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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 Honey Jul 18. 2022

장미 정원

여하니 동화집

어느 시골,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아주 예쁘고 작은 섬마을이 있었습니다. 섬마을은 빨강, 노랑, 파란 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오르며, 기분 좋은 바람이 늘 따뜻하게 불어오는 곳이었답니다. 그곳에는 다리를 다쳐, 멀리 움직일 수 없는 한 슬픈 소녀가 살았습니다. 소녀는 늘 정원에 앉아 하루 종일 붉은 장미를 바라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마을에서는 그 가엾은 소녀를 ‘장미’라고 불렀답니다. 


그런 장미를 좋아하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장미야 안녕!”

오늘도 장미의 집을 지나 집으로 오던 소년은 크게 인사를 하지만, 슬픔에 빠진 장미는 힘없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장미와 친구였던 어린 소년은, 움직이는 게 불편한 장미 곁에 늘 함께 있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곧 섬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섬을 떠나기 전, 장미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다리가 아파 학교에도 갈 수 없고 늘 정원에 혼자 앉아 있는 장미를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장미를 웃게 할 수 있을까요?” 

장미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소년은 학교에 가서 두 손을 간절히 모은 채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착한 소년. 장미는 다친 다리 때문에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단다.” 

“마음의 문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래, 마음의 문. 마음의 문은 행복할 때 활짝 열리기도 하지만, 아주 깊은 상처를 얻었을 때 다시 닫히기도 하지.”

“그럼, 장미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장미가 웃음을 찾게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한 번 닫힌 마음의 문은 진심으로 빚어진 사랑만이 열 수가 있단다.” 

“진심으로 빚어진 사랑이요?” 

소년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신 선생님은,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어린 소년에게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한 소년은, 그 길로 장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장미의 굳게 닫힌 마음은 어찌 열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장미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똑, 똑.’

정원을 가린 커다란 대문을 소년은 힘차게 두드렸습니다. 

‘끼이익.’ 

잠시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장미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장미야 안녕?” 

“어...?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 왔니?”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의 장미가 묻자, 소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장미 네가 있는 곳이라면, 앞을 보지 않고도 올 수 있단다!” 

장미는 소년의 손을 잡고 대문 안쪽으로 소년을 끌어당겼습니다. 장미의 정원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며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 의자에 풀썩 앉은 소년이 장미에게 물었지요. 

“장미야, 넌 진심으로 빚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소년의 말에 장미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자신의 손을 멈추었습니다.

“진심을 빚은 사랑? 나도 잘 모르겠는걸.” 

“그렇지? 장미 네가 다시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선생님께 물었더니, 너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대. 나는 그런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단다. 나는 섬을 떠나기 전에, 너를 반드시 기쁘게 해 주고 싶은데 말이지.” 

말을 마친 소년이 꽃향기를 음미하듯 눈을 살포시 감았습니다. 그런 소년은 가만히 바라보던 장미는 소년을 보고 말했지요. 

“그럼, 네가 가장 잘 하는 재주를 부려 섬을 떠나기 전, 내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해 주렴.” 

장미의 말에 소년이 장미의 손을 천천히 마주 잡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장미야, 난 가진 것이 없는걸...? 반짝이는 것도 없고, 여기 이 정원에 핀 꽃들만큼 향기로운 것도 없어...” 

소년의 시무룩한 말에 장미는 소년의 손을 가볍게 몇 번 더 움켜쥐었습니다. 

“반짝이고 향기로운 것이 아니어도 좋아. 너만이 해 줄 수 있는 선물을 내게 해 줄 수 있겠니? 그 어떤 것이라도 난 기쁠 게 분명해!” 

장미의 말에 소년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소년은 장미를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확신에 찬 소년이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 외쳤습니다. 

“그렇지! 장미야! 나는 그 누구보다 소리를 잘 듣는 단다!” 

“소리?” 

“그래, 소리! 소리를 따라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는 내가, 이 섬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담아 올게! 다리가 아파 정원을 떠나지 못하는 네가 들을 수 없었던 소리 말이야!” 

장미는 힘찬 소년의 말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재빨리 닦아내었습니다. 새벽에 맞은 이슬처럼 촉촉이 맺힌 눈물을, 소년이 보지 못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장미야!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떠나버리기 전, 너의 마음의 문을 열어 널 기쁘게 해 줄게!” 

그렇게 장미의 정원을 나선 소년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모험을 떠나기 위해, 집에 있는 가장 단단하고 커다란 유리병을 집어 들었습니다. 소년은 선택한 유리병을 이리저리 두들겨도 보고, 크기를 손바닥으로 요기조기 만져 가며 쟤 보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아름다운 소리를 모두 담아 장미에게 선물해야지!” 


