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하드렸다. 고생하셨다고, 선생님께서 정말 몰입해서 즐겁게 쓰고 있다던 원고가 책으로 나와 기대가 된다고 말씀드렸다.
“제목이 뭐예요?”
나의 질문에 답하면서, 선생님은 내게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신청하라 하셨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말로
“보내드려야 되나.”
하셨다.
나는 소리 없는 웃음을 짓다가
“아니에요. 도서관에서 빌려 볼게요.”
했다.
대화는 흘러흘러, 그분이 어제 어떤 친구와 절교한 사연에까지 이르렀다.
“이 책이 나와서 사인해서 책을 주려고 만났거든요.”
사연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분이 고민했던 지점을 들으며 위로도 하고 공감도 했다.
이제 대화는 종착역을 향해 갔다.
‘우리 언제 만나지?’
그분이 자신이 8월에 A시에서 강의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때 맞추어 내가 올 수 있냐는 뜻이었다. 마침 그 시기에 내가 다른 약속이 있었다.
9월에 B시에서 회의가 있다고 하셨다. 내가 거기에 맞출 수 있냐는 뜻이었다. 추석이 끼어 있어 어렵겠다고 하였다.
A시도 B시도 내게는 KTX를 타고 세 시간 가야 하는 곳이다.
“C시에 강의가 있으면 좋은데.”
선생님은 이렇게 아쉬워했다. C시는 내가 사는 곳이다.
결국 ‘언젠가’ 만나자는 말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한 시간 가까이 서로를 격려하고 공감하고 축하하며 아름다웠던 통화였다. 분명 그랬는데, 왜 내 마음이 불편할까?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그리고 밤사이 나는 내 마음의 실체를 깨달았다.
나는 K 작가에게 서운했다.
책이 나왔다고 내게 알려주어 나는 기뻤다. 도서관에서 책을 신청해 달라고 말한 것도 나의 우정을 믿어서이니 괜찮았다. 보통 나에게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는 작가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사서’ 보겠다고 사양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보내고 싶은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니, 일단 감사히 받고 도서관에 신청을 하거나 리뷰를 달거나 구매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방식으로 작은 성의 표시를 한다. 그런데, K 작가는 사인한 책을 전하기 위해서 한 친구를 만났다는 말을 하면서 내게는 책을 ‘보내드려야 되나’ 혼잣말을 했다.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큰 강이 흘렀다. 첫 번째 급류였다. 급류를 탄 내 마음의 돛단배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구나.
두 번째 급류는 이렇다.
그간 두 번의 만남 약속을 가졌었는데, 한 번은 그분이 갑자기 몸이 아파서, 다른 한 번은 강연 날짜와 겹쳐서였다. 두 번째 만남의 경우 우리 약속이 선약이긴 해도 강연 요청이 들어와서 바꿀 수 있냐는 양해를 구하시기에, “아이들과의 만남이 중요하지요.”라며 내가 허락한 것이었다.
나는 순수하게 그와의 약속을 위해 움직이는데, 그분은 강연이 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할 때 그는 내가 그의 시간과 장소에 맞추는 걸 당연시했다. 어제 내가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였다. 다시 한 번 마음의 목소리가 말했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구나.
K 작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 나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던 그가 싫어졌다. 그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예의가 없는 나쁜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내게 물었다. 내가 그를 싫어할 자격이 있냐고.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편이다. 상대방의 상황에 맞춰주려고 한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이해하며 넘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시간이 지난 뒤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실은 안 괜찮았던 것이다. 약속을 어겨도, 약속을 미뤄도, 나를 스킵해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서 “저 사람 까칠하네.” “사람 괜찮은 줄 알았더니 속이 좁네.” 이런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내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나를 희생시켰던 것이다.
네가 나에게 결례를 행해서 내가 기분이 안 좋았다, 라고 말했다면 상대방은 그 일을 사과하고 앞으로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반성과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고서, 그를 ‘별로인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다. 나의 괜찮다가 상대방을 무례한 사람이 되게 일조했다.
나는 나의 마음과 마주하면서 어제의 내 태도를 후회했다.
“네, 선생님. 선생님께서 사인한 책 받고 싶어요.”
혹은 “지금은 도서관에서 신청할게요. 다음에 만나면 사인해서 주세요.”
라고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선생님은 흔쾌히 보내드리겠다고 혹은 다음에 만나서 드리겠다고 했을 것이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할 때 자꾸 자신의 강연 스케줄만 신경 쓰는 선생님에게
“저 만나러 하루 시간 빼시면 안 되는 거예요?”
라고 가볍게 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선생님은 아차, 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그와의 인연을 끊든 아니든 정리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