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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l 09. 2024

디저트 메뉴 선정 고민



카페에 갔는데 커피만 있고 함께할 디저트가 없다면? 가 이상합니다. 쓴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 이건 누가 뭐래도 짝꿍 중의 짝꿍이죠. 그래서 딸과 제가 하는 책방온실에서도 디저트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사실은 훌륭한 대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제과제빵 명문 중 하나인 르꼬르동블루의 일본 도쿄학원을 나온 실력 있는 파티시에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처조카인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작년에 귀국하여 부산에서 가게 오픈을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있었죠. 제가 빵을 구워서 팔아도 되겠지만, 가게도 비좁은 데다가 저보다 실력이 열 배 스무 배 뛰어난 조카가 있는데, 제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침 오픈 시기도 비슷해서 디저트는 거기서 조달받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유월하순, 가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카 가게의 오픈 준비가 저희보다 늦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말은 저희가 오픈할 때 디저트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의미였죠. 고민했습니다. 일단 제가 소량이라도 만들어 버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부족한 재료구입하고, 오픈하기 전 이틀 동안 부지런히 빵을 구웠습니다. 메뉴는 세 종류,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 초코소보로빵, 초코마들렌입니다. 보관기간을 고려하여 보존성이 높은 품목을 선정한 것이죠. 이중 초코마들렌을 구우며 정말 고생하였습니다.


장마철에 습도도 높고 날이 더워 초콜릿 코팅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죠. 방금 구운 마들렌 표면이 이내 눅눅해지고, 초코코팅을 하고 나면 채 비닐포장을 하기도 전에 녹기 시작하였습니다. 초코코팅된 표면이 매끈하게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데 비닐포장지에 찍찍 묻어났습니다. 손이 안보일정도로 바쁘게 서둘렀지만 이미 상태가 많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이 없는 상태에서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구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은 큐브 모양의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 열두 개, 초코소보로빵 스무 개, 초코마들렌 삼십 개를 준비하였습니다.



가오픈 첫날 오전, 여성분 세 분이 오셨습니다. 따뜻한 말차라테 세 잔을 주문하더군요. 그분들께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를 서비스로 드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며칠만 버티면 되는데, 곧 없어질 제가 만든 품목을 돈을 받고 판다는 게 어색하였습니다. 혹시라도 며칠 후 다시 오셔서 같은 디저트를 찾는데, '그건 임시 메뉴로 없어졌습니다'라고 해서는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개업집 떡 돌리듯 제가 만든 디저트를 서비스로 드리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말차라테와 디저트를 서빙해드리고 나서 한 템포 지난 후, 맛이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니 세 분 다 엄지 척을 해주셨습니다. 그 반응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말씀을 나누며 차와 디저트를 다 드시고 가시면서 뜻밖에도 한분이, "정말 맛있었어요. 그런데 이 파운드케이크 사가지고 갈 수도 있나요?"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 하지만 속 마음을 꾹 참고 그랬죠. 아니라고, 이제는 안 만들 거라고. 대신 저보다 실력이 월등한 파티시에가 만드는 디저트를 가져올 거라고요. "그래요? 이것도 맛있는데..." 하시며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가셨고, 그분들은 며칠 후 가게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님들도 대부분 제가 만든 빵을 좋게 봐주셨고, 초코마들렌은 아이를 동반한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오픈 기간 동안 제가 만든 빵으로 무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디저트 샘플을 전시할 진열대를 구입하였습니다. 정상적이라면 냉장보관이 되는 커다란 진열대를 구비하는 것이 타당하나, 가게가 워낙 협소한 관계로 자리가 나지 않아 샘플만 올려놓을 진열대를 놓고, 실제로 판매할 디저트는 냉장고에 보관하기로 하였습니다. 딸이 출근하는 길에 조카 매장에 들러 디저트를 갖고 왔습니다. 마들렌, 슈, 티라미수 세 가지입니다. 전날 딸이 가서 시식해 보았는데 맛있었다고 하더군요. 접시에 하나씩 담아 진열대에 올렸습니다. 역시 실력 있는 파티시에가 만든 디저트답게 모양도 예쁘고 맛있게 보였습니다. 이제 손님들에게 내놓고 호평 들을 일만 남은 것 같았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망했습니다. 티라미수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접시에 물이 흥건합니다. 샘플이 냉장보관이 안되다 보니, 실내에 에어컨을 틀어놓았음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입안에서 살살 녹아야 할 티라미수가 이미 바깥에서 녹아내렸습니다. 그 샘플을 보고 누가 비싼 돈 주고 사 먹으려고 할까요? 저도 사 먹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슈도 옆면이 조금 주저앉아 있네요. 봉긋하게 솟아있어야 할 슈가 말입니다. 이거 정말 큰일 났습니다. 그날 겨우 마들렌 두 개 팔았습니다.



다음날 딸은 조카 매장에서 슈와 티라미수는 포기하고 마들렌만 들고 왔습니다. 대신에 토스트 빵과 쨈을 사가지고 왔네요. 토스트에 을 발라서 팔 거라고 합니다. 아울러 파티시에 오빠에게는 파운드케이크처럼 좀 더 보존성이 있고 단단한 품목을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열장에 티라미수가 빠지고 잼발린 토스트가 등장했습니다. 제일 비싼 디저트가 빠지고 제일 싼 메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죠. 여기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통하는 걸까요? 웃깁니다.



조카도 이제 막 매장 문 열고 직원 채용하고 교육시키고 정신없이 바쁠 것입니다. 어차피 혼자서 다 만들 수는 없을 테고 직원들을 시켜야 하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파티시에라 할지라도 일본과 한국의 디저트 시장이 또 다르니 시행착오도 거쳐야 하겠죠. 아무래도 저희 가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동안 임시방편으로 제가 나서야 할까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파운드케이크를 구워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고민이 깊어집니다.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아침. 출근하여 에스프레소 머신 세팅을 마치고 따끈한 카페라테 한잔을 내려서 마셨습니다. 바닐라라테를 마시려고 했는데, ? 헤이즐넛 맛이 납니다. 살펴보니 바닐라와 헤이즐넛 분말을 담아놓은 통을 헷갈렸습니다. 분말이 비슷해서 딸에게 라벨을 붙여놓으라고 했는데 아직이네요.


웃깁니다. 저는 바닐라라테를 마시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결과는 헤이즐넛라테를 마시고 있습니다. 인생길 때때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수로 만난 헤이즐넛라테가 맛있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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