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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12. 2024

류이치 사카모토의 지문이 가슴에 새겨지다

류이치 사카모토 OPUS 관람 후기


류이치 사카모토 OPUS를 관람했다. 다행히 예상보다 오랫동안 상영 중이어서, 가까운 사운드특화관(Dolby ATMOS)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전 마지막 온라인 콘서트를 영화화 제작한 것이다. 당시 이 콘서트는 22년 12월에 총 4회에 걸쳐 온라인으로 개최된 공연이었다.  당시 4회 차 중 3회를 다 챙겨보며 깊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감동했던 지점은, 그가 아픈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건반을 누르고 손으로 선율의 잔향을 지휘하는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이 분의 음악에 깊이 빠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좋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까? 심연 속에 깊이 고독히 가라앉아 있는데, 기워야 할 심장을 가진 텅 빈 눈동자의 영혼을 조우하는 기분. 그곳에 울려 퍼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공명하는 그 시간이 참으로 좋다. 그렇게 난 그분의 선율에 신세를 졌다.




Opus 관람을 앞두고


Opus의 선곡표를 미리 챙겼다. 영화 시작 전 시간이 남아 잠시 카페에 들러 에어팟을 끼고 카페의 소음을 조금 차단했다. 무음인 채로 자서전을 조금 더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영화관으로 오는 길, 오랜만에 두어 곡을 듣다가 음악을 멈췄다. 깊은 심연을 조우하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의 힐링이 되기도 하지만 항상 늘 그렇지만은 않다. 한 동안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길어 올리는 마음으로 애써 채색하기 힘들다면 잠시 덮어두는 것도 의미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내면의 깊은 곳을 뚜렷하게 마주하며 비추어내는 힘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모이게 하는 힘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영화관에서 보면 그때완 어떻게 다를지, 또 어떻게 느낄지 기대된다. 영화관에서만큼은 오롯이 모든 마음을 열어 듣고 보고 싶다. 그 순간을 충만하게 집중하며 채우고 싶다.




OPUS,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눈물이 주룩 흘렀던 Andata

페달소리가 심장박동으로 들렸던 Solitude. 

저음에서 오른손 왼손 같은 멜로디를 옥타브로 치다가 갑자기 고음으로 올라가서 펼쳐내는 화음들이 좋았던 Ichimei - Small Happiness.

텐션을 외우고 싶다고 생각한 Mizu no naka no bagatelle 

고통스러운 열정이 표정에서 느껴졌던 The wuthering heights

기존 음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 콘서트만의 연주인, 여전히 좋았던 Sheltering sky

' 무지 애쓰고 있거든 ' 영화 후반부 즈음에 쉬어가자고 하면서 덧붙인 한 마디.


유일하게 악보에서 벗어나 그 어딘가로 가고자 했던, 

감정의 결의 파고가 심했던, 

그 순간에 떠오르는 무언가에 몰입하여 더 그리고자 했던, 

이내 다시 악보로 서둘러 돌아와서 마무리했지만, 

이내 다시 합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인간적이었던,

그래서 그 자체가 OPUS의 음악이 된 bibo no aozora까지..


그리고 마지막 엔딩 곡 Opus

곡 중반부터 류이치 사카모토 대신 무인 자동연주 피아노의 움직임으로 프레임이 바뀌었다. 이내 곡이 끝나자 무대 밖으로 나가는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아.. 비로소 류이치 사카모토의 부재, 죽음의 상실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매우 슬프고 인상적인 장면이다. 작년 온라인 콘서트때와 다른, 이젠 그럴 수밖에 없는 최선이자 최상의 연출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엔딩장면이다. 


이렇게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에 남긴 그만의 지문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악보와 만나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섬세하고 심플하게 골라낸 그만의 음 하나하나가 담긴 악보를 보며 진중하게 집중하는 모습이 좋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은 바가 많았다. 이 분의 음악을 귀에 들리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피아노를 치곤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텐션을 외우고 싶다고 느낀 곡의 악보를 사카모토 홈페이지에서 구매했다. 정확한 그 음들을 내 손끝에서 느끼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Opus의 첫 곡이었던 Lack of Love와, 새로 산 악보 mizu no naka no bagatelle 곡을 녹음했다. 귀로는 그분의 음악과 잠시 멀어졌지만, 손끝으로는 만나고 싶었나보다. 또 이때가 아니면 담기 힘들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녹음버튼을 눌렀다. 거칠지만 너그럽게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의 심상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을 올리며 OPUS의 관람후기 글을 여기서 마친다.


https://youtu.be/bs4d8dS9yWY?si=nU3AufPWQH1kMrQP



우주의 고독이

바다의 고독이

죽음의 고독이 있지만, 이런

고독들보다

더 심오한 공간이

영혼만의 

극단적인 내밀한 공간이 있다 ㅡ

유한한 무한


ㅡ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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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inacho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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