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만큼 자기 땅이야
내돈내산으로 헤매면서 하나둘씩 피아노 가상악기를 모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악기를 여러개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많은 곡을 써내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주로 피아노를 가지고 자주 노는 편입니다. 그때마다 저 때마다 마음에 들어오는 피아노를 붙들고 마음을 털어내곤 합니다. 연습곡들을 치거나 치고 싶은 곡들을 자유롭게 치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그러다 보면 손끝에서 어떤 모티브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때론 고개를 돌려 창밖을 한 번 바라보다가 운이 좋았다면 그때 모티브가 나오기도 하고요.
다른 분들은 어떤 과정을 어떻게 밟아 나가시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저는 이렇게 헤매며 찾아가고 있어요.
1) Garritan CFX Lite, NI Komplete Series
2) Ivory 2
3) Kescape
4) Garritan CFX Grand 업그레이드
5) + 희망 사항 Ivory 3, Ircam2까지
1) 게리탄 CFX Lite
처음 가상악기를 구매하면서 들인 피아노는 게리탄 CFX Lite 버전과 NI Komplete Series 안에 있는 피아노들이었습니다.
처음에 만난 Garritan CFX Lite 소리는 작고 심심하게 느껴져서, 이 악기의 진가를 알아보기도 전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NI시리즈에 포함된 피아노들도 UNA Corda를 제외하면 제게 필요한 소리는 없었습니다.
2) 아이보리 2 Ivory 2 American Concert D
그러다 두 번째 피아노인 아이보리 2(Synthogy Ivory 2 American Concert D)를 사게 되었어요. 파워풀한 저음의 강력한 에너지에 이끌렸습니다. 진짜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분을 안겨다 주었죠. 특히 중저음의 다크한 에너지가 마음에 들어 제 싱글곡인 피아노 트리오 곡 <늪, Into the Darkness>에 아이보리2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3) 키스케이프
그리고 세 번째, 드디어 그 유명한 키스케이프를 사게 됩니다. 나도 드디어 이것을 샀다면서 설레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일렉트릭 피아노를 치면서 8-90년대 유행했던 팝송을 연주해 보며 그 감성을 즐겨보기도 했었죠.
두 번째 싱글 중 피아노 솔로곡 작업을 하면서 게리탄 CFX lite를 쓰고 믹싱 마스터링을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믹스 과정에서 악기 자체 노이즈가 올라오더군요. 이게 듣는 사람에 따라 노이즈로 다가가는지, 자연스러운 피아노 노이즈로 들리는지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제가 들었을 때 음악적으로 용인되는 노이즈의 수준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을 또 중단합니다.
그리고 아예 악기 소스를 바꿨었는데 그게 바로 키스케이프였습니다. 이 악기로는 솔로 곡(Screenlight with Love)을 작업했습니다. 당시 곡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맑고 또랑한 소리의 프리셋을 찾아서 사용했습니다.
4) 다시 돌아왔다. 게리탄 CFX의 재발견
작년 어느 날 우연히 야마하의 신디사이저 몽타주에서 CFX를 연주해 보게 되었습니다. 소리가 맑고 이쁘면서도 표현이 더 잘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신스 패드 사운드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대중음악 장르에 잘 어울리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저절로 손이 많이 가게 돼서 미디로 많이 가지고 놀게 되더라고요.
이것은 야마하의 몽타주 신디사이저가 CFX 소리를 재현한 것이지만,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게리탄 역시도 CFX 피아노를 재현한 것은 맞거든요. 역시 소리는 둘이 다르지만요.
그래서 다시 찬밥 신세였던 게리탄 CFX lite를 켜봤고, 바로 Grand Ver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간계 마이킹이 더해진 소리와, 샘플레이트의 길이를 버전별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 관찰자적 시점으로 프리셋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예전엔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린다!
피아노 소리가 작게 들려 심심하다고 느꼈던 부분. 이것은 제가 미디로 피아노 가상악기 다루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게리탄의 CFX Grand 악기가 주는 진가를 몰라봤던 것이죠.
