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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May 30. 2024

'노동, 돈, 소유'가 지겨우신가요?
이런 삶도 있어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고미숙 지음

오늘은 코뮌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코뮌(Commune)이란 모든 구성원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자치 공동체인데요. 구성원의 고유성과 집단의 공동체성이 모두 살아 있는 굉장한 집단입니다.


제가 코뮌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가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우리는 개개인의 고유성을 지키기도 어렵고 동시에 집단의 공동체성도 무너져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잠깐 우리가 사는 모습을 살펴볼까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공부 노동에 시달립니다. 대학생이 되면 스펙 쌓기 및 취업 전쟁에 시달리고, 직업을 얻으면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립니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라는 생각에 수억의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다시 그 빚을 갚기 위해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고, '남들보다 잘 살고 싶어.'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시달리면서까지 우리가 꿈꾸는 건 무엇인가요? 괜찮은 집, 괜찮은 차, 괜찮은 노후 그리고 대물림입니다. 이때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노동, 돈, 소유’입니다.


우리는 ‘노동, 돈, 소유’에 청춘은 물론 일생을 쏟아붓습니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우리의 ‘고유성’을 갉아먹고, ‘남들보다 잘 살고 싶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갉아먹습니다.



1. 대한민국에 화장실이 몇 개나 있을까?


잠깐 주제를 돌려볼게요. 혹시 이런 질문을 품어본 적 있나요? 대한민국에 화장실이 몇 개나 있을까요?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 가구수는 2,371만 가구인데요. 집집마다 화장실이 있고 심지어 화장실이 2개 이상인 경우도 많기에 대한민국에는 최소 3,000만 개 이상의 화장실이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공공 화장실과 각 건물에 딸린 화장실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많아지겠죠?


화장실이 많으면 편리하고 쾌적해서 좋습니다. 다만 꼭 그래야만 할까요? 하루에 단 몇 분 사용하고 더는 쓰지도 못하는 공간을 항상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값을 치르기 위해 빚을 내고 힘든 노동에 시달려야만 할까요?


가면 갈수록 개인이 ‘소유해야만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남들만큼은 살아야 하니 자동차, 옷, 가구, 전자기기 등 사야 할 게 점점 많아집니다. 때문에 내가 쓰지 않을 때조차 타인도 쓰지 못하는 ‘개인 소유’가 늘어갑니다.


가진 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다들 ‘개인 소유’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더 나은 소유’를 자랑하기 바쁩니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우리는 모두 자기 몫의 ‘개인 소유’를 갖추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힘든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개인 소유’는 환경을 착취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개인 소유’를 생산하기 위해 숲, 바다, 대기를 착취합니다. 숲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의 터전을 착취하기에 우리의 ‘개인 소유’에는 그들의 목숨이 녹아 있는 셈입니다.



2. 왜 우리는 ‘개인 소유’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원래부터 인류가 ‘개인 소유’에 이토록 집착했던 건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왜 ‘개인 소유’에 집착하기 시작했을까요?


유목민은 불필요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에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합니다. 게다가 유목민들은 자연에 기대 살기에 소중한 자연을 더럽히는 불필요한 물건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반면 정착민은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합니다. 정착민들은 땅에 선을 그어 나와 너를 구분 짓고, 각자의 영토를 소유합니다. 정착민은 자기 영토가 있기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보관할 수 있으며,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자기 영토가 아닌 곳에 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정착민들의 소유욕에 불을 지핀 계기가 생기는데요. 바로 ‘근대적 사고’입니다. '근대적 사고'야 말로로 지금 우리 모습의 강력한 뿌리인데요. ‘근대적 사고’란 이성 중심 사고로 ‘인간의 이성, 과학적 사고가 짱이야!’를 외치는 계몽주의의 사고방식입니다.


근대적 사고는 인간을 자연 위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도구 삼아 자연을 파악하고 해체하고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성을 지닌 인간 한 명 한 명이 고귀하니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자는 시민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간 한 명 한 명의 욕망이 우주만물의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평등에 집착하여 ‘최소한 남들만큼은 누려야지!’가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쟁하듯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했고, 또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비로소 인간은 지구의 최강 폭군이 되었습니다.



3. 새로운 상상, 코뮌주의


폭군의 끝은 고독입니다. 폭군 주변에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아첨을 떠는 이들과, 복수의 칼을 갈며 기회를 노리는 이들만 남습니다. 폭군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우리의 미래 또한 폭군의 최후와 비슷할까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노동, 돈, 소유’에 집착하여 자연을 이용할 대로 이용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끼리 잘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만큼, 남들보다’를 외치며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느라 점점 외로워지고 고립되어 갑니다.


