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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Apr 25. 2023

네덜란드에서 계절성 우울증 극복하기

일 년에 2/3은 비가 내리는 이곳에서

나는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꽤나 잘 맞는 편이다. 이들의 직설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나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이것저것 재단하지 않고 말 그대로 심플 그 자체여서 머리 아플 일이 없다. 

그런데 딱 하나, 정말 딱 하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곳의 날씨이다.


네덜란드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가져 보통 영국 하면 떠오르는 우중충한 회색빛의 날씨를 일 년 내내 가지고 있다. 겨울은 최저기온이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온난하고 여름도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면 정말 더운 날씨일 정도로 미친 듯이 덥진 않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온도차가 별로 없는 사계절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온도를 제쳐두고 가장 큰 네덜란드 날씨의 특성은 바로 지긋지긋한 비이다. 네덜란드는 일 년 내내 건기가 없고 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고 보면 된다. 강우량과 낮은 일조량 때문에 기온이 높아도 체감기온은 늘 춥게만 느껴진다. 


비가 아무리 자주 내려도 온도가 상승하고 해가 길어지며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봄, 여름 네덜란드는 정말 살만하다. 햇살이 닿는 곳이면 너도나도 노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행복함이 도시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나를 상당히 기분 좋게 해 준다. 그리고 엄청나게 덥지도 않기에 좀 눅눅한 날씨라고 해도 저녁이 되면 테라스나 공원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문제는 늦가을에서부터 시작되는 길고도 긴 겨울이다.


한국, 호주, 그리고 이탈리아에 살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날씨나 계절을 타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나라 모두 꽤나 일조량이 좋은 편이다. 한국은 물론 장마기간이 있지만 길어봐야 한 달 남짓이고 겨울도 춥지만 햇빛이 쨍쨍한 날들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2018년도 8월에 네덜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점은 여름치곤 별로 덥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내가 맞게 된 네덜란드에서의 첫겨울, 나는 네덜란드의 겨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 그대로 뼈저리게 배웠다. 인터넷으로 대충 높은 기온만 확인하고 얕잡아버리고 온 바람에 한국에서나 입던 두툼한 한겨울용 패딩은 가져오지 않는 실수에 더해져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급하게 산 이불은 홑겹이었기에 혹독한 겨울을 보냈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 4번의 겨울을 더 겪으며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계절성 우울증을 내가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봄여름가을 세 계절동안은 장난기도 웃음도 많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는 평탄하고 충만한 생활을 하는 나인데, 겨울이 되자마자 (전형적으로 서머타임이 끝나는 기간에 특히)부터는 아예 거의 정 반대의 사람이 된다. 


사람들 만나는 일을 줄이고 칩거생활을 시작하며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며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곤욕이다. 주말에 몰아 자도 자도 피곤하고 모든 게 재미가 없다. 출근을 해도 오전근무 내내 멍하고 바깥을 내다봐도 우중충하고 깜깜한 세상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바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더 우울해지곤 했다. 나는 이게 그냥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담당 의사 (GP) 말로는 계절성 우울증 ( Seasonal Affective Disorder 혹은 Seasonal depression)이라고 했다.



계절성 우울증이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매년 계절성 우울증 진료를 받은 환자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주요 우울장애의 11% 정도가 계절성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진단은 우울감의 유무 양상이 특정 계절과 관계되었을 때의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햇빛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의 동물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대표적인 설명인데, 일조량이 감소하며 생체시계의 균형이 깨지고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들어 우울감을 느낀다. 반면에 수면과 관련된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분비가 늘어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출처: 강남 세브란스 병원 홈페이지).


주로 햇빛이 적어지는 가을부터 겨울 내내 지속되다가 봄부터 증상이 좋아지는 것을 매년 반복한다. 대체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두 배 정도나 더 자주 나타나고 내가 사는 네덜란드나 북유럽같이 위도가 높고 일 량이 적은 지역에 거주할수록 유병률이 증가한다고 하니 안 그래도 우울감을 늘 베이스로 살고 있는 내가 이 진단을 받은 것은 사실 놀랍지 않다.




진단을 받을 당시 의사의 조언은 몇 가지가 있었다.

1. 비타민 D를 복용하기 시작할 것

2. 해가 화창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적어도 10분~15분은 야외 활동을 할 것

3.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을 삼갈 것

4. 될 수 있으면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우울감에 대해 이야기 나눌 것


광합성을 받으면 인간이 몸에서 비타민 D를 생성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굳이 적은 일조량 때문에 비타민 D를 보조제로 챙겨 먹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반신반의하며 복용하기 시작하자마자 그 변화는 놀라웠다. 우울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전처럼 땅을 뚫고 들어갈 만큼 기분이 다운되지는 않았다. 플라시보인가? 어쨌든, 효과가 있으니 다행이다. 의사의 진단 이후로 나는 서머타임이 끝나는 시점부터 아침마다 비타민 D를 꼭 챙겨 먹는다. 


아무리 우중충한 날씨여도 비가 오지 않거나 바람이 너무 세게 불지 않는 날에는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30분씩 산책을 한다. 구름 뒤에 가려져 있어도 해는 해라는 말을 되새기며.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 인간이라는 동물은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40시간씩 앉아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귀중한 30분의 시간 동안 동료들과 수다도 떨고 바람도 쐬는 시간으로 꼭 사용하고 있다. 어쩌다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날씨가 심히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스킵해야 하는 날은 그 부재가 찌뿌둥함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실천사항은 자기 전 스마트폰이나 스크린타임을 줄이는 것이다. 전기장판으로 데워져 따뜻한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이 몇 되지 않는 낙이었기에 여전히 이를 줄이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졸리지 않음에도 누워서 눈을 꼭 감고 있자니 잡념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점점 더 말똥말똥해 지기가 일쑤이다. 이를 돕기 위해 허브가 감미된 안정작용이 있는 차를 마시거나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명상을 돕는 음악을 틀어놓기도 한다. 아직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줄이지 못해서 그 효과를 봤다고는 못하겠지만. 내년 겨울엔 좀 더 열심히 실천해보고자 한다.




징그럽게도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던 지독한 겨울이 또 한 번 지나고 이제 봄기운이 만연하다. 네덜란드에서도 겹벚꽃이나 유채꽃, 산수화들은 눈을 돌리는 곳에 활짝 폈고 그걸 보는 내 기분까지 알록달록하고 몽글몽글하게 채워진다. 특히 우리 집 앞에는 4그루의 커다란 벚꽃나무가 펴서 매일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길, 그리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을 더 산뜻하게 해 준다. 이렇게 봄이 올 때면 내가 정말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리긴 했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4월 말에 접어드는 지금 하루하루 한줄기 햇살마저 감사하게 느껴진다. 봄이 가면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겠지. 그때까지 에너지를 잘 비축해서 이번 겨울을 벌써부터 준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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