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 Apr 03. 2023

바람아, 내게 봄을 데려와 줘

벚꽃 잎이 흩날리듯이


아른아른 아지랑이, 괜히 눈이 부시고

포근해진 얼음은 겨우 녹아내릴 것만 같아.

동지섣달 기나긴 밤 지나 헤매었던 발걸음.

있잖아, 까맣고 혼자 외로운 날, 그때가 기억조차 안 나.

새하얗게 웃던 날을 기억하나요, 그대.

내가 느낀 모든 걸 너에게 줄 수 있다면.

바람아, 내게 봄을 데려와 줘. 벚꽃 잎이 흩날리듯이.

시간아, 나의 봄에 스며들어, 점점 더.


소리 없이 일렁이며 떨고 있는 초라한 맘은,

흐르는 물의 연꽃처럼 전부 멀어져 갈 거야.

넌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아름다워.

새하얗게 웃던 나를 기억하나요, 그대.

내가 느낀 모든 걸 너에게 줄 수 있다면.

바람아, 내게 봄을 데려와줘. 벚꽃 잎이 흩날리듯이.

시간아, 나의 봄에 스며들어, 점점 더.

햇살에 깜빡깜빡 미끄러지듯이 우린 사르르르.

기지개 피 듯 두 팔 벌린 꽃들처럼 그대 꿈도 On&On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마음.

'혼자만 남아 시들지는 않을까?'

괜찮아, 언젠가 파랗게 피어날 거야.

나는 그런 널 기억할 거야.


새하얗게 웃던 나를 기억하나요, 그대.

내가 느낀 모든 걸 너에게 줄 수 있다면.

바람아, 내게 봄을 데려와줘. 벚꽃 잎이 흩날리듯이.

시간아, 나의 봄에 스며들어, 점점 더.

햇살에 깜빡깜빡 미끄러지듯이 우린 사르르르.

기지개 피 듯 두 팔 벌린 꽃들처럼 그대 꿈도 On&On





루시 - 개화(Flowering)

작사: 조원상, 최상엽






어느 날씨 좋은 날, 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다. 창밖에는 언제 피었는지도 모를 벚꽃들이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탔던 버스였고, 매일같이 지나갔던 길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 노래는 나에게 유독 짙고 향기로운 기억을 남겨줬다.


내 기억으로 나는 이 노래를 추운 겨울 유럽에서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걸 두려워했던 나였기에, 나에게 '낯섦'이라는 단어를 '새로움'으로 바꾸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곳은 역시 추웠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려웠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이 노래가 전해주는 메시지들은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눈앞에 닥친 현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무거웠고 버거웠으니까. 내가 여기, 이 먼 유럽 땅에 이런 고생을 하려고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이 노래는 그냥 내가 최근에 알게 된 곡, 그냥 내 플레이스트에 있는 하나의 곡.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내게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워 한참을 기다리다 어렵게 말을 꺼냈던 나는, 어느 순간 일단 내뱉고 보는 배짱을 가진 나로 변해 있었고, 하나부터 열 까지 여행 계획을 세웠어야 했던, 관광지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세세히 둘러보고 와야 했던 나는 여행 전 날에 계획을 짜는,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건 집중해서 보고 시간이 없어 잘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 편히 지나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게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나는 느꼈다.


약 6개월의 교환학생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자 세상과 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나의 '낯섦'을 '새로움'으로 바꾸고자 했던 목표에 다행히도 한 발자국 그 이상 나아간 것 같았다. 막연한 기대를 품고 갔던 교환학생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과 생각의 많은 부분을 바꿔줬던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이 다가왔다. 바로 '현실'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독일에서의 삶은 꿈같은 삶이었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었고, 꿈에 그리던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나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감탄과 희망이 내 안을 꽉 채웠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자 마치 이 마음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쪼그라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현실을 살아야 했다. 다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얻었던 배짱과 용기,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바쁜 하루하루를 살기 시작했다.

현실을 살기 위해.

복학을 했고 월화수목금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격증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때 들었던 부분이 바로

'바람아, 내게 봄을 데려와줘. 벚꽃 잎이 흩날리듯이'였다.

가사 그대로 창밖에서는 벚꽃잎들이 만개하여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희망과 용기가 가슴속에서 움트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벚꽃처럼, 나도 이 불안함과 두려움을 양분 삼아 개화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교환학생 이전의 어두웠던 삶, 교환학생에서의 힘들었던 삶, 교환학생 후의 막막했던 삶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 나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살고 싶다는, 그동안 힘들었던 삶들이 나에게 양분이 되어 줄 거라는 생각을 이전에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 당장 눈앞의 걱정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내 마음을 두려움과 막막함 속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버스에서 이 노래를 들었던 그 순간은 나를 누군가 어둠의 구덩이에서 홱 빼내어 구해준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 나는 그동안의 삶을 통해 이런 걸 배웠지', '나는 그런 어려움도 이겨냈던 사람이었어', '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하는 생각들이, 나도 저렇게 환하게 개화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다시 생겨났다.


그래서 요즘, 이 노래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봄이라는 계절과 눈에 보이는 벚꽃의 영향도 물론 크겠지만 가사의 모든 내용이 나의 마음속 하나하나에 새겨지고 좋은 양분이 되어 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에 감사하다.



사계절 중 가장 앞에 호명되는 봄은 시작임과 동시에 모든 고난의 끝으로도 여겨진다. 봄을 연상케 하는 '개화'를 통해서 LUCY의 시작을 알림은 물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피는 꽃들처럼 아름답게 만개하는 시기가 올 것임을 이야기하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노래가 수록된 루시의 앨범 'DEAR'에서 전하는 이 노래의 곡 소개글이다.


많은 사람들이 루시의 대표곡으로 이 곡 '개화'를 꼽고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이 곡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곡의 메시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노래들이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이 곡은 유독 그 메시지가 청명하고 투명하며 깨끗하다.


물론 이러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힘도 크다. 곡의 처음에 등장하는 맑은 바이올린 소리, '나는 그런 널 기억할 거야'라는 하이라이트 가사 뒤에 등장하는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들은 청자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바꾼다.


또한 어두운 시기를 이겨내고 아름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꽃이 피는 '개화'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도 매우 멋있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가능하게 한 건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어 하는 루시 멤버들의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루시 노래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들의 가사에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꽉꽉 담겨있다.

노래의 멋을 위한 어떠한 공백과 라임 없이 그저 진정한 마음만으로 모든 가사를 채운다. 그래서 나는 루시의 음악을, 그들의 위로와 격려를 듣는 걸 좋아한다.


아마 나는 내일 오전 9시 반부터 시작하는 아르바이트에 가기 위해 아침에 정신없이 일어나 부랴부랴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살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이 모든 현실이 나의 꿈에 양분이 되어 줄 걸 알기에, 그리고 이 노래가 그게 맞다고 말해줄 걸 알기에 아마 나는 내일 하루의 첫 곡으로 이 노래를 듣게 될 것 같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이 노래를 듣는 아침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