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에 대해 써보세요.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
이 글감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한 번도 나의 밤에 대해 글로 적어보며,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01.
요즘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뿌연 느낌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 루틴을 지키며 한 장 한 장 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아침부터 내 에너지 이상을 끌어다 쓰고, 밤에는 소진된 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 어렵다.
밤이 되어서야 아이들이 보인다.
더 챙겨주고 눈 마주쳐주고 사랑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나 자신을 채우지 못해 조급하다.
불안하다.
02.
총량 보존의 법칙…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 20대의 시기를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흘려보내고,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치열하게 고민해 보지만
고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시기이다. 나의 돌봄 되로 인격이 빚어지는 예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내 나이가 부담스럽고 안타깝다.
흠… 마흔이 주는 깊어짐은 좋지만, 뒤늦게 자아탐구의 과정은 잡념이 많다.
이 시기가 10년만 더 빨리 나에게 찾아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03.
새벽 달리기 도파민 샤워로 나를 딴 길로 새지 못하게 꽁꽁 묶어버리고, 그 상태로 아이들에게 고른 감정으로 육아를 하지만,
밤이 되면 이루어놓은 것이 없는 45살의 불안감이 헐거워진 틈새로 삐져나온다.
불안감이 선명해진다.
인생의 본질도 모르고 왜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왔을까? 나를 다그치게 된다.
에너지가 전부 소진된 채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 도파민이 분출되는 숏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 “숏폼에 멍한 채 빠져있는 동안” 방치되고 있는 두 아이가 보인다.
아이들을 향한 부족한 내가 선명해진다.
나에 대한 자책과 실망이 더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9월부터 시작한 “고독한 책상 : 22시~24시 핸드폰을 멀리하고, 자리를 지키며 공부를 하는 것. 트루스 기업 윤소정대표님과 함께했던 6개월의 앤드엔 비공개 세미나는 졸업했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자 3명의 친구가 줌으로 같이 또 따로 공부하는 책상”은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는 모멘텀이거늘
치고 나가지 못하는 느낌, 밤마다 내가 미워진다.
숏폼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04.
이 사실이 선명해지자 하나의 결심이 섰다.
저녁 20시~22시,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집중해야 하는 시간.
22시부터는 고독한 책상에 앉아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간.
밤이 주는 느낌,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이이들에 대한 미안함
나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마음을 읽고 그런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두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