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 1 - 서점과의 첫사랑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09

by 최영훈

서점과의 첫사랑

도서관보다 서점 이야기를 먼저 하는 건, 은채가 집 밖에 있는 책을 처음 만난 곳이 서점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처음엔 책을 사주겠다거나 읽어주겠다고 서점에 간 건 아닙니다. 우선,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기 딱 좋은 곳에 서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직장이 있는 해운대 장산역 부근엔 교보문고가 있었습니다. 그 건물 1층엔 기업형 슈퍼마켓도 있어서 이래저래 아이가 마실 음료수도 사줄 수 있었기에 엄마와 조우하기로 한 날이면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 건물의 지하층과 1층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죠.


지금도 여러 곳에 있는 매장들이 다 그렇지만 당시 교보문고 장산점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스티커 북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은채도 그런 곳에 눈이 먼저 갔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 가면 그곳에 꽂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혼자 들춰보곤 했죠. 한글을 익히기 전에도 말이죠. 그것 자체가, 뭐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딸에게 즐거움과 함께 어떤 효능감을 준 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사랑이 먼저, 아는 건 그다음

효능감을 얘기하기 전 먼저 말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기 전, 책에 대해 잘 알기 전, 책을 좋아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책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일 년에 백 권 넘게 읽는 열독가는 아닙니다. 대충 한 주에 한 권 꼴로 읽습니다. 일 년에 오십 권 정도 읽는 것이 제가 정한 적정 독서량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저에게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게 됐고, 읽어 왔기 때문이죠. 그게 그거 같다고요? 아닙니다. 사람을 예로 들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알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싶은 걸까요? 답이 나오죠?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책은 사람보다 더 합니다. 사람은 사랑한 뒤에 알게 되면서 그 사랑이 식을 수도 있지만 책은 사랑한 뒤에 알면 알수록 더 사랑에 빠집니다. 이건 또 왜일까요? 책의 깊이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종류 또한 무궁무진하며 심지어 계속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마치 우연히 놀러 간 놀이공원이 계속 그 규모가 확장되고 어트랙션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이 생성되어서, 그 놀이공원을 다 돌아보고 나가겠다고 작심을 하고 들어온 손님이, 그 안에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 이렇게 생각하니 의외로 무섭네요.


그러나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물론 능력(?)에 따라선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한 사람을 대체로 다 읽어내고 나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안온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이어가죠. 만약에 사람이 앞서 말한 그런 놀이공원처럼 매 순간, 죽을 때까지 새로워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긴장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흠, 얘기가 살짝 엇나갔네요.


서점을 사랑한 이유

자,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렇습니다. 책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끝도 없이 길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복잡한 그 어느 교차로보다 더 많은 방향으로 그 길이 뻗어나갑니다. 독서가는 그 길의 어딘가, 복잡한 교차로나 로터리 한가운데 뚝 떨어진 존재죠. 과거로도 미래로도, 이 길로도 저 길로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갑자기 눈앞에 드러납니다. 죽을 때까지 늘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아이 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죠. 이런 사람은 당연히 책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책, 그 고유의 부피와 무게, 표지와 속지의 질감을 사랑하는 것이, 책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독서가의 탄생에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기일 적에 품에 안고 동화를 읽어주는 것도 어쩌면 부모의 품과 책을 동일시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릅니다. 외국 영화, 특히 미국 영화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다 큰 아이들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뒤 회상에 빠지는 장면이 많은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 일지 모릅니다. 심지어 한 권의 책이나 동화는 주인공의 고향을 상징하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상징하기도 하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은채는 서점에서 엄마와의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장난감도 보고 그림책도 보면서 기다렸습니다. 지루할 때쯤이면 아빠와 함께 슈퍼로 올라가서, 평소엔 엄마가 못 마시게 하는 단 음료수를 사 먹었습니다. 결국, 서점은 엄마를 기다리는 장소였고 맛있는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장소였죠. 이만하면 서점에 대해, 책에 대해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만날 장소도, 약속 장소도 많고, 스마트 폰 덕분에 누군가를 기다릴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 안 그랬습니다. 동네마다 도시마다 연인과 친구들이 조우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죠. 어린 시절 의정부에 살 때도, 십 대 시절 평택에 살 때도, 대학을 다니던 대전에서도 만나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과점과 영화관 앞, 그리고 서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서점만큼 사람을 기다리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서점은 책을 읽고 사기 위한 장소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장소였습니다.

늦고 부족하고 미숙했던 시절

은채는 열 살이 될 무렵부터, 진지하게 노트북을 제 것 인양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십몇 년 된 노트북을 딸한테 줬더니 IT업계 차장님인 외삼촌이 심폐 소생시켰죠. 그렇다고 무슨 보고서를 쓰는 건 아니고 그저 한글 타자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번 독수리는 평생 독수리로 살 수 있으니 타자부터 연습하라고 했더니 그 뒤로 나름 열심히더군요.


