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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31.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86)

작은아이 작은 걱정, 큰아이 큰 걱정

12월 5일


시아버지 머리를 깎을 때는 주로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이다 

최근 들어 시아버지는 새로운 버릇 하나가 생겼다. 오른손을 머리 뒤로 해 누워 있을 때에는 손이 머리에 눌려 빨갛고 납작해지곤 한다. 거의 24시간 동안 손을 머리로 올려 머리를 깎을 수가 없어 아버지의 오른손을 내려 휠체어에 머플러로 살짝 묶어 놓고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신이 멀쩡해서 그러는 나보고 기분이 나빠하는 말, 

시아버지: "너, 참 못 됐다!"
나: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당신 머리를 자를 수가 없잖아요, 아님 당신처럼 점잖은 분이 히피들처럼 머리를 기르실래요?"
시아버지: "아니 아니"
독일에는 '작은아이 작은 걱정 / 큰아이 큰 걱정' 이란 말이 있다. 작은아이는 먹고 마실 것 등만 해결해 주면 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문젯거리들이 비례해서 많아지니까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공부 걱정도  해야 하고, 사춘기에 들어서면 대화도 많이 해야 하고 잘못하면 비 뚫게 나가니까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고 더나이가 들면 생활범위도 넓어지고 복잡해지니까 신경을 쓸 일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돌보면서 처음엔 무척 힘들었지만 이젠 누워서 떡 먹기식으로 손쉽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의식주를 해결하고 머리 깎아 주고 사랑에 찬 보살핌, 간호를 하면 되니 시아버지는 우리의 작은 걱정거리인 셈이다. 물론 지금도 우리가 어디 가려면 계획해야 하고 누구를 오게 해야 하고 집을 떠나 오래 있으면 안절부절못한다. 어디 마음 놓고 갈 수도 없지만 그런 걱정은 큰 걱정거리는 아니니까.

어느덧 아버지가 병석에 누운지도 삼 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 달도 넘기지 못할 것 같았으나 하루하루 그날그날의 문젯거리들을 극복하며 삼 년을 지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의 비결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하겠다. 오늘은 오늘 걱정거리만 생각하라고 말이다. 오늘 걱정거리도 많은데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 걱정거리까지 생각해서 걱정에 짓눌려 질식해 버릴 것 같아 포기하여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면 누구 손해 이겠는가? 변경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어떤 일에나 긍정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니까, 목표를 세웠으면 다른 것에 방해받지 말고 꿋꿋이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높아 보이는 산도 높다고 처음부터 자포자기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중턱에 와 있거나 산 꼭대기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이 높다고 투정하지 말고 경치를 보면서 내가 걸어온 것에 대해 기뻐하고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아 전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한 경우도 있으니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은 긍정적으로 보고 즐겁게 해내도록 해야겠다. 그러면 그 일을 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니까,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은 내가 항상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니까,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결점도 좋게 보이고 문제 삼지 않는 법이다. 

내가 예뻐하는 강아지는 그 강아지가 눟는 똥까 지도 기꺼이 치우며 예뻐하는 법이지만 나랑 상관없는 강아지는 그 강아지의 털 하나도 눈에 거슬릴 테니까...

그래서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맘을 갖는 것이 내게 현명한 것이고 삶의 지혜란 것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호감을 가져주면 즉 나를 좋아하면 나의 잘못도 눈감아 주고 이해하려 할 테니 내가 살기가 더 편한 법이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잘하는 것도 전에 건강할 때 아버지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호의를 베푸니까 시아버지는 마음을 푹 놓고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던 고깝게 생각지 않고 이해한다. 

우리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우리 집의 우두머리니까 추장이라고 부르고 손 까딱 안 하고 우리를 종처럼 부려 먹으니 왕이라고 부른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그 외에도 아버지를 착한 아버지,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지라고도 한다. 하긴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런 표현들이 농담 겸 진담인 줄 알지만 그런 긍정적인 표현들을 들으면 누구든 듣기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손과 다리가 고장 나고 말도 없지만 우리말을 이해해서 우리들의 질문에 언제나 짧게 대답한다. 욕창은커녕 엉덩이가 어린아이 엉덩이와 같아 다행이고 유머 감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금도 장난기가 많긴 여전해서 숨바꼭질을 하듯이 남편 앤디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둥 옆에 숨으면서 자기가 없다고 하라고 그러고 내가 그 방에 들어가 앤디가 어디 있느냐? 앤디를 본 적이 있느냐고 하면 , 아니, 아니, 나 몰라, 한다. 그러고 나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면 재밌어 못 견디겠다는 듯 , 응, 하며 입을 함박꽃처럼 벌리며 웃는다. 사람이 한번 유머감각을 갖게 되면 죽을 때까지 갖게 되나 보다.  

엘 에이에 사는 친정아버지도 중풍에 걸렸는데 걸어 다니고 전화도 할 정도로 말도 잘하는데 식도에 이상이 있어 못 삼켜서 식사를 못해 배에 구멍을 뚫어 액체로 된 음식을 넣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시아버지에게 나는 우리 아버지는 식사를 전혀 못 한다는데 당신은 식욕도 좋고 식사를 잘하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그리고 친정아버지에게는 우리 시아버지는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를 못해 누워 만 산다고 말하며 위로한다.

이렇게 쉽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겁쟁이들일까? 

아님 뭔가 있지 않은 것을 믿는 바보들일까?

사람이 병석에 누워 있으며 사물을 부정적으로만 보기가 십상이지만 상황을 개선할 수 없는 경우 ,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긍정적인 면을 찾다 보면 지내기가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건강한 사람은 모른다. 먹지는 못하지만 걷고 말하는 게 나을까? 아님 움직일 수 있고 의사 표시하는 것보다 차라리 음식을 못 먹는 게 나을까?

글쎄 앞 못 보는 장님이 나을까? 아님 말 못 하는 벙어리가 나을까? 신체장애자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장님은 보지 못 하지만 청각에 예민해 듣지 못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 차라리 장님인 것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고 듣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가 뭔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나 멋있는 음악이 뭔지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귀먹은 사람은 시각을 높이 평가해 장님인 된 것보다는 귀먹고 말 못 하는 게 더 낫다고 할 것이다. 눈으로 보는 소중한 것을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와 바꾼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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