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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26. 2023

류이치 사카모토 온라인 콘서트 후기

Playing the Piano 2022


작년 12월 12일에 열렸던
류이치 사카모토 온라인 공연 후기입니다.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이 공연이 영화관에서 개봉할 날을 기다리며 글을 올립니다. :)



오늘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솔로 온라인 콘서트를 관람했다.


수천번을 치셨을 텐데도

악보 보면서 천천히 음 하나하나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실어낸다.



내면에서 그리고자 하는 음의 이미지가 달아날까

스튜디오 안에 부유하는 미세한 바람과 공기를 하나하나 다 잡아서

이내 입술을 꾹 누르며

그의 세계의 음들로 정렬, 응집하고 몰입해 내고야 마는 그만의 소리들.

음 하나하나에 몰아쉬는 숨소리가

나를 숨 멎게 한다.



누르는 노트는 심플하고 담백하며 고요하게.

하지만 세상 꽉 찬 음으로 채워진다.


박자를 되뇌이는 머리의 끄덕임.

미세한 이마주름과 함께  움직이는 눈썹.

집중하는 눈동자,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꾹 다무는 입술과

침의 반짝거림,

안경에 비친 피아노 건반.. 그런 표정들..


ⓒ Kab Inc.


숙련되지만 더 잘 담고 싶은 떨림이 담긴

손가락의 진중한 움직임,

손 마디마디 주름의 세월사이로 유연한 단단함이 흐르는 열개의 손가락..

건반 위에서 박자와 여운을 다듬는 손.

손짓으로 지휘하듯 피아노 서스테인의 잔향들이 퍼지다가 잦아든다.



Aqua에서 가장 여린 세기의 높은 한 음을

정성스레 내딛을 때 눈을 찡긋하는데

나도 모르게 함께 몸을 들썩이게 된다.


Sheltering sky에선 다이나믹의 단단함이 느껴지고

트레몰로 구간에서 에너지를 쏟는 진심이 앵글을 뚫고 나온다.

페달링소리, 박자 맞춰 어깨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숨소리..



유독 야읜 류이치사카모토를

그나마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빛과 어둠을 살린 흑백 모노톤은,

다양하고 섬세하게 담은 심플한 미학적인 클로즈업 앵글 덕분에

더 깊이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성진, 임윤찬.. 등 피아니스트들의

이런 섬세한 앵글 연출의 영상물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분명 음악감상을 끌어올리는데 일조할 것이다.

외국 클래식 스트리밍 사이트들은 그렇게 연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카라얀 지휘 당시에도 베를린 오케스트라를 담는 앵글은 남달랐었으니까.



ⓒ Kab Inc.



야마하특유의 또랑한 선명하고 이쁜 고음들이

마이킹의 섬세함에 담겨

공간을 퍼지며 귀를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게 담긴다.


엔딩장면을 보니 그랜드 피아노를 둘러싼 마이크만 해도 10대가 넘는 듯했다.

영화작업을 고려하여 촬영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감안해서일 수도 있겠다.


실황연주 녹음은 마이킹이 믹싱, 마스터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이번 곡 작업하면서 느꼈다.

그러면 음원발매를 위한 믹싱, 마스터링에서도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변점이 많이 생겨,

연출하고 싶은 피아노 색채, 홀 느낌을 더 자연스럽게 의도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유려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Setlist

ⓒ Kab Inc.








마지막공연일지 모른다는 아쉬움과 슬픔,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경외감이 동시에 든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음악으로의 행보..

한 음 한 음 최선을 다해 집중하여 담아내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등불처럼 따라가고 싶다.


바흐의 고전선율과 인상주의가 미묘하게 어울려 그만의 음악언어를 만들었다.

나 또한 그런 언어를 구사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져만 간다.

내겐 류이치 사카모토의 그런 매력이 크게 다가온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표현해 왔던 수많은 음악스펙트럼 중 하나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일 뿐, 다양한 장르로 오랫동안 음악을 해 오셨다. ( 아래 스포티파이의 사카모토가 직접 고르고 듣는 음악들을 보면, 평소 얼마나 다양한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있다. )


거장은 꾸준히 계속 본인이 하고 싶은 창작을 다양하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점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해 가는 것 같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유독 음악은 젊은 시절에 많이 빛나게 발화하는 게 많은 것 같고, 그림과 글을 다루는 분들은 연륜과 경험이 쌓일수록 더 확고해지는 거 같다.  어떤 분야든 어떤 시기에 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발화점이 오든, 제일 중요한 건 창작자 스스로가 행복하고 즐거운 맘으로 내 주어진 소임을 해내는 보람으로 기쁘게 차오르며 꾸준히 하는 것. 그리고 늘 깨어있으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환기시켜야 도태되지 않고 더 나아가며 변할 수 있다. 늘 살아 숨 쉬며 주위와 함께 호흡하는 생물처럼.



오늘은 류이치 사카모토공연에 흠뻑 빠질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다.




아련하고 쓸쓸하며 무력하지만
덤덤하고 정돈된 고독감이 몰려온다.

이 감정은
류이치 사카모토만이
선사할 수 있는
음악선물이다.



ⓒ Kab Inc.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담은 음악 플레이리스트입니다.

https://open.spotify.com/playlist/3MCYs4OjHjndVquRdY6dNH?si=6145223bf07d46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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