제가 처음 컴퓨터를 산 건 1995년이었습니다. 기숙사 선배의 486 컴퓨터를 중고로 샀죠. 그렇게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후, 대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고, 집에 최신형 컴퓨터를 들여놨죠. 이후 세이클럽으로 채팅의 재미를 알면서 타자가 늘었으며, 게임은 안 했지만 웹툰은 종종 봤습니다. 마린 블루스, 강풀, 강도하 등의 작품을 봤죠. 생각해 보면, 제가 이십 대 후반에 접한 것들을 은채는 열 살에 접한 셈이 됩니다.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은채는 나보다 훨씬 빨리 접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부모들이 애를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대학 나온 부모가 1/3도 안 됐을 테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고학력 축에 들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그 시절엔 백과사전과 전집이 유행했습니다. 계몽사 등에서 수십 권짜리 어린이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집, 세계문학전집 등을 내놨죠.


그걸 영업 사원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팔았고, 알음알음, 이웃에서 이웃으로 비슷한 전집들이 꽂히게 됐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렇게 백과사전과 위인전집 따위가 있었죠. 책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어서 읽고 또 읽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만화로 된 과학 책, 역사책이라 해도 같은 걸 수십 번씩 읽다 보면 지겨워지기 마련이었죠. 이후, 새 책을 살 돈이 없으니 중학교 때부턴 친구들한테 책을 빌려 읽었는데, 헤르만 헤세도, 몇몇 시집도 그렇게 동냥하듯 읽었습니다.


서점을 배회하며 제대로 책을 사기 시작한 건 스물이 넘어서였고, 나름의 지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관성 있게 책을 사기 시작한 건 스물넷,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들어간 학과의 1기였던지라 무슨 책을 읽으라고 가르쳐준 선배가 없어서 서울의 유명 대학에서 내려온 강사들이 무심히 던진 몇 마디를 귀담아듣고 메모한 걸 들고 서점을 헤맸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책이 쌓여 갔습니다.


카피라이터가 된 이후에는 마케팅 이론과 광고 관련 전문 서적, 트렌드를 따라갈 책과 경제 관련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사수가 없는 회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이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고독한 독서가의 탄생은 그렇게 멘토 없는 방황에서 시작됐고 그 방황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딸이 서점과 만들어가는 세상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딸과 같이 서점에 가지만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하진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듣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눈여겨본 책을 찾고 있으면 어디에 있다고 알려줬을 뿐입니다. 딸은 그렇게 서가를 서성이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면 그걸 꺼내 들고 읽고 다시 꽂아놓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맘에 드는 책 서너 권을 챙겨 아빠에게 가져오곤 했죠. 사달라고 말이죠. 되도록 다 사주려 하지만 너무 성의 없이 만들어졌거나, 내용이 부실한 책은 분명한 이유를 말해주고 다른 걸 골라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납득하고 서가로 다시 가서 서성거리길 반복했죠. 그렇게 제 나름의 책을 보는 안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또한 저보다 십몇 년은 빠른 것이니 부럽기도 합니다.


딸은 이제 서점에서 방황하는 걸 즐깁니다. 책에 대한 사랑이 당연히 서점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죠. 사려고 했던 책과 지금 필요한 책,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만 하는 책, 계획에 있던 책과 우연히 마주친 책, 그 모든 책들과의 조우를 기뻐하며, 후회를 남겼던 책도 있었으나 기쁨을 줬던 책만의 기억을 안고 다시 기대를 품은 채 서점에 갑니다. 많은 책이 있지만 내가 만날 책은 몇 권 없는 곳, 절판되어 이 지구상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책의 유령과 앞으로 나올 책의 희망을 품고 있는 새책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곳. 그곳에서 방황하는 걸 즐깁니다. 사랑하는 책이 머무는 그 공간에서 잠시 세상의 일을 잊는 걸 좋아합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춰지는 서점의 마법을 사랑합니다.


앞서 말했듯, 책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겨우 세 살 무렵, 제 서재에 들어와 아빠 책을 다 달라고 했던 그 마음을 유지시켜 주고 증폭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먼저 책을 읽기 시작한 아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책을 읽지 않는 부모들이 내 자녀만큼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 또한 아이가 먼저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만들어 주는 것, 평생 책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꼭 해야 될 일 중 하나 아닐까요?


책 좋아하세요? 전 우울할 때도 책을 읽습니다. 딸에게 종종 말하듯이 TV가 더럽게 재미없는 주말에도 책을 읽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도 책을 읽곤 합니다. 공부를 하는 딸 앞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왜 책을 읽느냐고요? 그야, 책을 사랑하니까요. 이런, 어쩌다보니 사랑 이야기만 하다 끝나버렸네요. 효능감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말이죠. 다음 편에서 효능감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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