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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Oct 15. 2021

대탈출 4: 아끼는 만큼 아쉬운

더 넓은 곳으로 가기 위한 도약기라 생각할게요

글의 모든 내용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알립니다 :)




tvN 예능 '대탈출'이 지난 10월 3일을 끝으로 시즌4를 마무리했다. 'DTCU(대탈출 유니버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처음으로 시작한 시즌이었고,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인 '백 투 더 경성'의 나머지 에피소드가 공개될 시즌이었기에 시작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나는 대탈출의 어마어마한 팬이다. 아직도 대탈출을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허한 자취방이 싫어 티빙 정주행 채널을 뒤적이던 중 우연히 대탈출을 발견했고 그때 마침 시즌1 '태양 여고' 에피소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탈출 게임'을 프로그램화한 대탈출만의 독보적인 컨셉, 색다른 줄거리,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날 이후 대탈출은 내 자취방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그래서 나 또한 이번 시즌에 많은 기대를 했다. 대탈출의 자매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여고 추리반>이 방영됐고 <여고 추리반> 에피소드와 대탈출 에피소드 간에 연결이 존재할 것이라는 정종연 PD의 인터뷰도 있었기에 두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기존 세계관의 깊이는 얼마나 깊어질 것이며 어떤 새로운 세계관들이 탄생할 것인지 등 정말 많은 것이 궁금했다. 나에겐 항상 기대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 대탈출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탈출만이 갖고 있는, 대탈출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재미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예측 불가능함에서 오는 몰입'이다. 이는 신선한 탈출 소재, 탈출을 향해 가는 다양한 사건들, 이들을 뒷받침하는 세트, 소품 등에 의해 유발된다. 이 예측 불가능함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을 유도한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탈출을 하는 멤버와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하나가 되고 이에 시청자의 긴장, 재미가 증가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에피소드는 대탈출 3 '어둠의 별장' 에피소드라 생각한다. 탈출 공간 전체가 암전 되어 있기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지,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인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에 시청자들도 멤버들의 탈출에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탈출 과정 중에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오는 쾌감'이다.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얻기 위한 과정 중에 풀기 어려운 문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순간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장면을 볼 때 시청자들은 묘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더불어 대탈출은 이러한 극적인 순간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잘 연출해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더욱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된다.


세 번째는 '이전 탈출 에피소드와의 연결성'이다. 이 지점이 바로 대탈출 유니버스(DTCU)와 대탈출 마니아층을 만들어 낸 가장 큰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전혀 예측되지 않은 지점에서, 특히 가볍게 흘려버린 지점에서 연결 지점을 발견할 때 사람들은 큰 재미를 느낀다. 또한 이 '연결성'은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이번 에피소드의 이 지점이 지난 에피소드의 이 지점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자신만의 시청 후기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더 나아가 시청자들의 예측이 맞아떨어졌을 때 그들은 강한 쾌감을 느끼며 에피소드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탈출 4는 실망이 컸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세계관의 깊이, 연결성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전에 사용했던 탈출 흐름을 반복하는 뻔한 탈출 에피소드가 주를 이뤘다. 대탈출 4의 스케일은 확실히 커졌다. 그러나 스토리는 좁아졌고 뻔해졌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소재가 있다. 첫 번째는 '인류를 해하려는 조직 속에 잠입하여 그들을 막아 인류 구하기'. 탈출 흐름은 이렇다. 'SSA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단체가 인간을 해할 수 있는 기술을 빼돌렸으며 그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을 해치려 한다. SSA가 이들을 막아보려 했으나 실패. 그러니 멤버들! 도와줘라! 이 기술을 막아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미션을 내리는 곳도, 멤버들이 위기에 처한 순간 그들을 도와주는 곳도 모두 SSA. 이 포맷은 시즌3 '빵공장'편, 시즌4 '제3공업단지'편에 모두 등장했다.


두 번째는 '좀비가 장악해버린 공간에서 탈출하기'다. '좀비'라는 소재는 대탈출 시즌 내내 등장한 소재였다. 그만큼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보는 내내 짜릿하고 긴장감이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 등장한 좀비는 이전 시즌에서만큼의 재미를 가져오진 못했다. 좀비를 '교도소'라는 새로운 공간에 놓기는 했지만 이들이 어떻게 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적인 설명이 부재했다. 스토리적인 면에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또한 암실 상태에서 좀비를 피해 탈출하기, 멤버들이 서로 분리되어 각각의 미션 수행하기 등은 시즌2 '희망 교도소', 시즌3 '좀비 공장'에서 경험해 본 포맷이다. 지난 시즌들을 반복해서 보며 데이터가 축적된 시청자들은 이러한 소재, 포맷이 등장하는 순간 이들이 어떤 식으로 탈출을 할 것인지 예상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탈출은 뻔해진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번 시즌은 '대탈출 유니버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시작한 첫 시즌이었다. '대탈출 세계관'이라는 뭉툭한 말로 대탈출 스토리를 담아냈던 지난 시즌들과 달리 'DTCU'라는 공식 명칭을 만들며 앞으로 대탈출이 만들어 낼 세계관에 더 집중하겠다는 제작진들의 의도가 분명하게 담긴 시즌이었다. 따라서 시청자들 또한 탈출 에피소드, 세계관의 연결성과 기존에 해소되지 않은 떡밥들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번 시즌을 기대해왔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인지했는지 이번 시즌에서 이전 세계관, 에피소드와 연결된 부분이 다수 등장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원했던 만큼의 깊이 있는 연결과 심화된 세계관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번 시즌 첫 탈출 에피소드였던 '백 투 더 아한'은 지난 시즌 '백 투 더 경성' 세계관을 잇는 에피소드였다. '백 투 더 경성'은 역대급 스케일, 감동적인 탈출 스토리, '김태임 박사와 타임머신' 세계관과의 연결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만큼 후속편인 '백 투 더 아한'에 대한 기대도 컸다. 예상했던 대로 탈출 스케일은 정말 컸다. 물론 '세트' 스케일만 컸다. 스토리의 재미, 문제 해결에서 오는 재미는 없었다. 에피소드 속 NPC들이 멤버들에게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 탈출의 핵심적인 내용을 모두 알려준다. 알 수 없는 공간에 놓인 멤버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그 '추리와 문제 해결'이 핵심인 프로그램에서 이 모든 걸 NPC의 입을 통해 알려준 것이다.


