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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n 15. 2024

맥주와 수영과 책의 불편한 동거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68

수영장에 찾아온 변화

라인업에 변화가 있다. 1번과 2번은 여전하다. 3번에 뉴페이스다. 혹시 송도해수욕장이라고 아나? 부산 원도심에 있는 해수욕장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다. 이 동네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서 2년 정도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청년이 우리 반에 합류했다. 원래 열 시 반이었는데, 제 때 등록을 못했는 모양이다. 여하간 이 청년이 3번이다. 대한해협을 건널 당시의 조오련 선생님 같은 몸매를 가진, 그렇게 통통한, 그냥 누가 봐도 수영에 최적화된 몸매를 가진 총각이다.      


그 뒤로 3번이던 날렵한 아줌마가 4번을 맡고, 역시 새로 합류한 아가씨가 5번을 맡고 있다. 이 아가씨 또한 누가 봐도 수영에 최적화된 몸매를 갖고 있다. 적당히 통통하면서 팔은 길고 어깨는 넓은. 이 아가씨 뒤로는 나를 비롯한 아저씨들이 몇 명 서고, 그 뒤로 아줌마들이 선다. 요즘 이상하게 출석률이 좋아서 올 초만 해도 예닐곱 명 정도였는데 요즘에 열 명이 넘을 때도 많다. 덕분에 1, 2, 3번을 제외하고, 나머지 회원들은 당일 컨디션에 따라 순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핀 수영이 있는 수요일이다. 원래 십 분 정도 늦게 들어오는 1번 때문에 그 십 분 동안에 2번이 1번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2번 아저씨가 핀 수영에 약하다는 것. 이상하게 오리발만 끼면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결국 4월인가 5월부터 나를 앞세우고 내 뒤에 서기 시작했다. 1번을 받치는 2번의 역할을 내가 맡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1번이 들어올 때까지는 2번이 1번 역할을 해줬는데, 최근엔 그마저도 힘들고 귀찮은지 나한테 떠넘기기 시작했다. 부담스럽진 않았다. 핀 수영엔 자신이 있다. 일단 키에 비해 발이 커서 같은 브랜드의 숏핀이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큰 편인 데다가, 수영 사이트에서 파는 실내 수영장용 숏핀 중에서 가장 무거운 숏핀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 번 툭 차도 더 많이 나간다. 그 핀을 감당할 만큼 하체 힘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6월 첫 주 수요일, 내가 핀 수영의 1번을 맡았다. “그럼 1번이 올 때까지 제가 한 번 당겨 보겠습니다.”하고 말이다. 이 날, 1번이 오지 않아서 마지막까지 1번을 섰다. 둘째 주 수요일, 또 1번이 올 때까지 1번을 맡기로 했다. 1번이 오지 않아 이날도 끝까지 1번을 맡았다. 이게 반복되면 수요일엔 영락없이 1번의 책임을 질 것 같은데... 어쩌나?     


책+맥의 호사

서재가 곧 사무실이다 보니 종종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일을 할 때가 있다. 카피의 초안 정도야 뭐, 맥주가 방해가 되겠나? 칼럼의 초안? 그것도 뭐 딱히... 브런치 글? 독자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오히려 맥주 한 잔 마시면 더 잘 써진다. 그러니까 행간에서 에일의 향기가 느껴진다 싶으면, 그렇다. 한잔하고 쓴 것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도 한 잔 할 때가 있다. 인생 뭐 있나?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좋아하는 작가나 학자의 책을 읽을 여유만 있어도, 뭐, 살만한 인생 아닌가?     


요즘 사알짝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일단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맥주를 마신 뒤에 책을 읽는 것도 힘들다. 물론 대여섯 잔을 마시고 읽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작가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예를 들어 딸과 아내가 읽었던 <달라구트 꿈 백화점>이나 <아몬드>, <불편한 편의점> 같은 가벼운 소설은 마시면서도, 마시고 나서도 읽을 수 있다. 최근에 처남 덕분에 읽게 된 <모든 삶은 흐른다.>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와 같은 철학 책을 빙자한 에세이도 읽을 수 있다. 조금 무리가 되겠지만 재미없기로 소문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전반부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들뢰즈나 니체, 칸트 같은 철학자의 책은,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 같은 책도 읽을 수 없다. 데리다를 다뤄서가 아니다. 맥주 때문이다. 점점 맥주와 독서의 양립불가능성을 절감하고 있다.      