그냥 단순하게 오인페 볼륨을 크게 높이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터치 강도에 세심하게 신경 쓰면서 연주하면 되는 것이었죠. 그게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키스케이프가 과하게 믹스된 프리셋 사운드로 한 번에 사로잡는 것에 비교하면 너무나 작은 소리이긴 하니까요. 그 다른 관점을 악기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 삼으면 안 됩니다. 사운드의 꾸밈과 볼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제가 몇 안 되지만 가지고 있는 피아노 중에서는 CFX가 제일 표현력이 좋고, 소리가 ppp에서 fff까지 커져도 그것들을 오롯이 벨로시티 강도 그대로 소리로 잘 표현해 줍니다.
아무리 세게 내려쳐도 다른 피아노들은 (아이보리를 제외하면) 볼륨만 커지지 강도가 세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싱글 곡인 <푸른 고요>를 비롯해서 요즘 작업은 주로 이 피아노로 하고 있습니다.
오인페 볼륨을 크게!
오인페 볼륨을 크게 키운 채로, 벨로시티와 터치 강도에 집중하며 연주, 녹음하면 됩니다. 어떤 다이나믹으로 곡을 그려나갈지 명확한 의도와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볼륨과, 벨로시티는 다른 차원이에요.
소리가 작다고 세게 내려치면 소리를 표현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세게 치면 벨로시티는 높은 값을 찍고
여리게 치면 벨로시티는 적은 값을 찍습니다.
우리는 세게 치고도 미디창에서 볼륨을 적게 조절할 수 있고,
여리게 치고도 미디창에서 볼륨을 크게 할 수 있습니다.
헷갈릴지도 모르지만, 우린 이것을 이해해야 피아노 가상악기를 내 의도에 맞게 잘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믹스를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피아노 색채가 주는 느낌에 집중해서 최대한 표현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적정볼륨으로 끌어올려 믹스로 보내고, 최종 볼륨은 그 이후 믹스와 마스터링에서 해결하면 되는 거고요.
5) 위시리스트, 아이보리 3 German D와 Ircam2
아이보리2를 출시했던 회사에서 13년 만에 다음 3시리즈를 내놨습니다. MAC 전용으로만 출시되었고, Windows 버전은 아직 출시 전입니다. 워크 스루 동영상만 본 상태인데, 소리가 아주 매혹적이네요. 저는 작년에 맥 로직에서 윈도우 큐베이스로 갈아탔기 때문에 지금은 Windows 버전 출시를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어서 출시되었으면 좋겠어요.
https://youtu.be/FfPRj1yfAbY?si=MYmDzIiBNFLhc3wJ
https://youtu.be/CkDJaghFjXI?si=dYpQb6jO350-ZRA_
그리고 또 하나의 위시리스트. 프리페어드 피아노인 IRCAM2입니다.
피아노 현 자체에 여러 가지 물체를 설치하여 다양한 소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피아노입니다. 흥미로운 소리가 많이 있어요. 이 악기로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크로스오버 장르에 적합한 사운드가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네요. 급한 것은 아니기에 50% 할인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https://youtu.be/yZJYh6JjRfI?si=kprqJCMyA9KSQIQ7
이 글이 도움이 되셨을까요? 스스로 들었을 때 감이 좋은 피아노를 하나씩 천천히 모아서 즐기는 여정을 자기만의 속도로 채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이 좋다고 추천하는 악기는 참고만 하세요. 본인의 귀를 믿으시고 등불처럼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 소리엔 스스로 무엇이든 발휘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담겨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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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inachoi/107
https://brunch.co.kr/@minachoi/108
제가 경험한 것은 적고 주관적입니다. 제 지식과 정보는 극히 적지만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부딪히며 알게 된 부분, 공부하며 알게 된 부분을 지금 시점에서 정리한 것이라 표면적이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며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고 시정할 의견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피아노 작업, 파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