'백 투 더 아한'은 단지 '세계관 연결'에만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였다. 어떻게든, 정말 어떻게든! 타임머신, 김태임 박사와 연결시켜야 하니 탈출하는 재미고 뭐고 그냥 우리 세트 준비 열심히 했으니까 시청자분들은 그냥 따라와 주세요! 하는 느낌이랄까.(그냥 그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느낌) 탈출보다는 스토리 연결, 세계관 연결에 심취한, 대탈출의 본질을 잃어버린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노랑통닭 PPL은... 할많하않) 좁은 공간 속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뽑아낸 '크레이지 하우스'와 많은 비교가 되는 에피소드였다.


'적송 교도소' 에피소드에서도 시즌2 '무간 교도소'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인물인 교도소장과 보안과장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멤버들 대신 좀비가 되는 역할만 했을 뿐 아무런 역할도 맡지 않았다. 단지 같은 '교도소'라는 장소에 등장했던 인물이기에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둘을 등장시킴으로써 '교도소' 세계관을 스토리적으로 보강하지도 못 했고 두 인물에게 임팩트도 주지 못했다. 차라리 이 둘이 좀비 세계가 된 적송 교도소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거나 그 배후에 있는 인물들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4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하늘에 쉼터' 1편은 흥미롭게 보았다. 과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캐쳐'라는 아이템을 활용하여 쉼터에 대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스토리는 긴장감을 지속시키며 꽤 큰 몰입도를 선사했다. 하지만 2편에서 하늘에 쉼터가 '백사회'와 연결되며 스토리적인 재미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백사회'는 바로 전 에피소드인 '제3 공업단지'에도 등장했던 조직이기에 신선한 연결성을 불어넣긴 힘들었다. 또한 백사회 등장 전까지 진행됐던 스토리가 신선하고 재미있었기에 '하늘에 쉼터'만의 독보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 집단과 백사회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연결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연결은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사이비 종교' 세계관을 새롭게 만들어냈더라면, 혹은 반응이 좋았던 '천해명' 세계관과 연결시켜 오컬트적인 재미를 살려 '신하늘' 원장이 잘못된 신 '천해명'을 받드는 사람이었더라면 조금 더 기존 세계관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많이 아쉬웠던 에피소드였다.







'럭키랜드'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람으로만 등장했던 빌런을 인공지능 로봇으로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빌런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게임 속에 들어가 있다는 스토리 설정, 인공지능 빌런을 도입한 것은 신선했지만 탈출 흐름은 신선하지 않았다. 시간 내에 인공지능 빌런 '피노'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시간 내에 폭탄, 생화학 무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과도 대상만 다를 뿐 같은 포맷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빌런의 '분노'(분노가 포인트)로 인해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 '분노'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그런 긴장감은 많이 경험해보았다.


이렇듯 탈출 포맷과 흐름이 신선하지 못했기에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자체 제작한 '피노'라는 인공지능 빌런이 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탈출 스토리보다 최첨단 과학 기술이 더 부각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새로운 형태의 빌런을 도입하고 싶었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탈출법을 고민해보아야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여고 추리반>의 '초인간 연구회'와의 연결 지점을 추가해 세계관을 넓히거나 혹은 모든 일이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1편의 스토리적인 컨셉을 끝까지 밀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대탈출의 전성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있다는 신선한 스토리 설정, 다른 NPC들의 도움 없이 오로지 멤버들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재미와 긴장감, 풀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시원시원하게 풀어주는 재미, 정말 무의식 속에 들어온 것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트. 모든 것들의 합이 잘 맞았던, 이번 시즌 최고의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대탈출의 이번 시즌은 기존의 비슷한 포맷, 소재를 다시 활용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이전 에피소드들에서 등장했던 떡밥을 회수하고 연결성을 강화하는, 즉 세계관 전체의 범위를 확장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리고 대탈출이 DTCU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싶다면 이제 세계관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개의 시즌을 만들어가는 동안 너무나 다양한 인물, 사건들을 마주해왔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연결하여 하나의 큰 스토리를 만들어내기엔 무리가 있다. 무리하여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고 해도 스토리의 재미는 낮아질 것이며 그들의 연결 또한 얕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꾸준히 가져갈 세계관은 꾸준히 강화, 보강시키고 단발성으로 가지고 갈 세계관은 깔끔히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큰 스케일, 거대한 세트, 많은 기술을 접목한 탈출 소품을 보기 위해 대탈출을 보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대탈출을 보는 이유는 독보적인 대탈출의 세계관, 멤버들의 짜릿한 문제 해결, 흥미로운 탈출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 보는 것이다. 거대한 스케일, 세트와 같은 것은 결국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놀라움을 자아내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이번 시즌에서 세계관의 연결이 깊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기존의 것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더 깊고 더 넓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까지 대탈출의 큰 스케일은 많이 보여주었으니 이젠 대탈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유의 재미를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프로그램인 대탈출.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가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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