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의 순간
선거가 끝난 후 일이 들어오고 있다. 덕분에 지난주, 모처럼 촬영 현장에 있었다. 장소는 장애인체육관이었다. 담당자와의 미팅을 위해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사용자가 많아서 제법 놀랐었다. 선천적 장애인부터 후천적 장애인까지, 십 대부터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헬스클럽과 수영장과 농구와 탁구, 배드민턴까지 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다. 문이 닫힐 때까지 사람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했다.
개관 20주년 기념 영상이어서 오랫동안 이곳을 드나든 이의 인터뷰를 담았다. 화상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 뇌병변의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은 사람 등이 있었다. 휠체어 농구팀의 인터뷰도 있었다. 그들의 연습을 잠시 지켜봤는데, 그 치열함과 숨김없이 드러나는 승부욕에 흠칫 놀랐다. 당연한 것인데, 무의식적으로 다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나 보다.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을 인식하여 스스로 몸을 사리고 동료인 상대의 신체 상태를 염두에 둔 채 조심스럽게 플레이할 것이라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젊은 시절 농구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 또한 게임에 들어가면 그저 선수일 뿐이다. 이기기 위해 몰입할 뿐이다. 내 교만함에 스스로 혀를 찼다.
마지막 촬영은 한 청년이었다. 촬영 대본에 있는 정보는 이랬다. ‘지체 중증’이라고 이름 밑에 현 신체의 상태가 요약되어 있었고, 그 옆의 세부정보에는 나이와 이용 기간이 있었다. 그 하단에 ‘근육병’이라는 병명이 추가로 쓰여 있었다. 이곳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이 병의 진행을 늦추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 미팅을 하는 날, ‘늦추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담당자에게 물었었다. 내가 아는 상식이 맞는 건지, 그렇다면 그 청년은 ‘죽음’과의 대면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건데, 그런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도 되는 건지, 혹여나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 건 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 청년과 부모님이 흔쾌히, 자발적으로 참여를 희망하셨고, 내 상식처럼 그 청년이 ‘늦추고 있는’ 것은 병의 진행이며 그 진행의 늦춤은 곧 신체의 멈춤, 그 자체의 지연이라는 걸 확인했다.
수영장은 작았다. 15미터 정도 길이의 레인이 세 개 있었고, 그 위쪽에 보조 풀이 있었다. 여성 어르신 두 분이 각 레인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고, 걷기 운동 전용인 세 번째 레인에선 남성 어르신 두 분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보조 풀에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청년의 수중 운동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풀 밖에서 안까지, 자동으로 내려주는 리프트 작동 장면 촬영을 위해 청년과 전문가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었지만 촬영에 몰입하면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감독조차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청년이 얼핏 자동차 생산 라인에 있는 흰색 로봇을 닮은 리프트에 앉았다. 리프트는 부드럽게 청년을 물속에 내려줬다. 열 살 이전부터 이 수영장을 이용했다는 청년은 평온해 보였다. 적극적으로, 두 차례나 시연을 보여준 전문가와 청년은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갔다. 어떻게 해드리면 되냐는 두 사람의 질문에 감독은 그냥 오늘 하려고 했던 운동을, 프로그램 순서대로 하시면 저희가 알아서 촬영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운동이 시작됐다. 촬영도 무사히 끝났다. 걷고 싶어서 현대백화점 앞까지, 십 분 정도 걸어가, 롯데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타고 태화강역으로, 동해선을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니,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동해선 열차 안, 촬영을 복기했다. 불쑥, 청년의 인터뷰 멘트 중 중복되는 내용이 있었던 두 번째 문장을 고쳐준 것이 생각났다. “저와 동갑인 장애인체육관은 저에 평생 친구입니다.”로 고쳐줬더랬다. 그 문장을 생각하다가 ‘평생 친구’라는 말에 생각을 묶었다. 평생이라. 그리고 친구라.
쉰이 넘은 카피라이터가 완치될 수 없는 자신의 병과 싸우며 스무 살이 된, 그래서 대학까지 다니고 있는 청년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로 ‘평생 친구’를 던졌다. 그 청년에게 ‘평생’이라는 단어가 어떤 무게를 갖고 있을지 미처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다. 평생은 살아온 시간이고 여생은 생의 남은 시간이다. 우리는 무심히 이 두 단어를 섞어 말하기에 평생이라 말할 때마다 긴 인생을, 노년까지의 모든 삶을 떠올린다. 이십 년을 산 청년의 평생은 이십 년이나, 난 그의 평생을 건강한 이의 상투적인 평생으로 바꿔버렸다. 같은 이십 년이어도, 같은 평생이어도 그 무게가 다를진대, 난 미처 그의 평생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구’라는 말로 생각을 옮겼다. 그에게 있어 체육관은 친구다. 맞는 말이나 더 절대적이다. 마치 평생을 하나의 검만을 쓴 무사가 그 검을 친구와 가족으로 여기는 것처럼 그 청년에게 있어 체육관도 같은 의미의 무게를 갖고 있다. 체육관은 그에게 투쟁의 도구다.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미래를 갉아먹는 이 역설적인 투쟁의 상황에서 그가 고른 무기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움직여야 그 투쟁의 시간은 길어진다. 승부는 알고 있다. 청년도, 그리고 그 촬영을 지켜본 청년의 어머니도, 전문가도 그 승부의 결과는 알고 있다. 그 결과의 당도를 힘껏 뒤로 밀어낼 뿐이다.
