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밥 먹듯 밥 굶던 시절이 있었다.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담임선생님 댁으로 갔었다. 선생님의 외동아들과 같이 놀아주기 위해서였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네 살짜리 아이를 마치 친동생돌보듯, 세발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면서 함께 놀았다. 그러고 있으면 가정부 누나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단팥빵. 동그랗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그리고 짙은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빵.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살살 녹으며 달콤하게 스며들던빵이 얼마나 맛있던지,단팥빵 한 개에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었다.
담임선생님 댁에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갔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왜 어린 나에게 당신아들과 놀아주는 일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외동아들이 심심할까 봐 그랬는지 아니면 나에게 뭐라도 먹이려고 그랬는지.
그때 가정부 누나가 배부르게 먹을 것을챙겨주었던 걸 보면 선생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제자이지만 자존심을 생각해서 아들을 봐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 대가로 먹을 것을 주었던 게 아닌지.
학교 근무를 마치고 나중에 퇴근하신 선생님께서는 공책이나 연필 등 학용품을 챙겨주시기도 하였다. 먹을 게 귀하고 공책 한 권 마음껏 살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렵던 시절. 선생님의 마음을 그때는 몰랐다. 단팥빵 한 개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었는지.
취미생활로 홈베이킹을 하면서 가끔 단팥빵을 굽는다. 어렸을 때 먹었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그때의 맛과 지금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지금은 단팥빵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당연히 한입 베어 물었다고 눈물이 날 만큼 행복감이 들지도 않는다.
요즘은 워낙 빵 종류도 많고 맛 좋은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와있다. 내가 만들 줄 아는 빵 중에도 훨씬 고급스럽고 맛있는 빵이 몇 가지나 된다. 가끔 그것들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정을 나누는 데는 아주 그만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베이킹 재료를 주문한다. 그때 빼놓지 않고 꼭 주문하는 게 바로 단팥빵 재료이다. 그리고 단팥빵을 만든다. 빵 반죽에 팥앙금을 넣고 입구를 꼼꼼하게 봉하고,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다. 빵 팬 위에 올려놓고 도구를 이용하여 가운데 부분을 오목하게 누른다.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나는 냄새가 좋다. 갈색으로 구워져 나오는 모양 잡힌 단팥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잡힌다. 그리고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허기를 달래주던 달콤한 단팥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