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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Feb 07.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91)

힘줄 끊는 수술

5월 (2005년)


시아버지의 오른쪽 다리가 구부러져 전혀 각이 없이 종아리와 허벅지가 붙어 있어 이불이 언제나 텐트처럼 올라가 있다. 그리고 양쪽 다리가 너무 오그라 들고  겹쳐져 바람이 통하지 않아 염증이 생겨 연고를 발라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기저귀 가는데 애를 먹어 시아버지의 주치의가 환자가 어차피 못 걸을 거라면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하며  외과의사를 오게 했다. 의사는 가랑이와 무릎 쪽의 힘줄을 끊어주면 다리가 유연해지고 시아버지를 돌보는데 도움이 될 거고 몸이 경직된 본인한테도 나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이 없으니까 당신이 제안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 네덜란드에서 온 의사 샽츠씨가 와 시아버지의 몸을 살펴보고 갔다.

그리고는 삼일 후에 남자 간호사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는데 수술기구 몇 개를 가지고 무릎 안쪽에 있는 힘줄 하나 가랑이에 있는 힘줄을 두 개 잘랐다. 말이 수술이지 짐승을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같은 방에 있었지만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머리를 돌리며 수술에 동의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수술 후에 처리도 제대로 안 하고 솜으로 상처를 눌러 놓고 반창고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내게 반창고를 달라고 해 상처부위보다 훨씬 작은 반창고를 어설프게 붙여 놓고 갔다.

그래서 그 의사가 가고 난 후에 다시 시아버지의 상처를 볼 자신이 없어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뭔가 섬칫한 기분이 들었고 이불을 걷어 올리며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침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있고 피가 큰 선 지 덩어리처럼 엉겨 있었다. 얼른 봐서 이 리터의 피를 흘린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한꺼번에 피를 많이 보았으니까, 그래서 얼른 수술한 의사한테 전화를 하자 의사는 수술 중이라 통화할 수가 없다며 간호원이 수술부위를 붕대로 꼭 눌러 주라고 했다. 그래서 보니 가랑이 안쪽에 두 군데를 잘랐는데 밑에 있는 부분에 수술 자리에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붕대로 꾹 누르고 있자 거짓말처럼 아니 기적처럼 피가 멈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의사가 사람을 수술한 것인지 동물을 수술한 것인지 그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는 물론 아니고 동물의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그 의사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 의사를 추천하지 않겠다. 불쌍한 우리 시아버지 하마터면 피를 흘려 돌아가실 뻔했다.

어쨌든 시아버지는 그때에  후유증으로 그 이후로는 웃음을 잃었다. 언제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인형처럼 밥 먹을 때와 입을 움직이는 것 빼고는 움직임이 없어졌고 정신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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