생각의 변화의 조짐은 훨씬 전부터 있었다. 이왕 철학 책을 읽는다면 좀 집중해서 읽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저녁, 정말 할 게 없어서 이런저런 책을 집어 들고 베란다에 앉아 읽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TV는 재미없고 딸은 공부하고 아내는 안방에서 넷플릭스로 이상한 중국 드라마를 볼 때... 그렇게 거실이 조용할 때, 혼자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맨 정신으로 맞이하는 밤도 나쁘지 않구나... 물론 다른 경우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었다. 예를 들어 섹스를 할 때... 아, 맥주를 좀 덜 마셨으면 더 잘 됐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1번이라면...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 건 최근, 두 번의 수요일, 1번 주자의 책임을 맡게 되고 나서다. ‘이야, 이거, 1번이 매번 수요일마다 안 온다면 꼼짝없이 1번을 맡게 되는 건데, 이러면 이거 얘기가 달라지지.’하는 생각, ‘이왕 맡는 거 1번만큼 빠른 속도로, 짧은 리듬으로 반을 이끌어줘야 다들 운동 효과가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니 1번이 십 분 늦게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내가 계속 1번을 따라가며 속도를 밀고 당겨주는 2번이 되어줘야 한다. 저 역할이든, 이 역할이든 수영장에서의 역할이 좀 달라진 것이다. 체력과 실력이 느는 동안에도 희미하게 ‘술을 좀 줄이면 더 수영을 잘할 텐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할이 달라지니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렇다고 어디 당장 끊을 수 있겠나? 그래도, 아마 낮에 한가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카피를 쓰고 칼럼을 고치고 브런치 글을 쓰는 날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어느 날 밤에 날 탐하는 손길이 올 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언제 올지 모를 "그" 날을 “대비”하여 맥주를 마시는 낮들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최근,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라는 책을 읽고 있다. 말 그대로 들뢰즈가 공부했던 철학자들에 대해 들뢰즈 본인이 쓴 논문 및 여러 글들을 알뜰살뜰하게 잘 찾아서 욱여넣은 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미셸 푸코에 관한 글까지 있으니 제목 그대로 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짐했다. ‘야, 이 책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제대로 읽지 못하겠다. 들뢰즈를 읽을 땐 최대한 맨 정신에 읽어야겠다.’하는 다짐을.


물론 들뢰즈를 비롯한 철학 책을 술김에 읽은 적은 없다. 그럴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으니까. 안 그래도 안 좋은 머리, 나이가 들수록 그 총명함이 더 떨어질 테니... 이래저래 책과 맥주의 양다리 걸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수요일의 1번까지... 세 집 살림살이는 불가능하지. 암만, 아무렴.      


사족이라면 사족인데... 오늘은 공식적으로 칼럼을 쓴 지 딱 4년째 되는 날이다. 오늘 밤에 송고를 하면 총 144편의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처음엔 한 백 개 정도 쓰면 글솜씨가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썼는데 딱히... 아,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 더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하게 됐다. 이유? 딴 거 없다. 이 칼럼을 몇 명이나 읽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약간 생각을 쏟아내는데 망설임이 줄었다. 글솜씨? 그건 아직 모른다니까. 딱히.... 이백 개쯤 쓰면 좀 나아지려나? 오늘 밤엔 칼럼니스트 데뷔 4주년 기념을 핑계로 한 잔 할까?


아, 그리고 진짜 마지막 사족... 매거진 제목을 살짝 바꿨다. 어제 수영장에 갔다 오면서 든 생각인데, 어쩐지 건진 거 보다 빠진 게 더 직접적이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빠지고 철학도 빠지고... 다 같이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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