다음 날, 유리병을 꼭 움켜쥔 소년은 먼저 바닷가를 향했습니다. 조금 센 바람에 파도가 춤추는 소리를 따라가니, 어느 덧 시원한 바닷물이 소년의 발끝을 촉촉이 적셔왔습니다. 바다에 왔음을 알게 된 소년은 조심스럽게 커다란 유리병의 단단한 마개를 빼내었습니다. 그리고 병의 입구를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가져다 댔지요. 


다음으로 소년이 발걸음 한 곳은 푸릇푸릇 한 나무와 야생화가 사이좋게 어우러진 들 이었습니다. 나무를 피해 방문한 부드러운 바람이 자꾸만 이름 없는 꽃을 흔들었습니다. 덕분에, 휘날리는 꽃잎이 소년의 볼을 스칠 때면, 소년은 간지러워 그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곤 했지요. 꽃을 맴도는 나비와 꿀벌의 날갯짓 소리부터, 들에 곱게 깔린 흙을 밟는 소리 모두 소년이 사랑하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들판을 오래오래 거닐었습니다. 소년이 쥔 커다란 병에 이 아름다운 소리가 모두 담아질 수 있도록, 일부러 멀리멀리 거닐었지요. 


늦은 밤, 해님이 쏙 숨어버린 까만 하늘에 눈부신 별들이 수 놓였습니다. 소년은 하늘에 자리한 반짝이는 별들에게 가까이 서기라도 하듯, 까치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움켜쥔 유리병을 자신의 가슴에 가까이 데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오직 조용한 별들이 비춰주는 은은한 빛 아래서, 소년은 장미를 생각하면 ‘콩, 콩’ 뛰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병에 담았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웃음소리를 내어 줄 장미를 생각하며, 한참 동안이나 유리병을 가슴에 데고 있었답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담기 위해 긴 모험을 마친 소년은, 고단했는지 집으로 오자마자 잠들어 버렸답니다. 어여쁜 소리가 담긴 유리병을 꼭 쥐고 잠든 소년은, 그날 밤 기분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소년은 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잠결에 소리를 담아 온 커다란 유리병을 놓치는 바람에,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 버린 탓이었지요. 이제 내일이면 섬을 떠나야 할 소년에게, 두 번의 모험을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소년은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애석히 바라보다, 장미에게 선물 없는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쓸쓸히 집을 나섰습니다. 


“장미야. 약속한 선물을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너를 꼭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장미의 손을 꼭 붙잡은 소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장미는 소년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럼, 담아 오려던 소리를 직접 흉내 내어 주지 않을래?” 

장미의 말에 소년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소년은 재빨리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큰 소리로 담아오려던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건, 성난 파도가 바다 위 바람을 만나 내는 소리야. 철썩! 철썩! 둥! 둥! 둥! 휭~!” 

소년의 흉내에 장미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장미의 웃음소리에 소년은 더욱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건, 꽃을 맴도는 나비와 꿀벌이 내는 날갯짓 소리이지. 윙~! 윙~! 또, 흙을 밟는 소리도 있단다? 자박! 자박! 푹! 푹! 폴싹! 폴싹!” 

마치 춤을 추듯, 정원을 거닐며 신나게 소리를 흉내 내던 소년은, 장미의 웃음소리를 따라 장미 앞에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장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자신의 품에 포근히 안아주었습니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채 장미가 앞에 선 소년의 품에 안기자, 빠르게 ‘콩, 콩’ 뛰는 소년의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장미야, 난 널 생각하면 늘 여기서 이렇게 소리가 크게 난단다.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운 소리지?” 

장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품에 안긴 그대로, 또 소리 내어 ‘꺄르르’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장미는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소년 또한 장미의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을 깨닫게 되어 동시에 행복했습니다.  

“아름다운 장미야. 내가 내일 섬을 떠나더라도, 널 좋아하는 내 마음을 가득 담은 이 소리를 꼭 기억해서 크게 웃어주렴.” 

그런 소년의 말에 장미는 웃음을 잠시 멈추고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넌 앞이 보이지 않잖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아름다운 걸 알 수 있고, 좋아할 수가 있어?” 

소년은 장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네가 아름답다는 건 너무 쉽게 알 수 있어, 장미야.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도.” 

“어떻게?”

“행복에 찬 너의 웃음소리는, 내 가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어 낼 만큼 아름다우니까. 너의 모습을 영영 보지 못해도, 난 널 떠올리면 늘 이곳에서 이 ‘콩, 콩’ 소리를 낼 수 있을 거야.” 

소년의 말에 마음이 행복으로 차오른 장미는 또다시 소리 내어 크게 웃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이나 손을 마주 잡고 크게 웃으며 함께 있었답니다. 



- ‘장미 정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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