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요리에 대해 써보세요.
01.
지영은 감자탕을 좋아한다. 돼지 등뼈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갖은 재료를 넣고 들통에 오래 끓이고 끓인 감자탕. 뼈를 들기만 해도 살이 쑥쑥 빠지고, 입으로 빨면 골이 쪽쪽 빠지는 그런 감자탕.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밤새 보초를 서야 하는 엄마표 감자탕.” 지영의 소울푸드이다.
국물에서는 어찌나 진한 맛이 나는지, 들깨를 갈고, 양파와 사과를 갈아 단맛을 내고, 오래도록 말린 무청 시래기나 묵은지를 넣고 마지막에 깻잎순까지 듬뿍 올리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친정엄마는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감자탕을 자신의 집에 올 때마다 만들어주고, 들통에 남은 감자탕을 김치통에 넣어 모조리 싸준다. 매번 외식을 하자고 해도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안 할 수 있어?”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 신다.
두 남매의 엄마인 지영은 친정에 갈 때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런 대접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명확하다.
02.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요리에 대해 써보세요.
라는 문장을 보고, 친정엄마를 떠올렸지만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바나나, 달고 맛있는 빵, 석류… 아.. 우리 엄마는 갑각류를 좋아하시지? 대게나 꽃게…
그러고 보면,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의 아이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보다 남편과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탁 가득 한 상 차려내신다.
생밤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밤나무에서 밤을 잔뜩 따다가 벌레 먹은 것은 골라내고, 껍데기를 다 까서 생밤채 가득 챙겨 보내주신다.
맞다. 엄마는 대게를 좋아한다. 대게철에 꼭 대게를 사다가 집에서 쪄서 손주 사위들을 위해 껍데기까지 다 까신다.
그러고 보면 지영은 결혼 14년 차임에도 엄마를 위해 따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03.
엄마가 다음에 오면 편백찜기에 대게를 넣고, 모락모락 쪄내어 껍데기를 까서 대접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지금 처음 해본 다니, 죄송스럽기만 하다.
나의 엄마, 그리고 나의 딸.
둘의 식성이 닮았다.
둘을 식탁에 앉히고, 내 손 바쁘게 껍데기를 까서 살만 입에 쏙쏙 넣어주고 싶다.
마지막, 찜기 바닥 냄비에 버섯과 칼국수, 만두까지 넣고 든든하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과일까지 예쁜 접시에 담아내고, 엄마와 딸이 나란히 앉아 실뜨기를 하다가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잠이 몰려와 둘이 꼭 껴안고 낮잠을 자는 모습을 설거지하는 중간중간 힐끗대며 보고 싶다.
글로만 써도 행복함이 넘치는 엄마를 위한 요리.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한다.
04.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 45살에 내 나이 21살이었는데, 어느덧 내가 45살이 되었고 비슷한 나이에 나도 폐경이 되었네.
그땐 왜 그렇게 힘들어하고, 땀을 흘리고 신체 대사가 꺼진 느낌에 사람이 퀭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엄마가 내 딸 같아 안아볼 수 있는 마음의 품이 생긴다.
다음엔 엄마랑 지온이에게 맛있는 대게를 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