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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l 03. 2024

젊은 날의 선택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54

실내 촬영

감독이 부산 강서구에서 호리존 스튜디오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난 진짜냐고 물었다. 그만큼 부산 강서구는 문화 인프라가 없다. 촬영 날짜가 잡히고 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로 해서 길 찾기를 해 봤더니 정말 주변에 낮은 주택가와 창고, 공장, 농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공장과 창고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서 살짝 당황했다. 물론 금방 찾았지만...    

 

스튜디오의 낯선 얼굴로는 호리존 내부의 조명을 조정해 줄 직원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둘 뿐이었다. 서울 잠실에서부터 조명감독이 내려와서 조명 세팅을 하고 있었고, 감독과 조감독은 조명감독이 서울에서 빌려 온 고가의 카메라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열 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 됐다.      


촬영이 시작되면 카피라이터/작가는 크게 할 일이 없다. 감독이 의견을 물으면 말해주고, 뭔가를 찾으면 함께 찾아주는 것 정도다. 배우들이 지쳐 보이면 응원해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대체로 잠시 짬이 나는 조명감독이나 다른 관계자(광고주나 담당 공무원)와 대화를 한다. 감독이 내게 원하는 역할 중 하나다. 광고주 담당.     


낯설고 기이한 대화

이 날은 스튜디오 직원과 조명 감독과 주로 대화를 나눴는데, 기분이 묘했다. 우선 직원이 특이했다. 이십 대 초반의 여성 청년이었는데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학교도 성신여대를 나왔다. 내가 왜 내려왔냐고 물었다.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단다. 부산에 연고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냥 부산에 살고 싶어서 내려왔다고 했다. 사람이 많고 그래서 그만큼 경쟁이 심한 서울을 떠나 사람이 적고 평소에 살아보고 싶었던 부산에 내려와서 전공과 관련 된 직업을 찾아 일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의 부산 살이 요약이다. 심지어 서면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해운대나 광안리가 아닌 서면에 말이다.      


조명감독의 말은 더 기이했다. 그렇다. 기이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나와 조명감독, 감독은 한두 살 터울로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는 50대들로, 조명감독이 이 현장에서  “여기 완전히 경로당이야.”하고 말할 정도이고, 나 또한 “아니, 하자 있고 환자인 아저씨들이 모여서 지금 뭐 하자는 거야.”하는 농담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친한 사이다. 여하간 이 조명감독이 몸이 안 좋아서 삼 개월 정도 쉬다가 슬슬 몸도 풀 겸 해서 단가도, 일도 가벼운 일에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무슨 작가협회의 홍보 영상 제작의 건이었는데, 단가는 수백만 원... 참고로 이 정도 단가는 직원이 한 백 명에서 이백 명 정도 되는 자동차 부품 업체의 홍보 영상 단가라고 보면 된다.      


조명감독은 나름 자신만의 기획사도 운영하고 있고 일을 따면 우리를 불러 올려 제작하면 되니 기획서를 공들여 제출했던 모양이다. 서류 전형에 통과했다는 연락과 함께, 모월 모일에 경쟁 PT를 할 테니 어디로 오라고 했단다. 발표 당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더니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80팀이 왔기 때문이다. “아니 그럼, 몇 팀이 서류를 넣은 거야?”하고 내가 물었더니, “몰라. 한 세 배 안 되겠어요?”하고 답을 하며 어이없어했다. “아니 그럼, PT는? 하루 만에 가능한가?”하고 다시 물었더니, “아니, 그게 되더라니까. 오 분 발표, 오 분 질의 응답하니까 되더라고.”, 이 난리 부르스 끝에 여섯 팀이 선정됐고, 조명감독은 떨어졌다고 한다.      


조명감독은 서울에 얼마나 일이 없었으면 이 정도 단가의 일에 이렇게 많은 팀이 왔겠냐고 한탄했다. 업계에서 이십 년 넘게 일한 베테랑 조명감독도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그야말로 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결국 직원도 내보내고 장비도 팔고 사무실도 줄였다고.... 이 상황과 그 아가씨의 말을 종합해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파이는 작아졌는데 숟가락은 늘어난 것이다.      


