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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Sep 15. 2022

네덜란드에서 운전하기

내가 여기서 운전을 해도 되긴 한 건가

한국 나이로 20살이 되던 해에 내가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은 바로 운전면허 따기였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엔 미루고 미루다 시간이 없어서 못 딸 거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기기도 했지만 어쨌든 필요는 할 것 같았다.


바야흐로 2011년,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대한민국에서의 운전면허 시험이 대폭 간소화되고 쉬워진 적이 있었다. MB정권 시절 면허 따기는 정말 쉬운 죽먹기였다. 그 전 60시간이었던 의무 교육 시간을 13시간으로 줄이고 T자 테스트같이 운전면허시험의 탈락률을 높이는 어려운 시험들은 아예 없애기도 했다. 700m였던 장내 기능 시험 주행은 고작 50m로 줄었었다. 맘만 먹으면 사나흘 안에 정식적으로 면허를 딸 수 있었다는 거다. 안전교육 이수, 필기시험, 장내 기능 시험, 도로 주행까지 속전속결로 운전면허학원에 며칠만 내리 출석하면 주어지는 게 운전면허였다. 이렇게 운전면허 합격률이 무려 92%였던 황금기(?)의 막차에 탑승한 게 2014년도의 나였다. 2017년도부터는 다시 강화가 돼서 요새는 다시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지금 되돌아봐도 쉬워도 너무 쉬웠던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시험을 얼떨결에 마친 내게 반짝반짝 새것 그 자체의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이 주어졌다. 엄마는 곧장 나를 운전자보험에 등록시키고 나는 그렇게 2002년형 모닝을 열심히 타고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한국에서의 나름 운전경력을 쌓았다. 멀쩡히 주차되어있는 남의 새 차를 두 번씩이나 들이받는 바람에 운전자 보험료가 치솟기도 했고 쁘띠 심장마비를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다가 2014년도 말에 한국을 떠나게 되며 한국에서의 운전은 잠시 미뤄두게 되었고, 가끔가다 한국에서 단기체류를 할 때에만 운전을 하는 정도였다. 워낙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곳이라 운전이 굳이 필요 없었고 가족이든 친구든 운전을 할 줄 아는 다른 사람들이 운전해주는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게 편하기도 했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서 운전할 필요가 굳이 없다면 네덜란드는 자전거로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는 자전거의 왕국이기 때문에 딱히 운전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내가 사는 도시는 끝과 끝을 자전거로 30분 안에 완주할 수 있을 정도이고, 오히려 차를 끌고 나가는 게 시간이나 비용이 더 든다. 그러던 내가 한국에서 운전면허 딴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가던 작년, 인턴십을 같은 도시가 아닌 곳으로 구하게 되며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운전을 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국제면허증을 미리 한국에서 받아오는 것. 유효기간이 교부일로부터 1년뿐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단기로 머물 계획이라면 괜찮지만 장기로 머물 계획이라면 나중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에서 아예 새로 면허를 따는 것.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면허를 새로 따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비싸고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영어로 수업을 하는 강사를 찾다 보면 이 비용이 심지어 더 비싸지기도 해서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지막 방법은 한국 면허증을 네덜란드 면허증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면허를 발급받은 후 최소 6개월 이상은 거주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즉, 여름에 잠깐 한국에 방문해서 금방 따오는 면허는 바꿀 수 없단 얘기다. 나의 경우엔 다행히도 한국에서 면허를 취득하고도 약 일 년 동안 운전을 한 경우라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와 우호적인 국제관계를 갖고 있는 덕에 이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을 거란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일을 잘하는 빨리빨리 의 민족답게 헤이그의 대사관에도 예약 후 단 한 번의 방문으로 관련 서류를 단 5분 만에 받으며 한큐에 해결이 됐다.. 싶었는데 살고 있는 도시의 시청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애를 먹었다.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전형적으로 겪게 되는 일인데 바로 시청에서 업무를 처리하고자 하면 그 누구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특히 우리처럼 비유럽 국가 출신의 경우에는 더 허둥지둥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나는 신체검사는 스킵한 채 온라인에서 웹으로 건강 설문조사(?) 비슷한 것을 하고 비용을 지불한 뒤 네덜란드 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면허증을 교환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선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운전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운전에 대한 감이 사라진 상태였다는 거다. 자신감도 없고 게다가 유럽의 몇몇 도로표지판은 생전 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교통도로법이 한국과 거의 흡사하긴 하지만 조금은 다르기도 한 데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면허를 취득했을 땐 너무너무 쉬웠었기 때문에 엄격한 네덜란드 교통법에 후들후들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우회전시 신호가 없어 보행자가 없으면 우회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에선 무조건 파란불 신호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특히나 시내에서 운전을 할 때 자전거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전거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로교통법이 자전거나 보행자를 우선으로 발달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흔한 네덜란드의 도로 + 자전거 + 보행자 + 테라스의 아득한 조화

또 다른 규칙으로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저렇게 상어이빨 모양 같은 그림이 바닥에 그러 져 있다면 무조건 정지한 뒤 다른 차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교차로에서 내 오른쪽 방향에서 다른 차량이 온다면 그 차량이 우선적으로 지나간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Right is always right이라는 문장을 되새기고 운전을 한다.


유럽 도로교통법에서 쓰이는 교통표지판의 모음집.. 여기서 몇 개나 알고 계시나요?



그 이외에도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따온 2종 보통을 1종까지 운전 가능한 보통면허로 바꿔주었다는 거다. 얼떨결에 한 번도 운전해보지 않은 수동기어 자격까지 주어진 거다. 게다가 이미 파트너가 갖고 있는 자가용도 수동기어였다. 중고차 시장을 둘러봐도 대부분의 자동차가 수동기어다. 유럽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수동기어를 운전하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새 차인 경우에도 그렇다. 여차저차 자동변속기어 중고차를 인터넷으로 찾아내 구매하게 되었다. 수동기어 차량보다 훨씬 더 웃돈을 줘야 했고, 에어컨도 없는 연식이 20년이 넘는 작은 자가용.


연식도 연식인지라 달달거리는 자동차를 끌고 이제 매일 출근을 한다. 처음엔 좀 떨리던 고속도로 운전도 이젠 아무렇지 않게 달린다. 가끔가다 번쩍번쩍한 SUV가 뒤에서 쌍라이트를 켜고 달려들 때면 "네가 어쩔 거니, 칠 거야?"라는 마인드 컨트롤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파트너는 원래 갖고 있던 자가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도 나대로 나의 자가용이 생겨 우리는 2인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2대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하나를 없애거나 아니면 둘 다 치워버리고 전기차로 바꿀까, 고민 중이다. 기름값이 너무 어마 무시해서 아무리 회사에서 지원금을 주더라도 주유소에 갈 때마다 벌벌 떨린다. 


자동차가 생긴다는 게 출퇴근 이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마음의 안정감과 자유를 준다는 것도 실감한다. 가끔 아시안 식료품점으로 갈 때마다 상당한 양의 장을 보는 나이기에 그 전엔 파트너에게 태워 다 달라고 부탁하고, 그의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면 이젠 나 혼자서도 갈 수 있다.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니 도시의 지리나 주변의 소도시들도 이젠 꽤나 잘 안다. 뭔가 더 당당한 도시 여성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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