생각이 그 어머니의 모습으로 옮겨 갔다. 어머니는 내 또래였다. 어리면 내 아내, 많으면 내 나이쯤. 그녀는 아담한 키에 평범하면서도 편한 옷차림이었다. 길에서 다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야외 정원에서의 인터뷰 내내, 수영장에서 우리와 아들을 번갈아보는 동안, 그녀에게선 차분한 의지가 느껴졌다. 견고한 다짐이 우러났다. 더운 실외에서 래시가드를 입은 채, 휠체어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아들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지도 않았다. 문장의 번잡함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가질 때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촬영을 서둘러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터뷰 내내 아들의 모습을 스마트 폰으로 열심히 촬영할 뿐이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들과 함께 싸운 사람이다. 희망의 언덕과 절망의 깊은 계곡 사이를 수시로 오간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오직 한 사람, 아들의 ‘평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봤고,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본 사람이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청년에게 그 말을 건네주었고, 아들은 ‘평생 친구’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었다. 반평생, 어쩌면 그 이상의 세월을 받쳐 아들의 ‘평생’을 위해 투쟁했던 어머니 앞에 놓일 투쟁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그 투쟁의 시간이 더 길어지길 기도했다. 승부의 추가 아들과 어머니에게 기울어지길 기도했다. 이 날, 관계자들에게 처음 제시했던 수정 멘트에 이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장애인 체육관의 서른 살 생일에도 함께하겠습니다.”, 그 세월이 짧다고 여겨 ‘평생’으로 바꿨다.
전환점이 온 것 같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감독은 체력의 한계에 대한 절감과 함께, 음악을 전공하는 딸의 뒷바라지를 하기에는 벌이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판단 아래 겸업할만한 뭔가를 찾고 있고 나에게도 다른 형태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고용의 관계였지만 다시 프리랜서의 관계로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의 고뇌를 난 다 이해할 수 없기에 그의 권유를 받아들일 생각이다. 어쩌면 가을쯤, 우린 다른 관계를 맺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그나 나나 다른 사람과 일을 할지도 모르고,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른다.
다른 글에 썼듯이, 딸이 가발을 벗고 학교를 가는, 가을 학기쯤이면 뭔가 다른 일, 다른 형국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때쯤이면 딸에겐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는 아빠의 역할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아빠가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딸에게도 넌지시 말을 해뒀다. 가을쯤, 다른 도시, 다른 회사, 또는 다른 업종에서 제안이 들어오면 아빠가 움직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움직임은, 어쩌면 카피라이터 경력의 종말을 의미할지 모르나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경력의 이어감에 대한 애착은 하찮다.
앞서 말했듯, 평생은 죽을 때까지의 삶이다. 그러니 지금 평생을 감히 입에 올리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 생각은 현실이 되어야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미행처럼 따라붙는 사람에게 평생이란 단어는 한없이 추상적인 단어다. 존재하는 순간을 기준으로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의 시간을 더 길게 보는 사람이 뱉는 평생이라는 단어의 무게와는 같을 수가 없다. 살아낸 시간만큼 살 수 있을지, 매일밤 잠들 때마다 의심하는 사람에게 평생이라는 단어는 임박한 내일, 살아내야만 하는 내일의 총합이다. 평생은 그 전력을 다해 살아낸, 투쟁 끝에 얻어낸 내일과 내일의 합이다.
그 하루의 무게를, 그날 청년을 보며 다시 생각했다. AI와 챗GPT를 들먹이면서 카피라이터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곤 하는, 감독의 선을 넘는 충고를 들으면서 카피라이터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 봤다. 그 헤아림 중에 청년을 만났다. 자신이 살고 싶었던 데로 살지 못했던, 자신의 육체가 자신에게 부여한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어 스무 살을 맞이한 청년이 말한 ‘평생’이라는 단어의 울림 속에 내 경력의 남은 날들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치스럽다. 복에 겨웠다. 내 삶은 카피라이터 없이도 이어진다.
명함 따위는 다시 파면 그만이다. 아니 그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세상의 모든 아빠와 남편들이 그 명함 없이도 아빠와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처럼 세상엔 명함으로 다 설명할 수 없고 입증할 수 없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그 청년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머니가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그 청년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그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그 어머니의 존재의 이유가 획득되는 것처럼 나와, 그리고 그대 또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군가에겐 삶의 이유가 된다. 나와 당신 덕분에 누군가는 피 끓는 투사가 되어 삶을 밀고 나간다. 그러니 우리에겐 삶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나라는 존재의 소멸이 타자의 소멸을 불러온다면, 우리는 힘껏 살아내야만 한다. 평생토록.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밀고 나가진 않는다. 그저 건강을 회복한 딸을 볼 때마다 우러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더 이상 따갑지 않을 만큼 길어진 딸의 머리칼을 만질 때마다 솟아나는 안도감을 누리고 있다. 딸에게 아침, 저녁으로 최대한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궁리를 하고 있고 발품을 팔고 있다. 현재는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이자 존재의 필요다.
하여, 다시 말하지만, 딸이 가발을 벗고 학교에 등교하는 날 내 인생의 다음 챕터에 대한 생각은 좀 더 깊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그 생각 끝에 필요하다고 판단된 행동들이 실행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는 딸에게 대부분 할애될 것이다. 딸의 건강보다, 아내의 행복보다 중요한 건 없다. 나머지 것들은 하찮다. 카피라이터의 경력 따위야. 내 야망과 꿈과 욕망 따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