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ro May 30. 2023

네덜란드에서 수돗물 마시기

'물 마실 권리' - 식수권에 대하여 

내가 수돗물을 마시기 시작한 건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집에서는 아빠가 끓여주시던 보리차, 학교에서는 늘 비치되어 있던 정수기와 식수대의 물을 마시는 것에 익숙해져 호주에 살 때도 그 더운 땡볕에도 굳이 굳이 3리터짜리의 대형 생수를 낑낑대며 사다 나르며 식수로 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이탈리아에서 거주를 시작하며 새로 살게 되었었던 곳은 슈퍼마켓이 조금 먼 곳이었는데, 이 때문에 점점 게을러져서 첫 해 여름 나는 수돗물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자가용도 없는데 자전거를 타더라도 몇 킬로씩이나 되는 생수를 사다 나르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무 오래전이라 뚜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 수돗물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상당히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정부에서 마셔도 되는 수돗물이라고 홍보를 해대도 정수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접근성이 좋았기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수돗물을 유럽에서 마시려고 하니 좀 머뭇거려졌기 때문이다. 이 망설임의 중심에는 ‘석회수’에 대한 소문들이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석회(lime)의 성분은 즉 칼슘과 마그네슘이고, 물에 함유된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에 따라 연수 (soft water), 중수, 경수 (hard water)로 나뉜다. 그리고 유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부분의 나라가 이 함량이 높은 경수를 가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물이 지하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고 유럽의 토양이 함유한 천연 물질인 석회와 미네랄이 자연스럽게 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럽 중에서도 네덜란드는 특히 바다와 근접하여 토양의 석회질 함유량이 특히나 높다. 네덜란드의 수돗물의 경도는 독일의 측량법인 dH (Deutsche Härte, 직역 German hardness로 독일식 경도)로 측정하는데 1 dH는 수돗물 1 리터 당 17.8 밀리그램의 탄산칼슘 (CaCO3) 석회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네덜란드는 평균적으로 2.7 dH에서 3.5 dH의 경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waterhardheid.nl) 


한국에서는 이 독일식 측량법이 아닌 미국식 측량법인 ppm을 사용하는 것 같아서 조사를 해보니 이렇게 지표를 찾게 되었다.

출처: DarloSunfish님의 티스토리 블로그 Forward Life


우리가 흔히 아는 한국의 생수 브랜드인 삼다수의 경도는 28ppm으로 초연수에 해당하고, 서울의 수돗물은 평균 45ppm으로 삼다수보다는 경수이지만 그래도 초연수이다. 네덜란드의 평균 수돗물도 4dH이하이니 초연수라고 볼 수 있겠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 경도는 사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다면 이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자신의 우편주소를 입력해 보면 이 경도를 알 수 있다. 우리 집의 수돗물은 대략 7.70dH로 아슬아슬하게 연수에 걸쳐지는데, 이는 아마도 내가 북부끝자락 바다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처음에 네덜란드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브리타라는 필터가 달린 물병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사실 이 브리타 필터는 석회질을 걸러내 주는 것이 아니라 물에 포함되어 있는 염소를 제거해 흔히 말하는 수영장 냄새 같은 수돗물 냄새를 제거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에 더해져서 비싼 필터일수록 더 많은 물질들을 걸러준다거나 몇 주에 한 번씩 꼭 바꿔줘야 한다거나 하는 번거로움으로 보아 식수권을 보장해 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필터를 바꿔주지 않으면 오히려 박테리아가 번식할 위험이 있어서 추천하지 않으며 쉽게 말해 다 마케팅이라는 게 연구가들의 의견인데 뭐 이는 본인이 경제적 여건이 되기도 하고 찝찝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의 석회수를 마시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을 흔하게 가지고 있다. 나도 그랬다. 마치 도시괴담처럼 석회수를 마시면 체내에 석회가 쌓이고 그게 중력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노령화가 되면 몸의 끝부분인 발목에 쌓여 코끼리 다리처럼 발목이 굵어지는 병에 걸린다는 것인데. 알고 보면 이는 석회수의 성분은 칼슘과 마그네슘이고 이는 몸에 쌓이지 않고 배출이 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럽에서 자주 보이는 흔히 칭하는 이 코끼리 다리 병(?)은 병이라기보다는 노년층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부종 (edema)이다. 유럽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고 한국에서도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혈액순환의 기능이 저하되어 만성정맥부전 (Chronic venous insufficiency)로 인해하지 부종이 생기는 거다. 검색창에 노인 하지부종 검색만 해도 흔한 증상임이 금방 확인이 된다. 노화 이외에도 생활습관 특히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더 악화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쉽게 요약하자면, 석회수를 아무리 마셔도 몸에 해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마 석회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생긴 것은 아무래도 석회질이 몸에서는 배설이 되어서 괜찮다지만 기계나 설비에는 쌓여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를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면 이 석회물질이 쌓여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화장실이나 싱크대에 물이 마른 후 하얗게 보이는 자국이 신경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마 몸에도 해로울 것이라고 예상을 종종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눈에 잘 보이니까. 여러 논문을 읽어봐도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석회수가 몸에 쌓일 만큼 섭취하기는 석회를 씹어먹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고 말하니, 이제 석회수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겠다.




