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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pr 30. 2023

어떤 정이 쌓여 있길래

달랑거렸던 이어폰 줄과 맞잡은 손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핸드폰에 집중하던 내 시야에 무언가 움직이는 게 계속해서 보였다. '뭐지..?'하고 호기심에 무심코 앞을 봤더니, 내 맞은편 좌석에 앉으신 어느 중년 부부께서 빨간색 줄 이어폰을 나눠 끼고 함께 핸드폰을 보고 계셨다. 내가 느낀 움직임은 바로 그 이어폰 줄이 흔들리는 지하철에 맞춰 달랑달랑하는 것이었다.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가 트램에서 손을 꼭 잡고 함께 달이 뜬 창 밖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어느 날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부축하며 함께 산책하는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이들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정이 쌓여 있는 걸까.

어떤 기쁨과 슬픔과 신뢰, 그리고 아련한 추억이 쌓여 있는 걸까. 그리고 이런 것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아픔과 행복의 추억을 오랜 시간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느끼는 과정은 매우 힘든 일이다.

내가 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뭉클함을 느낀 건 그 이어폰과 손이 보여주는, 어떤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오랜 시간의 역사와 깊은 믿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부드럽지만 매우 단단하고 강해 보였다.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흔적은 강하다. 그만큼 많은 시련을 견디고 견디어 남은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시간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온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사람이 되길, 하고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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