이제 우리는 잠깐 멈추어 다른 삶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님의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는 ‘노동, 돈, 소유’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담겨 있는데요. 바로 코뮌입니다.


코뮌(Commune)이란 모든 구성원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자치 공동체인데요. 구성원의 고유성과 집단의 공동체성이 모두 살아 있는 굉장한 집단입니다. 그럼 코뮌이 가진 네 가지 독특한 특징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어떤 점이 다른 지 상상해보시면 재밌을 거예요.


첫째, 코뮌 속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을 누릴 줄 압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핵심 기준이 ‘돈’인 반면, 코뮌 속 사람들의 핵심 기준은 ‘자신의 몸’입니다. 코뮌 속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자기 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건강한 지를 전혀 모르는 지금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몸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수공예 코뮌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춤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몸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예술 코뮌이 탄생할 수도 있고요. 또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 코뮌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 코뮌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수공예 코뮌은 수공예를 통해 소득을 창출해 냅니다. 마찬가지로 예술 코뮌은 예술 활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해 냅니다. 만약 코뮌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결코 유지될 수 없겠죠?


셋째, 코뮌은 사람들의 습속 및 신체를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집에서 자유를 누리던 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면 자신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하듯이 코뮌에 들어간 사람은 코뮌의 생활 패턴에 맞게 자신의 몸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또한 코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기존 활동이 개선되거나 사라지며 또 새로운 활동이 창조되기도 합니다. 활동이 변하면 사람들의 습속과 신체가 또 달라집니다. 그리고 달라진 사람들의 습속과 신체는 또다시 새로운 활동을 창조해 냅니다. 이처럼 코뮌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데요. 고미숙 님은 습속과 신체가 변하지 않으면 코뮌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넷째, 코뮌은 외부를 향한 감염력이 있습니다. 코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연을 끌어들입니다. 자신의 본성을 누리는 사람들이 모여 끊임없이 성장하는 모습은 외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그리고 코뮌 속 사람들 또한 새로운 인연을 환영합니다. 그들은 각자도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신이 타고난 능력만으로 사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지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타인의 능력과 제대로 접속하면 자신의 능력이 훨씬 증폭될 수 있다는 걸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연결의 긍정적인 힘을 아는 그들은 새로운 인연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4. ‘노동, 돈, 소유’의 시대에 코뮌을 상상하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나아가 저만의 고유한 관점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미숙 님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고 나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먼저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몇몇 모아 건물 하나를 임대합니다. 우리는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물론 아직은 각자 밥벌이, 즉 노동을 해서 임대료와 생활비를 벌어야겠죠. 하지만 화장실, 주방, 공부 공간들을 공유하니, 즉 '개인 소유'를 줄일 수 있으니 혼자 살 때보다는 부담이 덜 할 겁니다. 또한 서로 필요하지 않은 옷이나 물건들을 나눌 수 있고, 특히나 서로가 산 책을 무료로 공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노동하지 않을 때 각자 책을 읽고 글을 쓸 겁니다. 나아가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마련하여 자신의 사유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습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또 받으면서 우리의 사유는 점점 깊어질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소문이 납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더라. 깊은 사유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더라." 그래서 우리 만의 작은 발표회가 어느새 대중 강연이 되고, 강연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게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수입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이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됩니다.


제 상상이 어떤가요? 터무니없게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으면 이런 삶이 이미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미숙 님이 몸 담았던 ‘수유 + 너머’ 연구소가 바로 그 예인데요. 심지어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실현되었던 꿈이라는 겁니다. 코뮌 속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이 책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우리는 늘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자유는 참 좁습니다. 흔히 상식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만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월급쟁이 생활을 한 사람에게 “10억이 생기면 뭐 할래?”라고 물어도 “직장 그만두고, 여행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집도 사고, 차도 바꿀 거야.” 정도의 말만 나오는 것처럼요. 이처럼 우리는 투자나 기부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고 오로지 ‘노동, 돈, 소유’의 관점에서만 자유를 상상합니다.


‘노동, 돈, 소유’의 관점에 갇히면 정작 ‘나’ ‘나의 몸’ ‘나의 본성’이 사라집니다. 나아가 주변 사람을 적대시하여 ‘공동체성’이 사라집니다. 그곳에 진정한 행복과 자유가 있을까요?


오늘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인데요. ‘노동, 돈, 소유’를 위해 우리의 청춘과 일생을 꼭 바쳐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상상하고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가 우리의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이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수많은 코뮌이 탄생하는 작은 씨앗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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