석회수가 몸에 해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유럽 어느 곳에서나 수돗물을 마구 받아마셔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유럽연합이 2020년 12월에 발의한 식수에 대한 법규를 모든 유럽 연합의 국가들이 따라야 하지만, 이가 법제화된 것은 고작 2023년 1월이다 (European Commission, 2023). 그러니 예상할 수 있다시피 2023년 6월을 향해가는 현재 법규화가 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가의 예산이 조금 부족한 몇몇 국가들, 특히 그 국가들의 시골같이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곳은 아무래도 좀 조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유럽국가들의 수질이 시궁창이라는 것은 아니고, 현지인들은 자라면서부터 익숙해져 발달시킨 면역력이 우리에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어느 한 전문가의 의견이기도 하다 (Allan, 2014). 그러니 여행중이라면 수돗물을 마시기 전 구글에 한번쯤은 검색해보는게 좋다.


아무튼간에 네덜란드는 모두가 공평하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 식수권을 중요시 여기는것 같다. 참고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는 UN과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인정한 인간의 기본 권리 중 하나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정부도 각각의 지역마다 수질을 관리하는 공영회사를 10군데를 고용하여 힘들게 관리한다. 나라 크기를 고려하면 꽤나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수돗물을 마신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 수돗물에 대한 접근성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암스테르담 공용 식수대 현황 (출처 | waternet.nl )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길가에 흔히 보이는 것이 바로 공용 식수대이다. 분수대 형식일 때도 있고 식수대 형식일 때도 있다. 지도에서 보이다시피 분수대 형식은 분수대 아이콘이 있고, 원형 하나에 35라고 쓰여있다면 그 구역에 무려 35개의 식수대, 혹은 물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거다. 



궁금해져서 더 찾아보니 네덜란드 전역에는 이렇게 촘촘히, 대도시일수록 더 많이 식수대가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외출 시에도 나는 간편하게 내 물병이나 텀블러에 집에서 이미 수돗물을 식수로 채운다. 밖에 나가서 목이 말라도 굳이 플라스틱병에 담겨 파는 물을 사 마시거나 카페에 들어가서 딱히 마시고 싶지 않은 음료를 사마시지도 않는다. 


Dopper 의 유니크한 물병 디자인 (좌), 그리고 Dopper에서 실시하는 캠페인의 예시 (우)


더불어 네덜란드 대표 텀블러 제작 회사인 Dopper는 이미 구글과 협업하여 구글맵에서도 'water tap'을 검색하면 내 주변의 식수대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에 더불어서 회사 자체에서도 예산을 들여 이 식수대를 점점 더 많이 설치하여 마케팅 효과도 거두고 있는 듯하다. 여담으로 이 회사도 다른 회사들처럼 플라스틱을 들여 물병을 무수히 생산해 낸다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환경보호에 마음을 쓰고 있는 브랜드라 그런지 하나당 20유로가 넘는 비싼 가격임에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다. 말 그대로 dutch water bottl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 정부에서도 환경보호차원과 인권보호 차원에서 열심히 수돗물을 식수로 먹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은 아직 이를 꺼리는 듯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조금 놀랐던 게 호텔에서 묵는 일주일 내내 나는 매일! 2병의 플라스틱병의 생수를 공급받았다. 그래도 나는 호텔에 묵으면서는 수돗물을 받아마셨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호텔에서 일주일을 묵었기에 삼시 세끼는 외식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한국까지 공수해 간 물병에 물을 받아 마셨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생수들이 필요가 없었다. 3일 차 되는 날엔 뜯지도 않은 새 물병이 6병이나 있었다. 4일째 아침 물병 채워주지 말아 주십사 부탁의 메시지를 메모에 남겼는데도 또! 새 물병이 있었다.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부탁하고 나서야 더 이상 나는 물병을 새로 받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 경험은 좀 더 나를 당황시켰다. 내 방뿐만 아니라 이 호텔의 전체의 방을 청소할 때마다 이렇게 물을 채우실 것이라 생각하니 좀 아찔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호텔에서 체크아웃 후 본가에 내려와 외출을 하는데 내 물병을 깜빡했다. 물 사 마시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본가에 버젓이 정수기가 있는데 굳이? 싶기도 해서 근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뻔뻔함을 무릅쓰고 물 한잔만 마셔도 되냐 물으니 식수는 고객들에게만 제공된다는 식의 답변을 받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부랴부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물 한잔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신 채 커피는 손에 쥐고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당연히 아이스커피는 플라스틱 일회용 잔에 담겨 있었다. 말짱 도루묵이었다. 차라리 물을 사 마실걸. 


물론 내 경험이 모든 카페나 식당들에게 적용될 수는 없지만 몇 블록마다 식수대가 있는 네덜란드에 적응되다 보니 어느 곳에서나 당연히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한 내 오산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국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물을 마신담, 싶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공공시설의 부족을 이때도 느꼈다.


대한민국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수돗물의 음용률이 고작 1.4%라고 한다. 검색해 보니 수질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된 배수관 때문이라는데. 이 또한 몸에 해로울 정도가 되려면 눈에 보일 정도로 물의 색이 변해야 하고 서울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노후된 송배수관을 교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환경부, 2023). 


네덜란드에 살면서 수돗물을 마시니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되고, 돈을 들여 플라스틱이나 화학물질로 만들어낸 필터를 사지 않아도 되고, 원래 가지고 있던 물병에 물만 채워서 마시면 되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좋은 점은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병만 털레털레 들고 산책을 가도 식수대에서 물을 채워 마신다. 나는 오늘도 하루종일 3리터 이상의 물을 마셨다. 


한국 출신이라 한국을 예시로 들었지만 얼마 전에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수돗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을 내내 사 마셔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기에 네덜란드에서의 식수권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정말 삶의 기본권리 중의 하나인 식수권이, 그리고 일석이조로 환경까지 생각할수 있는 이 접근성이 모두에게 닿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