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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Jul 04. 2022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시들어가는 풍어제

 고향에 갈 때마다 마을이 자꾸만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으로 가슴이 내려앉는다. 집집마다 도시 사람 못지않게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고, 초가집 대신 현대식 양옥들이 우뚝우뚝 솟아나고 있는 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가슴속에 들어 있는 어린 시절의 고향 모습이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환히 트인 가슴 앞자락에 푸른 바다를 안고 150여 가구가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는 고향 마을은 인정과 웃음이 넘치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틈을 내어 농사를 짓기도 하는 반농반어의 생활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해마다 음력 9월 9일에 열리는 풍어제는 마을의 가장 큰 잔치였고, 이삼십 리 밖 사람들도 몰려올 정도로 마을 전체가 며칠씩 흥청거리곤 했다.

 풍어제란 말 그대로 일 년 동안 아무런 탈없이 고기도 잘 잡히고 마을에 불상사가 없게 해 달라고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는 마을의 연중행사였다. 그러기에 그 풍어제를 올리기까지엔 많은 절차가 있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뭉쳐야 한다.

 음력 8월 20일쯤에 제사를 맡아 지낼 판관을 뽑고,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이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되면 그때부터 풍어제의 막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제관을 뽑는 조건도 까다롭다. 제관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동네 할아버지께(마을 제당에 모셔둔 신)제사를 올려야 하고, 굿을 할 때도 제일 먼저 용왕님께 절을 올려야 할 신분이므로 부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척 중에 누구든지 삼칠일 전인 갓난아이가 있어도 안 되며, 며느리가 임신 중이어도 안 되고, 상주 신분이어도 자격을 상실한다. 그렇게 해서 뽑힌 제관들 중에서 우두머리 격인 판관을 뽑고, 그 판관을 중심으로 해서 풍어제의 온갖 절차가 밟아지게 된다. 그때부터 판관과 제관들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더욱더 정갈히 해야 한다. 9월 9일 새벽까지는 절대로 육식을 먹어서는 안 되고,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가려서 해야 한다. 제관들은 판관을 도와 음식을 비롯하여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준비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은 제관들 집 출입을 삼가야 한다.

 중구일 4~5일 전에는 제관들의 집 대문 앞에 황토를 깔고 대문 위에는 왼손으로 꼰 새끼에다 한지와 생솔 가지를 끼워서 잡귀신의 출입을 통제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생선이나 농산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판관 집으로 보내어 동네 할아버지께 감사 표시를 한다(그건 바로 제사상에 올려질 음식이 된다) 멀리 외국에 가 있어서 직접 올 수 없는 사람들은 친지들을 통해서 돈을 보내기도 하여 자신들이 마을의 일부분임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음식과 돈에다 마을 회비를 보태어 제사 지낼 준비를 끝마치고, 초엿샛날엔 그동안 준비한 음식들을 챙겨서 제관들은 제당으로 올라가 기거하면서 몸과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한다. 중구일 새벽이 오면 제당 옆에 있는 연못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마을의 평온과 풍성한 수확을 빌며 드디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을의 모래판 위엔 새벽 미명 한 자락을 달고 굿청이 마련된다. 용왕님께 올릴 산해진미의 상이 차려지고 밤을 지새워 만든 형형색색의 고운 꽃들과 오색 깃발이 부푼 가슴을 여민 하늘 위를 신비하게 수놓으며 풍어제의 서막이 열린다. 

 미신 타파를 외쳐 대던 철부지 시절엔 무당들을 신처럼 떠받드는 마을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풍어제 그 자체를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행사이고 낭비만 조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판관을 세 번씩이나 맡았던 아버지 덕에 무당들과 한방에서 잠을 자면서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접하고, 고운 색지로 밤을 새워 꽃도 만들면서 편견의 눈을 버릴 수가 있었다. 

 굿을 하고 시종일관 쓸데없는 사설로 마을 사람들을 웃기게만 만들면 끝이 난다고 생각했던 굿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가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품어왔던 민족성이었고,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의 맥이었던 것이다. 

