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공지를 본 뒤,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쓰기 싫어도, 도통 안 써져도 어느 날까지 써야만 한다면, 또 원고료를 받으려면 일정 분량을 어느 날까지 써내야만 한다면 어떻게든 써진다는 걸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독자와 날을 잡아 약속을 하면 어떻게든 글은 써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글이 술술 써질 리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 놓았던 집필기획서 비슷한 - 그렇다. 비슷한 것이지 집필기획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런 글을 써봐야지.’하는 방향이 담긴, 일종의 한 장 짜리 카피 브리프 같은 걸 몇 개 써 놨었다. - 문서를 열었다. 그중 선택된 것이 이번에 연재한 내용이었다. 내용을 가늠해 보니, 일 년, 그러니까 쉰 개 정도는 연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뒤 30개를 연재하고 나니 더 연재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2권으로 연재를 이어갔다. 일 년은 52 주니, 개수도 그리하려 했는데, 브런치 공모전에 1권과 함께 2권도 넣어보고 싶어서 쉰 개에서 마무리 됐다.
남은 이야기들
쉰 개의 연재를 했지만 더 하고 싶은 얘기도, 더 해야 할 시와 노래도 있다. 우선, 내가 가진 시집 중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시인의 시집은 정호승으로, 총 여섯 권을 갖고 있다. 이어 안도현이 네 권, 김용택이 세 권이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시인인지도. 그러나 이 들 시인의 시는 이 연재에서 다루지 않았다. 이들 말고도 다루지 못한 시인이 몇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들 시인들의 시에 대해 쓰려한다.
<Linkin Park>와 <Toad The Wet Sprocket>은 꼭 다뤄보고 싶었다. 전자는 카피라이터 초년병 시절의 스트레스를 삭여줬고 후자의 경우엔 내 이십 대, 특히 대학 시절의 열정과 애잔함, 쓸쓸함, 또 어쩌면 씁쓸함까지 담고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 중 가장 사랑하는 노래도 골라 가사까지 옮겨 놨지만 글을 이어 쓰진 않았다. 이 또한 기회가 되면 써보려 한다. 이 외에도 대학 시절 내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여행 스케치>의 음악도,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낼 때마다 스스로를 타일러 마음을 내려놓게 했던 김민기의 <봉우리>와 양희은의 <한계령>, 그리고 앨범을 산 그날부터 지금까지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는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에 대해서도 긴 글을 써보고 싶다.
나와 만났던 순간
연재를 하면서 젊은 시절 사랑했던 시를 다시 읽었다. 저자가 분명하지 않았던 시의 주인도 찾아냈다. 또, 그 시와 함께 돌아가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와도 다시 만났다. 그렇게 그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보니 새로운 내가 보였다. 기억과는 다른 내가 보였다. 그때의 선택들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수긍했고 조금 더 많이 용서했다. 너도 나름 애썼다. 부산 사투리를 빌려 말하면 “니도 욕봤다.”하고 말해줬다. 시와 함께 내가 나 스스로에게 보냈던 위로의 손길이, 내 청춘에게 보낸 안부의 인사가 독자들에게도 가 닿았길 바란다.
몇 주 정도 연재를 쉬었다가 다른 주제로 연재를 재개할 생각이다. 몇 개의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다 내가 구성한 것이기에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이지만 여하간 그러고 있다. 봄부터 한다면 이것, 11월부터 한다면 저것, 이러면서 혼자 그러고 있다. 이번 연재를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