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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26. 2022

네덜란드의 '적당히' 문화

나는 이를 5.5의 문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직장생활까지 하며 여러 가지 놀라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유난히 잘 느껴지는 문화는 바로 이 '적당히'의 문화이다. 


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모범생 출신이다. 그렇게 교육되었고 자라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예습과 복습만이 좋은 성적으로의 지름길이라고 믿어왔으며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더 긴 시간 공부하면 줄곧 성적은 보통 그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곤 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우등생'으로 졸업하여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즉, 나는 12년 모든 필수교육과정을 이렇게 훈련(?) 받아왔다. 우등생으로서의 삶은 참 힘들기도 했지만 참 무난하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은 나를 우쭈쭈 둥가 둥가 해주다 못해 어디론가로 입학할 때는 심지어 내가 다니던 학원, 그리고 살던 동네에서 배출된 영재로 불리기까지 했다.


이런 모든 경험상 과정들이 어린 내게 심어준 인상은 바로 학생의 직업 혹은 사명(job)은 곧 공부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공부라는 것은 그냥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 잘 해내는, 수우미양가 중에서 적어도 수나 우의 성적을 내는 성과를 보이는 것. 그러니까 시험성적을 잘 내는 것이 곧 학생으로서의 본분과 일을 잘 해내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런 마음가짐으로 네덜란드에 유학을 왔다. 내 전공 특성상 무수한 조별과제가 첫 학기 때부터 휘몰아쳤는데, 나는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로 '문화적 다양성'을 부여한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곳저곳 다양한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내가 입학했을 당시에는 정말로 나 혼자서 한국인, 그걸 넘어서 심지어는 나 혼자서 동양인이었다. 백여 명의 학생들이 다양한 국가 출신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대부분이 유럽 출신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60%는 독일인, 30%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관심이 내게 쏠리기도 했고 나름 인기 아닌 인기와 관심을 즐기기도 했다.


철없이 즐기던 인기도 잠시, 막상 시험기간이 다가오니 나는 촉박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한국 스타일의 교육을 받아온 나는 학생으로서 이곳에서도 '우수한'성적을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나 조별과제를 함께 하게 된 팀원들 중 그 누구도 나만큼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하나의 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속해있던 4개의 모든 조의 팀원들이 '그러려니'의 태도였다. 정말 '그러려니'말고는 더 정확히 설명할 길이 없는 태도.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한 학기가 6개월, 그리고 그 6개월이 3개월씩으로 나뉘어 있다면 그 3개월마다의 끝자락에 시험 혹은 제출해야 할 과제들이 주어진다. 나의 경우에는 그 3개월이 시작하자 마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시작한 지 한 달 이내에는 벌써부터 과제들을 시작한다. 왜냐고? 교수들이 그러라고 지도한다. 매주마다 배우는 새로운 개념과 이론들을 과제에 적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막바지에는 얼추 그 프로젝트의 틀이 잡히고 제출 마감일 일주일 전에는 그렇게 쌓인 '얼추'들이 모여 멋들어진, 거의 백점만점까지 노려볼만한 과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정말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


반면에 이곳 학생들, 특히나 네덜란드 학생들은 아주 여유롭다. 얼마나 여유로운가 하면,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가 제출 마감기한 바로 전날에 시작하기도 한다. 이 과제들이나 프로젝트들은 분명 장기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설계되었음을 마르고 닳도록 설명해봐도 그냥 시큰둥하다. 결국엔 급한 사람이 불을 끈다고, 수많은 조별과제를 내가 결국엔 급한 성질에 못 이겨 거의 다 해내고 다른 팀원들은 막판에 좀 살을 붙이는 정도로 끝냈다. 


그래서 처음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한국어로도 알아듣기 힘든 내용을 영어로 들으려니 힘든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피할 수 없이 쏟아지는 조별과제들을 거의 모두 이런 식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달이 나서 벌써부터 전전긍긍하느라 스트레스였고, 팀원들은 팀원들대로 내가 쏟아내는 압력에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어찌어찌 첫 번째 학년을 끝냈다. 조별과제들도 그렇지만 그를 제외하고도 많은 시험들을 치뤄내기도 했다. 이곳에선 10점 만점에 5.5점을 넘으면 통과, 5.4점 이하부터는 낙제이다. 여러 필기시험들 중에서 내가 유난히도 헤맸던 한 과목의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데 손이 다 떨렸다. 나머지 과목들은 모두 7.5점에서 8.5점 사이로 꽤나 높은 성적이었기 때문에 더 긴장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5.7점이라는 숫자가 화면에 뜨자마자 슬픔과 아쉬움과 허망함 등등의 감정이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낙심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는 네덜란드인 팀원들이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괜찮냐며 묻는다. 


"재시험 봐야 할 것 같아"

"괜찮아, 우리도 낙제했어"

"아.. 아니, 낙제는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어."

"뭐라고? 근데 왜... 왜 재시험을 봐?"

"그래야 더 높은 성적을 받으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느 한 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덜란드 학생들은 (적어도 경험상 내 주변의 친구들) '통과'를 목표로 시험을 치르고 과제를 한다고 했다. 어차피 통과면 통과지 소수점까지 따지는 성적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비난을 넘어 자기혐오의 감정까지 들던 나 자신에게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 좋자고 이렇게까지 성적에, 그것도 숫자에 목을 매달기 시작한 걸까?




네덜란드의 '적당히' 문화는 졸업한 후 직장에서도 줄곧 보인다. 점심을 먹다가 전에 근무하던 다른 한국인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언급이 되었다. 굉장히 근면 성실하고 딱 듣기만 해도 '아, 한국인이구나' 싶은 전형적인 한국 직장인 스타일이었던 분 같다. 이게 처음엔 칭찬인가, 싶다가도 자세히 들어보면 절대로 칭찬이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분은 근무 시간 내에서만 근면 성실한 게 아니라 근무시간 외까지도 일을 끌고 가는 스타일이셨다고 한다. 남들은 5시 정각에 칼퇴하는데 본인만 남아서 업무를 끝내고 간다던가, 남들은 다 두고 가는 업무용 노트북을 집에까지 가지고 가서 휴가철에도 본인만 열심히 이메일에 회신을 하는 바람에 같은 팀 동료들만 난처해지는 상황을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분을 언급하는 이들은 물론 대놓고 비난하진 않았지만, 톤에서 오묘하게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동료는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적당히' 문화 속에서 혼자만 '지나치게' 한다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일까 싶기 때문일 거다. 특히나 네덜란드사람들은 '워라밸'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줬던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학부시절의 경험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절대로 작은 업무 하나에 목매달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물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업무 시간 이외에도 시간을 내서 자기 계발을 하겠다만 팀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나 혼자 오버 아워까지 달아가며 일하는 건 민폐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가다 불쑥불쑥 옛날 버릇이 나온다. 5시를 향해가는데 업무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하던 일을 다 손 놓고 퇴근할 수 있는지, 아직도 나는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집에 가는 퇴근길 운전하는 동안 마음은 편안하다. 나 혼자만 이랬다면 분명 불편했을 텐데, 모두 내일 하면 돼!라는 마음으로 다 함께 퇴근하니 한결 안심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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