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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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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Feb 03. 2023

퇴사

누군가의 퇴사를 바라보는 기분

누군가의 퇴사를 바라보는 기분은 이렇다.


예컨대

바다 한가운데

바닥이 겨우 잠길 정도의 정자가 있고

지붕 한가득 그림자가 누워있다.

하늘엔 태양을 가릴 구름 하나 없는데도.


그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떨리는 울대를 애써 조이느라

여러 번 목을 끄덕이고는

V자를 한 손을 보이며 애교 있게 퇴장했다.


이후로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갇혀

책상을 지키다 퇴근했다.


이번엔 구름이 내 머리 위를 따라다니는 듯했다.

누가 보이지 않는 구름모양의 풍선이라도

달아 놓은 걸까.


이 사무실 안에는

또 다른 퇴사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텐데.

신입 딱지를 떼려 아등바등 대는 누군가와

모두의 인정을 받는 누군가

업무시간이 가시방석일 누군가도.


눈이 피로해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빌 때면

이 조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변해

모두를 살피곤 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계속 이대로였으면' 그뿐이었다.


아마 언제까지고 함께여서

안정적인 업무환경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 때문일 거다.


그래서

누군가의 퇴사를 바라보는 내 기분은 이랬다.


그의 도약을 응원하는 만큼 헤어짐이 아쉬우면서도

거기에 영향을 받을

내 기분에 안전장치를 걸어

정자의 지붕 위에 그림자를 띄운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퇴사를 바라보는 내 생각은 이렇다.


당신과 나의 길에

햇살만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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