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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다 May 27. 2024

등 굽은 국밥

  구수한 냄새가 건널목을 건너온다. 시장기 도는 코가 그걸 먼저 감지한다. 머릿속으로는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 시장 안으로 들어선다. 멸치 다신 물 냄새, 고소한 튀김 냄새, 매운 떡볶이 냄새가 섞여서 군침을 돌게 한다.

  비닐로 씌워진 순대와 솥에서 끓고 있는 뽀얀 국물이 눈에 들어온다. 두 평 남짓한 포장마차형 식탁에는 먼저 온 손님 여럿이 국밥을 먹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할머니는 분주하다. 점심시간이라 작업복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목례하고 의자에 앉는다.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국밥이 푸짐해 보인다. 뚝배기에는 한입에 먹기 좋도록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가득 들어 있다. 무언가 모를 따뜻함과 평안함이 마음을 감싼다. 허겁지겁 먹는 우리를 본 할머니는 따뜻한 국물에 고기를 데워 한 국자 가득 뚝배기에 담아준다. 웃돈도 받지 않고 덤으로 주는 바람에 다시 한 그릇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손님이 볼까 봐 순대를 수북하게 담은 접시를 소리 없이 내놓으신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감포에서 울산으로 통학을 하게 되었다. 시장통에서 고기 장사를 하던 엄마는 피곤한 몸으로 아들을 위해 아침마다 라면을 끓였다. 한숨이라도 더 자야 한다며 뜨거운 음식을 잘못 먹는 나를 위해 끓인 라면을 물에 식혀, 떠먹이듯 턱 아래 놓았다. 걱정하는 당신을 생각해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삼 개월이 지나자 뒷바라지하던 엄마가 몸져누웠다. 울산에 사는 누나는 자취를 시키라고 엄마를 설득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날, 막내아들을 보내기 싫었던 당신은 버스에 올라 객지 생활에 대한 주의사항을 몇 번이고 당부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난 뒤에도 오래 손을 흔들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는 오매불망 객지에 간 아들 전화만 기다렸다. 하지만 철부지였던 나는 보고 싶다고 집으로 오라는 당신 전화를 받으면 친구 만난다, 바쁘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뒤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온 세상이 암흑이었다. 몇 날 며칠 잠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 잘못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고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허허벌판 혼자 서있는 나무처럼 외롭게 느껴졌다.

  군대 가기 전, 조선소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을 했다. 그때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찾았던 곳이 이곳 국밥집이었다. 여러 가게가 즐비했지만 딱 한 군데가 인상 깊었다.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힘든 현장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제대한 후 안정된 직장으로 취업해야 한다 생각하고 H사 정규직 입사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대기업 근무는 여러 가지로 신경 쓰는 일이 많아 자연 시장 출입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갑자기 국밥이 생각나면서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 34년의 세월이 흘러 혹시나 했지만, 국밥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시장 노상에서 가게 전부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풋내 나는 총각에서 손자를 둘이나 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옛날얘기를 하자 그제야 알아보고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젊은 아낙이었던 고운 얼굴엔 잔주름이 가득하다. 꼿꼿하던 허리는 굽었고 토렴하는 주름진 손목에는 보호대가 채워져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도 나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뽀얀 국물의 한 그릇 국밥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쳐야 했을 수많은 과정처럼, 저 굽은 등으로 지나갔을 파란만장을 생각해본다. 

  엄마는 평생을 고기 장사하며 남편 없는 자식들을 키워냈다. 어쩌면 나는 할머니 모습에서 힘들 때마다 내 삶의 버팀목이자 중심이었던 엄마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만나고 싶었는지도.

  어느새 비워진 뚝배기를 두 손으로 가만히 잡는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시장 #국밥 #할머니 #명덕시장 #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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