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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Dec 22. 2023

그네 인생

윤석남 개인전 후기 1

화가 윤석남은 1939년생이다. 화가로 데뷔한 때는 현 아르코미술관의 전신인 서울미술회관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던 1982년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한마디 말에 친구가 화가 이종무를 소개시켜 줘 그림을 배운 게 1979년이었으니 빠른 데뷔로 보이지만, 그만큼 열정과 재능과 노력이 농축되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자화상(2018)

윤석남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는데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일찌감치 꿈을 접었다. 그러다 주부로 살면서 문득 ‘내가 왜 태어났지?’라는 본질적 질문에 맞닥뜨렸고, 현재의 자신은 답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마치 답을 찾듯 남편이 가져온 그달의 월급을 붓과 종이, 물감을 사는 데 다 써버렸다. 늦은 나이,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엄마라는 처지, 미술 관련 무학위… 윤석남이 화가로 뿌리내리기에는 당시 자신이 발을 디딘 현실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불씨를 꺼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면의 열정은 폭발을 참았던 화산과 같았다.


작품을 계속해서 그려 나갔고, 전시를 이어갔다. 붓을 놓지 않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와 방식을 탐구했다. 사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한결같은, 아니 더욱 타오르는 예술혼이 있다면 그것은 윤석남이라는 화가가 그려낸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025마리의 유기견을 작품으로


그의 나이는 현재 여든이 넘는다. 나는 그의 작품을 2023년 11월과 12월 사이 대구미술관에서 세 번 만났다.(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으로 2023년 12월 31일까지 대구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그곳에서 근래 몇 년 동안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채색 초상화> 스무여 점, 1,025마리 유기견을 나무에 채색해 만들어낸 작품을 전시한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등 굵직한 테마 전시가 있었다. ‘나이’라는 숫자가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 앞에서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을 확인한 것만 같았다. 위대한 성실성이다.     



1. 그네 인생

그런데 내가 작품들에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곳은 [2001~2003 연작 드로잉] 전시실이었다. 주인공들은 그네에 매달려 있었다. 좌우가 쪼개져 있었다. 오른손이 손가락 없는 털복숭이 짐승의 그것이었다. 꼬리가 머리 위로 삐죽 솟아나 있기도 했다. 눈에는 눈동자가 없기도 했고, 고치 속에 조그맣게 웅크려 있어서 딱딱해진 벌레이기도 했다.


주인공은 윤석남 자신이었다. 화가 인생 스무 해를 넘긴 때였다. 그는 번민하고 있었다. 예술이 뭐고, 예술가는 무엇인지. 둘로 나뉘고 다시 또 둘로 나뉘는 분열 상태를 겪었다. 땅에 발이 닿는 것이 무서운 듯 동동 매달려 쪼개진 자신을 들여다본다.     

쪼개지고 매달리고 흔들리고


“누가 나에게 예술가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상으로부터 20㎝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20㎝ 정도만 떠 있어도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밖에 없다.”     


윤석남(79)이 1999년 국내 신문사에 기고했던 칼럼의 일부라며 <세계일보> 기사(2019년 9월 1일자)에서 밝힌 말이다. 전시회를 다녀온 이후 이 글을 읽으며 왜 드로잉에서 주인공이 그네를 삶의 무대로 여겼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전시관에서 그 그림들을 보면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의 이방인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가 왜 그토록 부유하는 스스로에 매달려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가에 대한 자신의 정의라는 것을 듣고 보니 그 매달림이 덜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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