의외로 이 업계의 진입 장벽을 낮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간단한 CG나 편집은 몇 개월이면 배울 수 있다. 카메라도 DSLR을 사용하고, 설정된 대로, 그러니까 소위 판매 시 초기 설정 상태로만 찍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조명에 대한 지식도, 기획이나 광고 이론이 없어도 컴퓨터 한 대와 DSLR, 그리고 적당히 낯 두꺼운 얼굴만 있으면 이 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시장 단가는 떨어진다. 일이 많아도 총금액은 적으니 수입도 적다. 영상 업계에서는 당연히 일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젊고 작은 팀에게 양보했거나 넘겼을 일도 직접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젊고 작은 팀들은 더 낮은 단가에도 하겠다고 나선다. 그보다 더 젊고 작은 팀들은 더, 더 낮은 단가도 좋다고 한다. 그보다 더 젊고 작은 팀들은....


청년의 선택, 그 다른 가능성

청년과 나와 조명감독이 이야기를 하다가, 청년의 사연을 안 조명감독은 대번에 “야, 미쳤구나. 올라가. 부산에 뭐 하러 있냐?”하고 말했었다. 그런데 조명감독의 그 황당한 난리 부르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그 아가씨의 선택이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 선택도 나쁘지 않네. 여기는 일은 적은 데, 실력 있는 사람도 적으니까, 경쟁도 심하지 않고, 우리처럼 일정 수준 이상에만 오르면 그럭저럭 이렇게 아저씨가 돼도 먹고살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계속 말을 이었다. "감독님 생각해 봐. 차로 가면, 울산에서 경주까지 삼십 분, 경주에서 포항까지 또 삼심 분이야. 울산에서 해운대까지 40분, 우리 집까지도 한 시간밖에 안 걸려. 자, 울산에서 거제도? 넉넉잡고 두 시간, 그 사이 김해라면 한 시간 반, 우리가 얼마 전에 목포를 갔다 왔는데 세 시간 반 밖에 안 걸리더라고. 그러니까 실력만 있고 입소문만 좀 타면 반경 몇 시간 내에 있는 시도를 넘나들며 일할 수 있다는 거지.”, “이 말도 맞다. 그렇지.”하고 조명감독이 맞장구를 쳤다. 아가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러려면 두어 가지 조건이 필요해. 일단, 실력이 입증될 때까지 버티는 거. 우리도 한 십 년 걸렸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 정도 걸렸지.”하고 조명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진짜 찐으로 실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거. 그쪽이 하는 무대 예술이든, 우리 같은 영상이나 광고든 혼자서 할 수 있나? 결국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같이 하는 노가다잖아. 그러면 같이 일하는 사람의 실력이 중요하지. 우리가 벌써 얼굴 보고 지낸 지 이십 년 가까이 됐어. 우리가 왜 맨 날 같이 하겠어? 딴 놈은 믿을 수가 없거든. 내가 봤을 때, 이게 제일 어려울지도 몰라. 부산에서 아가씨 또래 중에서, 실력을 갖춘 파트너를 찾는 거. 특히 그쪽처럼 부산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은 더 힘들지.”, 내 말을 들은 청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 역시 부산이 낯선 사람으로 이십 년을 넘게 살았고 그 사이 부산의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부산에서 직장 생활도 했다. 그야말로 21세기, 부산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외부인으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해줬다. 이제 궁금한 건, 그 청년이 어떤 선택을 할지다. 일도 많지만 경쟁도 치열한 고향, 서울로 돌아가 괜찮은 직장에서 버티는 삶을 살지, 아니면 일은 적지만 경쟁도 느슨한 낯선 도시 부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     


그 청년에게 점심을 먹은 후 멍을 때리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있잖아요.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만 주로 생각하는데, 돈이 안 나가는 것도 생각해 봐야 돼요. 사건 사고 없고, 큰 병 안 걸리고, 가족 중에 아픈 사람 없는 거, 그거 생각보다 큰 이점이죠. 우리 봐요. 뭐, 다들 나이 먹어서 약간씩 고장 나기 시작했지만 그럭저럭 아직 돌아가잖아요?”...


다른 이야기도 해줬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좋죠. 그런데 우린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직업을 택한 사람이죠. 아니, 직업이 그렇게 느껴지면 천직이려나.”, 이후 카피라이터로 살면서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느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아직 젊으니까-나이는 묻지 않았다. - 이것저것 해 보고 십 년, 이십 년을 해도 지겹지 않겠다 싶은 직업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다시 말하건 데, 궁금한 건 그 청년의 선택이다. 인생이란, 선택과 선택이 맞물려 앞으로 나아가는 태엽장치 기차 같은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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