중에 그 가이드가 옆 건물의 여행사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듣고서 분통을 터뜨렸다.  


누구와 한 차를 타시겠습니까? 


우리는 사기극 직전에 업체 주인이 전화 시늉을 한 뒤 마음을 접은 쪽이다. 그렇게 합류하게 된 반나절 투어는 일본인 3명과 독일인 2명으로 구성된 팀.


소금사막으로 향하는 투어 차량들 (사진: 박승숙)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받아 회사를 그만둔 30대 일본인 남자는 한 달의 공백기를 이용해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월드'로 묶인 제휴 항공사에서 제시하는 세계일주 프로그램을 통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항공 구간을 뛰어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는 중.


일본 여성 둘은 20대 간호사 친구로 같이 일을 때려치우고 남미 여행을 왔단다. 머리 모양도 똑같고 옷도 똑같이 사 입어서 꼭 쌍둥이 같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입을 모아 똑 닮은 리액션을 과장되게 합창하는데 스페인 표현 몇 개를 일본식 발음으로 반복하며 까르르까르르 호응해주니 가이드가 좋아한다. 며칠 동안 우유니 투어를 다양하게 경험해본 데서 오는 노하우로 가이드가 뭘 하려고 하는지 말귀도 척척 알아듣는다. 덕분에 우리는 그 둘이 가이드에게 조른 덕에 '매직 필름'이란 것도 찍었다. 결과물을 보면서 “초점이 나갔네. 다시 찍어야 하네.” 하며 그 둘은 디렉팅도 잘했다.

 

투어 베테랑 일본인 아가씨들 덕에 찍게 된 '매직 필름' (영상: 박승숙)


20대의 독일인 여자 두 명은 작업치료사로 역시나 친구다. 한 명은 칠레에서 승마치료라는 것을 배우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중. 고국에서 친구가 휴가 여행을 와서 함께 남미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막 온 친구는 고산병에 시달리는지 투어 전부터 얕은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한다. 말수가 점점 줄더니, 우유니 사막에는 발 한 발 딱 떼보고 바로 돌아가 두 눈을 꼭 감고 입도 꾹 다문 채 트럭의 맨 뒷좌석에 앉아서 창문 위 손잡이를 움켜쥐고 끙끙댔다. 칠레 유학생은 자기는 익숙해서 괜찮다고 큰소리쳤지만, 해발 3600미터의 우유니에는 적응을 못하겠는지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인다면서 결국 단체 사진을 찍다 말고 차로 돌아갔다.  


틈만 나면 나는 그들을 살폈다. 똑같이 아파 봤던 사람으로서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겠어서 손 마사지도 해주고 주머니 속 코카 캔디도 먹이고 빈 좌석에 누울 수 있게 자리도 만들어주었다. 추운 우유니에 붙잡혀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3~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그들에게 일본 쌍둥이들은 간호사 출신이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제 스마트폰 속 사진들만 들여다보면서 낄낄낄 수다를 떨 뿐.


우유니 소금 사막의 밤 (사진: 박승숙)


이미 낙조는 보았고, 밤하늘에 별이 뜨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달이 휘영청 밝아서 바닥 빗물에 쏟아진다는 아름다운 별들의 향연은 오늘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그러면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팀원들은 일정이 다 끝나는 시간까지 밤하늘의 별 사진을 찍겠다면서 사진기를 들고나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기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중에 대책도 없이 낯선 타지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서글프게 혼자 아프고 있을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다른 투어 가이드와 떠들고 있는 운전수에게 나는 참다못해 사납게 영어로 쏘아붙였다. "지금 여기 아파서 신음하는 팀원들이 보이지 않나요? 어떻게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서 그렇게 시끄럽게 영상을 틀며 낄낄대고 있나요? 의학적인 도움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여 뭔가 대책을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워 있던 독일 아가씨가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속삭였다. 순간 조용해진 가이드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남편이 다른 일행들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왔다. 그가 여자애들에게 말해보겠다고 했지만 기대는 하지 말라고 귀띔 했다. 잠시 후 칠레 유학생이 비틀비틀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재잘대는 세 사람에게 말을 걸고 돌아왔다. 쌍둥이들은 자기네가 우유니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라서 끝까지 현재를 즐기고 싶다고 주장했다. 나까지 나가 한번 더 압력을 가했지만 소용없었다. 소금 사막의 밤은 추웠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차 안에는 답답함만 맴돌았다.  


그제야 나는 왜 사람들이 투어를 여러 번 하게 된다고 말하는 건지 이해했다. 어떤 사람들이 한 팀이 되느냐, 어떤 가이드가 붙느냐, 그날 날씨와 상황은 어떤가로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고마운 전갈


다음 날에는 데이투어를 신청해보려고 다시 여행사를 찾았다. 길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칠레 유학생이 반갑게 인사했다. 친구가 고열에 헛소리까지 하며 의식을 놓고 있어서 하루 더 우유니에 묵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냥 푹 쉬면 날 거라는 소리만 반복해서 우리는 갖고 있던 감기약이라도 먹여보라며 갖다 주기로 했다.


투어가 끝나자마자 독일 친구들의 호텔로 가서 문을 두드리니 대답이 없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았다.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스페인어만 하는 할아버지와 어찌어찌 소통을 해서 들은 것은, 결국 앓던 친구가 응급상황이 되어 큰 도시 병원으로 긴급히 실려갔다는 소식. 너무 놀란 나는 미리 받아두었던 그들의 이메일 주소로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썼고 그 김에 보내주기로 했던 사진들을 전송해주었다.  


이틀 후 칠레 유학생에게서 답장이 왔다. 큰 병원에 가느라고 라파스까지 긴급 수송되었는데 그곳 의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아서 바로 조치를 취했고, 지금은 친구가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끔찍했던 라파스였지만, 전문적으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의사들이 있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 고생을 하고도 올 만 했던 우유니


모든 투어를 마치고 우유니를 떠나기 위해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우리는 이번 여행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여길 오느라고 라파스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돈도 잃었는데, 그래도 우유니는 올 만 했는가? 우리는 입을 모아 그렇다고 답했다. 4월 초, 마침 우기가 끝난 터라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빗물이 적당히 남아 있는 상태여서 운 좋게 소금 사막 안쪽까지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마른 사막과 젖은 사막을 둘 다 볼 수 있었다.


마른 소금 사막 (사진: 박승숙)
젖은 소금사막 (사진: 박승숙)


미국의 데쓰 벨리 같이 시간이 멈춘 듯한 소금 사막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불러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상이다. 사실 여행사에서 그리 번잡을 떨며 사진 촬영을 잘해주는 가이드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사진보다 더 오래 남는 건, 마음속에 각인된 그 텅 빈 공간의 인상, 하늘과 땅이 한 색으로 물들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나를 세속으로부터 멀리 떼어가 준 그곳의 비현실적인 감동이다. 몸도 아프고, 돈도 잃고, 투어리즘에 지쳤어도, 우유니 소금 사막은 그 값을 했다.


다시뉴스 발행인 박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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