 열 명이 넘는 무당들은 모두가 한가족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딸, 사위, 손자 등 삼대가 하나로 어우러져 한마당 놀이패를 벌일 때면 끈끈한 혈연의 정이 마을 사람들의 심장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애간장을 녹이게 하는 배뱅잇굿, 눈물과 웃음을 안겨 주는 심청이 굿, 마을 액운을 쫓는 손님굿 등 모든 것 하나하나에는 눈물과 한숨이 들어 있었으며 웃음과 해학이 스며 있었다. 그 속에는 5천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온 민중의 진실한 생활이며 질기고 끈끈한 삶의 젖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굿판은 이틀 동안 밤낮없이 펼쳐진다. 밤에는 낮보다 더 강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성황을 이룬 구경꾼들은 주먹밥을 싸 들고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올빼미 눈을 하고 쳐다본다. 

 그렇게 해서 흥청대던 굿판이 끝나고 나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액을 풀어 주고, 무당들은 떠난다. 하지만 불꽃은 그때부터 타오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굿청에 쌓아 놓은 음식들을 판관 집으로 가져와서 나눠 먹으며 정담과 덕담을 나누는데, 그것은 풍어제의 진정한 의미가 절정을 이루는 풍경이다. 동네 유지들의 사설 한 마디, 노인네들의 춤사위, 그리고 평소에는 말이 없으시던 어른들의 노래 한 가락은 생활고에 절은 얼굴 위에 웃음 한 보따리씩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쌓였던 이웃 간의 섭섭했던 감정들도 말끔히 사라지고 마을 전체가 바로 한가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풍어제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몹시도 우울해지는 것이다. 마을이 점점 문명화되어가다 보니 일부 지식인의 눈엔 그것이 허례허식이고 미신을 숭배하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들고일어났기 때문에 그 횟수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지금은 몇 년에 한 번씩 겨우 생색만 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무당 패들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들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떠나게 했고 지금은 겨우 한두 개의 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름답게 가꾸어져 가야 할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풍어제는 어촌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생명수다. 일 년 동안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고,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로 나가 삶과 투쟁해야만 하는 마을 사람들이 가슴을 활짝 열고 잠시나마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일 년에 한 번씩 치르는 풍어제의 한마당 놀이인 것이다. 그런데 그 풍어제가 시들해졌으니 마을은 자꾸 외로워지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왔던 아름다운 인정과 풍습도 점점 사라지고, 생활고에 절은 가슴의 한을 풀 길이 없어 거칠고 삭막하게만 변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의욕을 잃은 어부의 손엔 고기가 잘 잡힐 리 없고 메말라 가는 가슴속에서 여유가 있을 수 없으니 몇 년 사이에 마을엔 유난히도 많은 불상사가 겹쳤다. 그리하여 자질구레한 일에 송사까지 해대는 일이 속출하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고향은 결코 그렇지가 않은 마을이었다. 산수 좋고 인심 좋고 기름이 흐르는 축복받은 땅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것이 한낱 추억 속의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해마다 음력 9월이면 열병처럼 다가오는 옛날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 흥청대던 굿판만 생각나면 신열 들린 사람처럼 가슴이 떨려 온다. 신대를 쥔(판관은 신대를 쥐고 마을의 운수를 점친다)아버지에게 주문을 가하던 무녀, 그 무녀의 주술에 의해 신대로 모래판을 수놓던 아버지의 오묘한 힘의 발산.

 날마다 겪어야 하는 치열한 도시인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머리는 언제나 목적지를 찾지 못해서 바둥거리고, 가슴은 사랑을 채워도 채워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마저 없을 정도로 메말라 버렸다. 그런 찌든 생활 속에서도 첫사랑의 감미로움처럼 애잔하게 떠오르는 것은 흥청대던 굿마당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별신굿 열두 거리가 치렁치렁 열리고 북창이 찢길 듯 울리는 굿마당에 들어서면 나도 신들린 무녀처럼 어깨를 들썩거려 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런 나의 가슴속 한을 풀어 줄 신명 나고 멋들어진 굿판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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