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병래 선생님을 바라보며..
박물관 유리 진열장 너머, 박병래 선생님이 사랑했던 백자 연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요한 하얀 바탕, 둥글고 야무진 그 모습엔 화려한 장식도, 대범한 문양도 없습니다. 작디작은 이 연적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안목책을 읽으며 처음 박병래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조선의 접시를 모르냐?>는 일본인 교수말에 자존심이 상해 밤잠도 설치며 분한 감정이 들었던 박병래 선생님은 없는 돈을 모아가며 하나하나 우리 문화 유물을 사모았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작은 연적밖에 살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그 한 줄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큰 항아리나 화려한 청화백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손바닥만 한 조그만 연적으로 시작했던 그 마음을 상상해 보니 괜스레 귀엽고 애틋했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진짜 ‘좋아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생 시절, 용돈을 모아 작은 책 한 권, 작은 소품 하나를 살 때의 그 간절함이 떠올랐습니다. 비싸고 값진 것은 살 수 없어도, 내 마음에 드는 작은 것 하나를 고르고 또 고르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아마 박병래 선생님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큰 것은 못 사도, 작은 연적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으며 안목을 키워가셨을 테니까요.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작은 연적에서 시작해 한국 백자의 진면목을 깨달아가셨다고 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여백의 미, 소박하지만 완벽한 조형미를 알아보게 되신 거죠. 저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예쁘고 반짝이는 사치품에 끌렸다면, 이제는 수백 년이 지나 현재의 저에게 닿은 유물들에게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선생님이 평생 아껴 모은 소중한 연적들을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셨다는 점입니다. “나누고 싶다”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결단이었을까요. ”나 “를 향하지 않고 ”모두“를 향했던 그 마음과 시간 덕분에 이제 우리가, 내 아이가, 내 아이의 아이가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신 거니까요.
작은 백자 연적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간절했던 시작과 깊어진 안목, 그리고 나누고자 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돈이 없어도, 작은 것에서도 진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작은 연적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제 나름의 작은 ‘연적’을 찾아, 소중히 키워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