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섬세해졌어요
현이와 준이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오늘 왜 같이 오라고 하셨어요?"
"뭐 좀 만들어 보려고."
축구 좋아하는 초등 3, 4학년 남자아이들과 도전하는 마들렌 굽기.
마들렌은 조개모양의 프랑스 디저트 케이크다.
얼마 전 준이가, 초등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피자는 바로 '(이제) 책 피자'라고 했다.
오늘은 책 필 일이 없으니, 신발 밑창을 굽는다 해도 신이 났으려나.
열정적인 미국 제빵사분의 시범 영상이 끝나자
형제들은 알아서 손을 씻으러 갔다.
요새 만나기만 하면 아웅 대던 형제 둘이 세상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지시를 기다렸다.
현에게는 밀가루를, 준에게는 설탕을 계량하게 했다.
커다란 볼에, 계란 깨 넣으라 하니,
거칠 것 없던 소년들은 갑자기 달걀을 쥐고 이리 깰지, 저리 깰지 재보더니
볼 가장자리를 이리저리 노크해 보았다.
신기하지. 녀석들 손으로 조금만 세게 움켜쥐어도 노른자가 쏙 하고 나올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녹인 버터도 식혀서 섞고, 반죽도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차게 하라고 한다.
여러 번 구워보니, 비율만 잘 맞으면 굳이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먹을 만' 했다.
바로 구워 먹는 따뜻함만으로도 충분했다.
반죽을 섞을 때, 현이는 자신을 자주 '형'이라 지칭했다.
'형이 할게.... 형이 줄게... 형이 해줄게...'
준이도 고분고분했다.
십 분이 되어가자, 마들렌의 달콤함이 거실 가득 차올랐다.
"맛있는 냄새난다."
엄마, 아빠, 막냇동생 준다고 더 먹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봉투에 담았다.
갓 구워낸 마들렌은 모두에게 달콤함을 안겨주었다.
마들렌을 구워 나누어 먹은 다음날.
전 날 해보았던 과정을 글로 바꾸어 보았다.
녀석들이 달걀을 깨고, 미끄덩 거리는 속에서 껍질을 건져내는 영상을 보며 현이가 피식 웃었다.
In a bowl, crack the eggs and add sugar. Mix well until fluffy.
crack the eggs... crack 단어를 몰랐다 해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읽는 게 막히면, '계란 빡 crack' 액션을 반복해 보았다.
Add the flour, baking powder, and salt. Mix gently.
기본적인 단어들 눈에 발라주고...
Bake for 10-12 minutes until light golden brown.
준이가 golden brown 이 뭐냐고 물었다.
어제 구운 마들렌 색을 떠올려 보라 하니 바로 해결되었다.
안다.
매 수업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런다고 갑자기 영어공부가 쉬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